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레이어블 Sep 21. 2018

능력, 행운, 연기, 현기증

SNS와 4가지 놀이

SNS와 놀이 유형


자유로운 표현과 경쟁적 겨루기로 양분된 호이징하의 분류법은 무한하고 다종 다양한 놀이들이 극히 적은 범주로 나뉘는 것에 한계를 느낀 로제 카이와 (Roger Caillois)의 노력으로 플레이어의 태도와 목적에 초점을 맞춰 보다 세분화되었다.


까이와에 따르면 대결, 우연, 모의, 현기증은 게임에 임하는 놀이꾼이 목적 달성을 위해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중 무엇이 특정 게임에서 지배적 지위를 갖는가에 따라 아곤(Agôn), 알레아(Alea), 미미크리(Mimicry), 일링크스(Ilinx)의 고유한 특질을 지닌 게임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네 종류의 게임은 상반된 놀이의 극단 사이 어딘가에 배치될 수 있다. 한 끝에 위치한 것이 파이디아. 기분 전환, 소란, 자유로운 즉흥, 무질서한 게임의 세계다. 다른 끝에는 강제적이고 불필요한 약속과 장애물을 두어 무질서를 통제하는 제약의 게임 세계인 루두스가 존재한다.


놀이 유형별 고유성은 SNS의 작동 원리로도 기능한다. 접속 목적이 재미를 위한 것이든, 현실적 가치를 위한 것이든 SNS라는 매체를 작동시키는 바탕 에너지는 우연, 경쟁, 흉내 내기 혹은 연기하기, 어지러움을 즐기려는 인간 욕망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일상적 SNS 사용을 통해서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우연한 사건과 인물을 만나기, 더 나은 표현을 위해 팽팽하게 경쟁하기, 사회적 네트워크 안에서 스스로 창조해 만들어지는 역할과 이미지 만들기, 네트워크에서 속도감과 소란 느끼기는 곧 SNS의 사용 경험 그 자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들은 우리가 SNS를 사용하는 본질적 이유이며, 동시에 경험을 지속시키는 동인이다.


SNS는 광범위한 게임 세계를 한 몫에 품은 거대한 놀이터다.


카이와가 포착한 통상적 놀이 작동법과 차이가 있다면 SNS는 놀이 유형 중 어떤 하나의 지배가 뚜렷하지 않고 각 특질들이 유기적인 인과 관계를 이룰 때 비로소 온전한 게임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표현을 위한 다양한 시도와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가운데 우연과 경쟁, 연기와 혼란 속에서 SNS의 재미와 즐거움이 잉태된다.  
 



SNS+아곤과 알레아



체크인 빈도로 특정 장소의 시장 지위를 다투는 <포스퀘어(Foursquare)>나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비디오를 챔피언, 뒤쫓는 콘텐츠를 챌린저로 나눠 승자를 정하는 <버셔스(VS:US)>처럼 명시적 대결이 있는 경우가 아니어도, 대부분의 SNS에는 표현과 반응에 관한 양적 정보가 제공된다.


업로드, 조회, 공감과 공유 횟수는 누구의 무엇을, 왜 더 낫다고 보는지 판단하기 위한 측정 기준이 되곤 한다. SNS가 게임처럼 작동할 때 플레이어의 경쟁 욕망, 특히 객관적 정보를 활용해 나의 우수성을 인정받는 절차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때, 경쟁 우위를 정하는 방식에 따라 SNS의 게임 유형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SNS/아곤. 우월한 표현을 통해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려는 목적을 위해 플레이어가 지속적 주의, 훈련, 노력, 승리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게임이다. 꾸준한 노력과 숙련에 따른 비례 성장을 꾀하면서 더 먼저, 오래, 많은 활동을 해온 플레이어에게 유리한 점진적 기회 경쟁의 게임이 펼쳐진다.


 두 번째는 SNS/알레아. 이 게임은 SNS/아곤과 달리 상황 변화와 결과를 운에 맡긴다. 플레이어가 맞서는 것은 상대가 아닌 자신의 운명이다. 알레아는 시작도 늦고 지식도 모자란 초보 플레이어와 이미 강력한 지위를 확보한 마스터를 역전시킬 극적 사건 발생을 허용한다.


