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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 소녀 Jun 25. 2024

일상 속 사소한 언쟁

우리집 쌍둥이는 동네 청소년 수련관에서 수영을 다닌다. 깨끗한 시설과 저렴한 비용에 경쟁률이 치열한데, 몇 년 전 코로나가 거의 끝날 무렵 겨울, 그나마 경쟁률이 낮았던 시기에 운 좋게 둘 다 들어갔다. 현재 화/목 반을 수강 중인데, 7월부터는 월/수/금 반으로 변경해야 할 것 같아 오늘 새벽 5시쯤 집을 나섰다. 반을 변경하려면 매월 지정된 날 새벽 6시 30분부터 상담 후, 반 변경등록이 가능한데, 보통 들어가고자 하는 반의 티오는 몇 없고, 경쟁은 치열하다 보니, 선착순으로 상담이 이뤄지는 프로세스에 따라 사람들이 새벽부터 와서 대기를 한다고 전해들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차를 타고 가는데, 아침 7시처럼 온 거리가 밝았다. 여름이라 그런지 해는 벌써 중천에 떠 있었는데, 거리에 사람도 차도 없어 새벽녘의 느낌이 조금 나긴 했다. 수련관에 도착하니 5시 15분경이였고, 나보다 앞서 오신 분들께서 캠핑의자 및 조그마한 의자에 앉아 계셨다. 기다리는 동안 책이라도 읽을 겸 책 2권을 책가방에 챙겼었는데, 책 하나를 바닥에 깔고 앉아 책을 읽다 보니 5시 30분쯤 문이 열렸고, 들어가서 선착순으로 이름을 적는 리스트에 5번으로 내 이름을 적었다. 그리곤 기다리다가 5시 55분경, 수련원 주차장이 열리지 않아 길가에 새워두었던 차를 주차장에 다시 세우고 올라왔는데, 그 시각이 6시 2~3분쯤. 올라와보니, 그 사이 벌써 상담순서 번호표가 배부된 상태였고, 내게 주어진 번호표는 13번. 예상치 못하게 5번에서 13번으로 밀려났다.


하도 당황스러 담당 직원분께 억울함을 호소했다. 리스트에 분명히 5번으로 이름을 작성하였는데, 왜 5번으로 번호표가 배부되지 않느냐. 그러자 벽에 붙어 있는 수영 시간표 전단지 가장 아랫부분, 작게 한줄로 작성되어 있는 안내 문장을 손으로 가리키셨다. [선착순으로 성함기재 후 대기, 6시 번호표 배부, 6시 반 상담 시작] 이렇게 작성되어 있는 안내글을 보여주셨고, 수련원 중앙, 선착순으로 온 리스트 작성하는 책상 옆에 큼지막하게 붙어 있던 [호명 시, 부재할 경우 순번이 밀린다는 공지 사항]을 가리켰다. 


그럼에도 나의 입장에서는 100% 납득할 수만은 없었다. 프로세스가 실제 어떻게 진행되는지 충분히 인지못한 채, 6시 상담 번호표 배부 시 자리를 비운 건 나의 잘못이지만, [호명시, 부재할 경우, 순번이 밀린다는 공지사항]의 경우, " 6시 30분 상담 시작 후, 호명 시의 부재 경우"로만 적용하여 잘못 해석될 수 있음에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새벽같이 와서 줄까지 서고 이름까지 작성했는데, 6시에 번호표가 배부된다는 걸 몰라 잠시 자리를 비워 순서가 밀린다면 당연히 억울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재차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프로세스 상 오해의 소지가 충분히 있으니, 향 후, 이런 부분을 좀 더 명확하게 잘 보이도록 공지사항에 크게 써 주셔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직원분의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빛이 달라지더니 “그래서 저희 시스템이 잘못 되었다는 이야깁니까?” 다소 격양된 언성에 순간 멈칫, 더이상 이야기를 하다가는 분위기가 심각해 질 수도 있을 듯하여, “아니요, 제가 프로세스를 잘못 알아서 그런 거긴 한데, 속상해서 말씀드린 거에요”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답이 없는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에 짜증이 났던 건지, 나의 억울한 호소를 빨리 끝내기 위한 방편이었던 건지, 그리 예의 없게 이야기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매서워진 눈빛과 높아진 목소리 톤에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마스크를 쓴 상태여서 눈만 보이는 상태였는데, 눈빛이 변한다는 것. 눈에서 사람의 감정이 고소란히 전달된다는 것을 오랜만에 경험했다.  


