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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반산 삼행시

오늘이 내 생애 최고의 날이야

by 숲song 꽃song
『옆집 엄마는 무슨 재미로 사나?』에서는 옆집 엄마(숲 song 꽃 song)가 마흔 즈음에 써 둔 습작글 중에서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에게도 없는 일상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연재합니다. 담장너머 옆집 엄마네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작은 웃음, 조그마한 삶의 팁이라도 챙겨가실 것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예요.


느긋하게 일요일 아침을 맞이해 본 적이 언제였던가? 늘 한껏 게으름 피울 수 있는 아침을 꿈꾸면서도 어찌 된 것이 일요일 아침이면 더욱 부지런을 떨게 된다.


가을이 깊은 오늘은 어딜 가나 좋을 둣 했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강물이 매우 아름답다는 '천반산'을 다녀오자며 길을 나섰다. 초행길인 천반산은 부드러운 곡선의 강을 띠로 두르고 있었다. 이때쯤이면 전국의 유명산들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거릴 것이나 천반산은 고요한 산의 정적을 깨우는 것조차 미안하리만치 한산했다. 능선 너머의 하늘빛은 한참을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눈이 부셨다. 바람도 없이 펼쳐지는 나뭇잎들의 춤사위는 늦가을의 정취를 흠뻑 자아내고 있었다.


능선 길에 올라서자마자 아이들은 날랜 다람쥐가 되었다. 무엇이 그리 신이 나는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산을 타고 넘실거렸다. 아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그리 자연과 잘 어울릴까? 회색빛 도시와 시멘트 건물 안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아이들의 이런 천진한 모습은 바라보고 있는 사람까지 행복하게 해 준다. 아이들의 입에서 무시로 터져 나오는 언어들은 또 얼마나 반짝거리는가!

내겐 이미 사라진 언어들이 톡톡 튀어나오는 걸 듣는 일은 언제라도 즐겁다. 저희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언어들이 얼마나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지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산행의 기쁨 속에서 저절로 깨달을 수 있다면 일요일 아침에 누릴 수 있는 달콤한 게으름의 반납도 아깝지 않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능선 길을 걷자니, '사는 재미는 아침에 울고 저녁에 웃는 데 있다.'는 최근에 읽은 책 속의 구절에 맞장구가 쳐진다. 즐거울 일 하나 없이 늘 우울했던 학창 시절의 내 모습에서 어찌 지금의 밝고 싱싱한 목소리를 짐작할 수 있겠는가?

행복한 웃음 날리는 지금의 내 모습 또한 어찌 영원하리라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작고 사소한 일들에 쉽게 절망하고 쉽게 자만했던 일들이 부끄러워진다. 가파른 암벽길을 타고 내려오는 길, 내게 찾아오는 기쁨과 슬픔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보리라 생각해 보며 그동안 방만했던 마음 매무새를 단정하게 가다듬어 본다.

오늘 산행의 가장 큰 수확은

'오늘이 내 생애 최고의 날이야!'

하고 고요한 살골짜기를 온통 뒤흔들어 놓은 아들 녀석의 외침이다. 그 빛나는 말을 얼른 주워서 마음속 풍경으로 매달아 놓았다. 마음이 지쳐 거칠고 마른바람이 부는 어느 날, 뎅그렁뎅그렁 '오늘이 내 생애 최고의 날이야!' '오늘이 내 생애 최고의 날이야!' 하고 울리는 그 소리에 다시 벌떡 일어설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한나절 남짓의 일요산행으로 심신의 소란이 가라앉고, 다시 한 주를 힘차게 달릴 수 있을 만큼 호흡도 가다듬을 수 있었으니, 이른 아침 잠자리를 떨치고 집을 나선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귀가 후, 산행의 즐거움을 천반산 삼행시로 지어보고 함께 나누는 시간은 덤으로 얻은 행복이다.


반산 능선길은 하늘 걸어가는 길

짝이며 흐르는 저 아래 눈물만큼의 거리

다는, 살아 느끼는 그런 것이 보이는(아빠)


상에 오르는 기분이 이럴까? 깊어가는 가을날, 가족과 함께하는 산행의 기쁨

쯤 오르다 숨 고르며 휘휘 둘러보니

산! 산! 산! 너 거기 발그레 홍조 띤 얼굴로 우릴 반기고 있구나(엄마)


반산에 올랐다

쯤 오르다가 "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다

은 말없이 억새 손만 한들한들 흔들어 주었다(중1, 딸)


반산에 올랐어요

쪽이 깎아지른 암벽도 올랐고요

을 내려오는 길엔 탐험도 했어요.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어요(초등 4, 아들)





<참고>

*천반산(647m): 천반산은 사방이 깎아지른 험준한 절벽으로 에워싸여 있다. 여기에다 북으로는 덕유산에서 발원한 구량천이 산자락을 휘감고 있으며, 서쪽과 남으로는 금강 상류를 이루는 연평천(일명 장수천)이 휘돌아 흐르고 있어 천혜의 요새를 방불케 하는 산세를 이루고 있다. 이 산은 선조 22년(1589년) 전라도를 반역향이라 하여 호남 차별의 분수령을 이룬 기축옥사의 주인공인 정여립의 한이 서려있는 곳이다.

<진안군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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