상대에게 기꺼이 머리를 내어주는 칼

21화

by 빈자루

"야, 너 왜 나한테 먼저 인사 안 하냐?"


명월이 장수의 옆으로 바짝 다가서며 말했다.


"아, 미안... 나 사형이랑 얘기하다가..."


장수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하자 명월이 조평을 쳐다보며 물었다.


"뭐예요? 오라버니? 장수랑 무슨 얘기하고 계셨던 거예요?"


"응. 장수 말이, 칼은 꼭 춤 같다고 하는구나."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장수 너 춤췄어?"


명월이 물었다.


"아니, 난 그냥. 아직 잘 모르겠어. 사형들이 어제 대련하던 모습이 꼭 춤추는 것 같이 보여서..."


"아, 그 말이었구나. 난 또 누구랑 춤을 췄다고."


명월이 발랄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견하네. 벌써 그런 걸 또 느끼고."


"흠. 그만큼 어제 우리의 대련이 훌륭했다는 뜻이겠지. 어땠느냐? 나의 강검이?"


양명이 흡족한 표정으로 장수를 보며 물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아직까지 반성을 좀 하셔야 해요. 사람 뼈를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분질러 놓고는 그게 뭐가 훌륭해요?"


명월이 금세 양명을 쏘아보며 말했다.


"아니, 난 그저... 험."


궁지에 몰린 양명이 조평에게로 급히 화제를 돌렸다.


"조평 아우, 아우 또 장수 데리고서 쓸데없이 어려운 철학 운운했나?"


양명의 말에 조평은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양명은 그 웃음에 아랑곳 않고, 붕대에 쌓인 장수의 상처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참 이상하네... 나는 이 나이 때 뼈가 부러져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붙어 있었는데. 너 혹시 어디가 잘못된 건 아니냐?"


명월이 빽 소리를 질렀다.


"양명 오라버니! 그건 오라버니니까 그렇죠! 보통 사람들은 뼈가 상하면 한 달은 간다고요!"


명월의 호통에 양명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암, 그렇지? 보통 사내들은 그 정도 아픈 것이 당연한 것이지? 하하."


"당연한 게 아니라, 오라버니가 이상한 거라구요!"


"음.,. 그래... 내가 잘못 말했구나..."


웃음으로 통하지 않자 양명이 이내 시무룩해지며 명월에게 말했다.


"하여튼, 오라버니는 참."


명월의 기세가 누그러들자 양명이 장수에게 친근히 물었다.


"그래, 평이 아우가 뭐라고 하던가? 장수 아우. 또 사람을 살리는 칼, 그 소리를 하던가?"


"예. 평이 형님은 사람을 살리는 칼을 갖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직 제가 어떤 칼을 써야 할지를 모르겠구요."


"허, 참 네. 사람을 죽이는 칼을 들고선, 사람을 살리겠다고 말을 한다니. 그런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일단 강해져야 사람도 살릴 수 있는 게지. 참, 평이 아우의 머릿속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조평이 말했다.


"허허, 형님. 그만하시지요. 저도 역시 그 말의 뜻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장수는 각자가 가진 칼의 의미를 찾고자 했습니다. 저는 지금 제가 갖고자 하는 칼을 장수에게 이야기해 준 것뿐이고요. 장수가 이제 자신의 칼에 자신을 담을 때가 왔나 봅니다."


"벌써 그런 그런 시기가 온 건가?"


양명이 뒷짐을 지며 말했다.


"장수 아우.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내가 왜 자네의 오른 어깨를 내리쳤는 줄 아나?"


장수가 놀라 되물었다.


"예? 저는 너무 찰나의 순간이라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명이 대답했다.


"내, 솔직하게 얘기하지. 그건 바로 아우의 칼이 무서웠기 때문이었어."


"저의 칼이 무서우시다니요. 그건 과찬의 말씀입니다."


"과찬이 아니야. 그건 당연한 거라고. 몇십 갑자의 내공을 쌓은 고수라도,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상대에게는 못 당하는 법이지."


"과찬이십니다."


"거, 과찬이 아니래도. 그게 당연한 이치야. 내가 왜 늘 전투에서 살아남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는지 아나?"


"말씀해 주십시오."


"늘 죽기 살기로 덤볐기 때문이지. 상대가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거든."


양명이 이어 말했다.


"상대가 무서워 견딜 수가 없어서 내려치고 또 내려치고. 그렇게 내려치다 보면 그제야 상대가 보여. 처음에는 내 칼 밖에 안 보이다가. 그리곤 내가 치고 싶은 상대의 타격 부위만 눈에 들어오지. 그럼 거기를 쏘아지게 쳐다봐. 하지만 내가 거길 보고 있다는 걸 고수라면 금세 눈치를 채. 그러면 또 상대에게 얻어맞고 다시 죽기 살기로 덤비고. 그렇게 덤비다 보면 어느 순간 눈을 볼 수 있게 되지. 그리고 그다음에 비로소, 상대의 오장육부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되는 거다."


양명이 말을 이었다.


"목숨을 내줄 각오를 해야 해."


"그것이 짐승이건, 초고수이건. 상대와 칼을 대고 있는 순간에는."


일순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해졌다.


"그래서 장수의 뼈를 꺾었다는 말씀이세요? 오라버니?"


명월이 말했다.


"아.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잔뜩 골이 난 명월의 표정에 양명이 다시 말을 얼버무렸다.




*

사형들이 돌아가고 들판에는 장수와 명월만이 남았다.


"장수야. 너는 왜 강해지고 싶어?"


장수의 곁에 앉은 명월이 귀 밑 머리를 뒤로 쓸어 올리며 물었다. 바람이 명월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사실, 잘 모르겠어. 강해지고 싶어서 칼을 들었는데 그렇게 강해지지도 않고. 오히려 너한테 걱정만 끼치고 있잖아."


"혹시 나 때문에 그런 거니?"


명월이 물었다.


장수는 대답이 없었다.


"혹시 나 때문에 그런 거면, 다치면서까지 무리할 필요 없어.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강해. 내 몸 하나는 내가 충분히 지킬 수 있어. 그러니까 다치지 마."


장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명월이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장수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명월의 눈에 장수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소년의 모습으로 보였다.


명월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다.


명월이 말했다.


"아버지가 그러셨는데, 칼 중에서 극치는 상대에게 기꺼이 머리를 내어주는 칼 이래."


명월이 이어 말했다.


"나도 그게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너는 잘하고 있는 거야."


장수는 말이 없었다.


"너는 최선을 다했고, 그러니까 거기에 양명 오라버니의 칼이 반응했던 걸 거야. 네가 무서웠다는 오라버니의 말 틀린 말은 아니었을 거야. 너는 아주 잘하고 있어."


명월의 부드러운 손이 장수의 손을 잡았다.


명월의 눈가에선 어느새 조용히 눈물 방울이 하나 주룩 흘러내렸다.


"내가 지켜주지 못할까 봐 두려웠어."


장수가 대답했다.


"다시 그런 일을 겪었을 때, 내가 강하지 않으면 너를 지켜주지 못하게 될까 봐 나는 그게 두려웠어."


명월이 말했다.


"아니야. 바보야. 나는 니가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데."


장수가 명월의 손을 조용히 끌어안았다.


"나. 꼭 강해지도록 할게. 꼭 강해져서, 누구보다도 멋진 남자가 될 거야. 너한테 부끄럽지 않도록."


"으유, 이 바보..."


해가 지고 있었다.


천천히 붉어져 오는 쪽빛을, 장수와 명월은 언덕 위에 나란히 앉아 오래오래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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