예를 들어, SNS 피드와 네트워크가 지금 내게 보여주는 사람과 콘텐츠는 내가 가늠할 수 있는 훈련과 인내의 결과물이 아니다. 알고리즘을 정할 때 나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 따라서 이 상황은 나에게 운명이다.


누가 무엇을 언제 만날지 모르는 환경에서 새로운 기회는 노력만큼 운에 의지한다.


알레아 게임으로서 SNS는 모두에게 공평한 우연의 불공평을 존중하고 오히려 숙달, 자격, 근면의 윤리를 부정한다. 이때, 자의성은 놀이의 원동력이며 예측하지 못한 상황 변화는 즐거움이 된다.


아곤이 기회 평등에 충실한 것에 비해 알레아는 평등 이면에 있는 위험과 이익의 균형을 중시한다. 두 게임은 상반된 속성을 지니면서도 SNS를 흥미로운 긴장으로 채우기 위해 긴밀한 협력을 이룬다. 만약, SNS가 아곤의 질서로만 작동한다면 네트워크 허브는 승리를 보장받을 것이고 미약한 네트워크 플레이어는 역전 기회를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SNS에는 운명의 작용이 있다.  


SNS는 미약한 초보자가 우연히 강력한 네트워크 허브와 연결되거나 별 의도 없이 작성한 콘텐츠가 성공해서 단숨에 성장하는 스노우볼(snowball)의 행운을 허용한다. 또한 영향력 있는 인사가 구설에 휘말려 군중의 외면을 받는 상황에서 그와 연결된 큰 규모의 네트워크는 오히려 그를 선두에서 밀려나게 하는 캐치업(Catch up) 공격 세력으로 작동하는 아이러니도 빈번하다.


이처럼 선두와 후발주자가 갑작스레 뒤바뀌는 상황은 플레이어 개별 역량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성실한 실력 쌓기와 함께 모두에게 같은 확률인 행운과 불행이 있기에  SNS는 플레이어를 매료시키는 게임이 될 수 있다.




 SNS+미미크리와 일링크스


SNS는 사회적 네트워크에 속한 사용자 자신이 설정한 인물을 표현하는 놀이터인 바, 정체성 놀이 맥락의 지배를 받는다. SNS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플레이어의 현실과 유사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어떤 선택이든, SNS 플레이어는 자신이 표현하는 인물에 관한 절대적 창조 권한을 갖는다.


SNS는 사회적 커뮤니티로서 플레이어가 자신의 욕망과 이상을 반영한 인물이 되기 위해 다양한 실제 혹은 허구의 사건과 정서를 내고, 그 과정 자체를 재미있다고 느끼면서 게임화 된다. 게임화 과정에서 허구의 역할은 중요하다. 플레이어가 실제로 그러한가를 묻지 않고, 스스로 가공한 인물이 되어 그에 적합한 생각과 행동을 허용하는 것이 놀이 경험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어떤 인물을 연기하며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취미이자 욕망이다. 그리고 흉내와 꾸미기는 표현 놀이의 원동력이다. 따라서 게임화된 SNS에는 까유와가 분류한 놀이 유형, 미미크리의 공통점이 포착된다. 미미크리는 플레이어가 자신의 인격을 일시적으로 잊고, 바꾸며, 버린 뒤 다른 것을 가장하는 놀이로 정의된다. SNS는 사람이 자신을 자기 아닌 다른 존재라 믿는 것, 자기와 타인에게 그것을 믿게 하는 행위 자체로 논다. 그러므로 SNS는 미미크리의 게임화 매체다.


놀이 중 나 아닌 사람이 되고, 특별한 사람처럼 여겨지기 위해 변신하는 것은 즐거움이며, 이것은 플레이어에게 아무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 전부가 놀이 경험을 위해 시스템에 접속하는 것이 아니라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놀이하지 않는 자들은 현실과의 일치, 확인된 사실 아닌 허구의 생성과 유통을 범죄 시 한다. SNS에서의 그런 척 하기 놀이가 사회적 문제와 혼란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일링크스는 현기증을 추구하는 놀이다. 안정은 기분 좋은 공포와 혼란을 위해 의도적, 일시적으로 파괴된다. SNS는 신체적 충격보다, 심리적 차원에서 일링크스와 결합한다. SNS를 통해 빠른 속도로 쏟아지는 엄청난 로그와 네트워크의 이합집산은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강력한 지각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믿고 의지해온 견고한 현실이 SNS를 통해 일순간에 모호하고 충격적인 상태로 흔들리는 것은 흔한 일상이 되었다.