다행히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아서,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원하던 자리에 등록, 수강할 수 있었고, 그 담당직원분께서 다가와 수강이 되었냐며, 나만 그렇게 배려해주면 욕을 먹는다는 둥 등록이 되서 다행이라는 말을 던져 주셨고, 난 감사하다고 답변하며 상황은 수그러들었지만, 원하던 반 등록 된 것과 별개로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아마 그 분도 그러셨겠지, 아침 꼭두새벽부터 감정적일 필요 없는 일에 조금이나마 에너지를 쏟았으니.

나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자면, 오늘 새벽 난 무례하지 않게 예의를 지켜 말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과 다르게 혹은 의도치 않게, 상대방에게는 공격적으로 들렸을 수도 있겠고, 나의 억울함이 짜증나는 표정으로 전달 될 수도 있었겠다 생각한다. 이것이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린 것이고, 혹은 vice versa, 결국 그분과 난 이런 방식으로 서로가 서로의 감정을 툭툭 건드린 꼴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어찌 보면 별일 아닌 이야기를 끌고와 오늘의 글로 작성하는 것은, 누구의 잘잘못인가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분의 매서운 눈빛이 나의 뇌리에 박혔고, 수련원에서 종종 보던 분이데, 오늘 아침의 사소한 언쟁으로, 그 분에 대한 인상이 180도 바뀌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모두가 평범해 보이고, 평화로운 분위기 아래 아무 문제없이 서로 잘 지내다가도, 급작스러운 상황 아래, 억울함과 짜증, 궁지에 몰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될 경우, 우리의 인격, 나란 사람의 존재성격이 그대로 표출된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나란 사람을 구성하는 하나의 단면일 수도 있겠다만, 그것이 상대방에게는 ‘나란 사람’ 전체로 정의되어 인식되고, 그것이 별로 좋지 않은 정의일 경우, 상대방에게 있어, 나란 사람에 대한 문은 그대로 닫혀 버린다. 그 분 역시 나에 대한 문을 그대로 닫으셨을까?



집에 와서도 찝찝하고 기분이 좋지 않아,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보니, 스크래치 난 나의 자존심이 보인다. 상황에 대해 이성적으로 대화할 수 있었는데, 감정적인 대응으로 끝나버렸고, 뭔가 그 사람의 눈빛에 내가 진 것 같아서. 사실 이기고 지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꽁해져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도 했지만, 내가 만약 남자였다면, 동일하게 저렇게 대응했을까 이런 생각도 잠깐 들고.


상대방의 입장과 배경과 그 대부분의 것들을 내가 잘 알게 된다면, 나와 안맞는 사람이 있을 뿐, 세상에 이해 못 할 사람은 별 없다. 그러므로, 회사에서나 일상 생활에서나 종종 발생되는 사소한 언쟁부터 큰 대립 상황까지, 죽을 때까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인 우리는, 그런 상황에 유하고 현명하게 넘어가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고, 그 기술은 인격에서, 잘 정돈된 내면에서 나오는 것 같다. 


오늘 아침의 사소한 언쟁은, 나 스스로 되돌아보며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자존심이란 어학 사전에,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 이라 정의 되어 있는데, 나 자신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게 되는 아침이기도 하다.


억울함이 밀려와도, 그 억울함은 내 입장에서의 억울함일 뿐, 상대방에게는 다를 수 있다. 파도처럼 철썩이며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잔잔한 호수처럼 이야기 할 수 있는 지혜로운 이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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