카이와는 정신적 현기증의 놀이가 평상시 억제된 파괴 욕구와 연결됨을 간파했다. SNS에서 나타나는 과감한 전복, 때로 폭력적이고 악의적으로 보이는 파괴 행위들은 일링크스가 추구하는 자기주장의 거칠고 난폭한 표현의 발로이다. 신체적, 정신적 혼란 모두를 칭하는 일링크스의 흥분은 다양한 변종이 가능하고 SNS를 구성하는 네트워크와 로그의 형식과 내용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활성화된 SNS는 결과를 모를 혼란과 소동이 이어진다. 평화롭고 별일 없는 SNS에는 재미난 경험도 적다. 그것은 아직 게임화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이때 중요한 사실은 SNS의 게임화가 무질서하고 폭력적 상태의 무력한 방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놀이적 현기증이란 규칙을 준수하는 범위에서의 제한된 혼란이며 순간적 패닉은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의 위험 유발임을 기억해야 한다.




SNS는 어떻게 게임화되는가



명문화된, 혹은 문화로 공유된 제도들이 플레이어의 행동과 정서에 수용될 때, SNS는 비로소 규칙으로 작동하는 게임처럼 놀이 경험을 유도할 수 있다. SNS가 제도적 존재로의 성질을 획득하면 표현 규칙과 위협, 저항, 도발을 통한 놀이 경험은 떨어지지 않는 관계로 맺어진다. 누구에게 어떤 행동과 감정, 의견을 드러낼 수 있는가를 정의하는 SNS의 표현 규칙이야 말로 이 매체에서의 활동을 창조적이며 문화적인 놀이로 전환시킨다.


그러나 SNS에 나타난 표현 게임의 자질은 지속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카이와는 게임과 놀이의 원천에는 근본적인 자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놀이 경험이 지속되려면 SNS에는 휴식, 기분전환, 변덕을 부리고 싶은 욕구가 자유의 이름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경쟁적으로 우위를 겨룰 수도, 한껏 게으른 관망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야 말로 SNS의 게임화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SNS에는 즉흥과 흥분으로 채워진 파이디아의 힘이 존재한다. 그리고 또 다른 동력, 이유 없는 어려움을 추구하는 루두스의 취향도 공존한다. 두 개의 놀이는 SNS에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잉태시키는 원초적 에너지가 된다.

 



참고문헌

권보연. (2014). SNS 의 게임성 연구: 클래식 게임 모델의 테트래드적 분석.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14(2), 29-44.

권보연(2015). �SNS의 게임화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부 박사학위논문.

권보연(2015). �게이미피케이션�. 커뮤니케이션북스.

김겸섭(2012). �모두를 위한 놀이, 디지털 게임의 재발견�. 들녘.

박상우(2000). �게임, 세계를 혁명하는 힘�. 씨앤씨미디어.

이상봉. (2014). '헤오르테'(heortē) 와'스콜레'(scholē) 로서 놀이. 철학연구, 129, 193-217.

정낙림(2017). �놀이하는 인간의 철학�. 책세상.

Backe, H. (2008). Caillois Revisited: Towards a General Theory of Games and Rules. Playing by the Rules of the Game, 53-65.

Bolz. N. (2014). Wer nicht spoelt, ist Krank. 『놀이하는 인간』. 윤종석, 나유신, 이진 옮김(2017). 문예출판사.

Caillois, R.(1961). Man, play and games. 『놀이와 인간』. 이상률 옮김(2003). 문예출판사.

González, C. S. G., & Adelantado, V. N. (2016). A structural theoretical framework based on motor play to categorize and analyze active video games. Games and Culture, 11(7-8), 690-719.

Otake, K., Shinozawa, Y., Sakurai, A., Uetake, T., Oka, M., & Sumita, R. (2015). A proposal of SNS to improve member’s motivation in voluntary community using gamification. Editorial Preface, 6(1).

매거진의 이전글 놀이를 위한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