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집에 갈 때마다 내 연애는 잠금 모드
네 번째 손가락에서 커플링을 뺀다. 핸드폰을 잠금모드로 바꾸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메신저 알람을 모두 끈다. 마지막으로 (동성)애인과 노란 튤립을 들고 찍었던 핸드폰 바탕화면을 헥헥 거리며 웃고 있는 회색 푸들 사진으로 바꾼다. 한 달에 한 번 엄마 집에 갈 때마다 거치는 의례. 한 번은 애인과 문자를 주고받다가 메신저 화면이 버젓이 뜬 핸드폰을 식탁에 올려두고 화장실에 갔다가 오줌 싸는 내내 초초했다. 엄마 집에 갈 때마다 내 연애 생활은 철저한 잠금 모드. 엄마는 내가 일이 바빠서, 또는 무심해서 연애를 하지 않는 줄 안다. 하지만 나는 20대 이후 연애를 쉬어본 일이 없다. 핸드폰 배경화면 속 밝은 회색 머리에 코 피어싱을 한 단발머리의 그녀와 연애를 시작하고 같이 산지도 어언 3년 반이다.
“사진이 고생하네.” 커플 사진을 떼는 애인을 보며 내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부모님이 올 때마다 애인은 사진부터 숨긴다. 우리 부모님이 왔어도 그렇게 했을 거란 걸 알면서도 어떤 날은 괜히 뿔이 난다. 그 사진은 지난봄 벚꽃이 절정일 때 동네 공원에 가서 찍은 커플사진이다. 완전히 똑같이 입으면 오히려 촌스럽다며, 그녀는 노란 원피스를 나는 개나리색 가디건을 어깨에 걸쳤다. 부둥켜안고 앞을 보며 활짝 웃고 있는 폼이 친구라 우겨볼 길 없이 영락없는 커플이다. A4 용지 크기로 인화한 그 액자를 서랍에 넣었다 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작은 기스처럼 내 마음에도 은근히 잔 기스들이 생긴다. 서랍 속에 처박힌 사진이 꼭 나 같다.
한 날은 분식집에서 김밥을 사려고 계산대 앞에 섰다. 그때 핸드폰 화면에 도착한 활짝 웃는 애인의 얼굴. 내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도 전에 황급히 뒤돌아 CCTV가 있는지 확인했다. 무슨 비밀 업무를 수행하는 스파이도 아니고. 내가 뭐 중요한 사람이라고 CCTV에 비친 내 핸드폰 화면까지 검열한단 말인가. 전철을 탈 때는 행여 여자와 사진을 주고받는 걸 누가 볼까 봐 창문을 등지고 서지 않는다. 핸드폰 화면이 창에 비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도 과하다 싶지만 무의적인 반응들을 나도 어쩔 길 없다. 지하철에서 애인과 다정하게 통화하다 실수로 스피커폰을 눌러 전화기 너머 여자 목소리가 들려오면 황급히 칸을 이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꾹꾹 눌러 담고 잠가도 일상의 흔적을 모두 지운다는 건 불가능하다. 하루는 애인의 아버지가 방문을 고쳐주겠다고 방문했다. 애인 옆에 서서 나는 안절부절. 인사 정도는 나눠봤지만, 한 공간에서 오랫동안 함께 있는 일은 처음이라 난 긴장했다. 그녀가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그렇지만 너무 다정하지는 않게, 적당히 무심한 동거인 내지는 친구로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되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친구다운 말투는 대체 뭘까. 긴장되는 30분이 지나고 아버지가 떠나고 나서야 모두 헛수고였다는 걸 깨달았다. 작은 방에 붙여놓은 스티커 사진을 떼놓지 않은 것이다.
“못 봤겠지?” “에이, 우리 아빠 봐도 몰라.” “저건 너무 결정적인데?” 그 사진은 재작년 겨울 애인과 내가 처음 찍은 스티커 사진이다. 연인들이 으레 그러듯 뽀뽀하는 장면이 딱 박혀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정말 모른 걸까, 모른 척한 걸까. 어떨 때는 너무 지쳐서 핸드폰 바탕화면을 숲 속 풍경으로 바꾸고 액자도 모두 떼어버린 적이 있다. 사진을 걸었다 뗄 때마다 자존감이 팍팍 깎였다. 나를 부인하고 내 사랑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그깟 사진 뭐라고 생각했는데. 그깟 사진 하나 못 건다는 사실이 좌절스러웠다.
엄마 집에서 나오자마자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낀다. 핸드폰 잠금 모드를 풀고 애인과 나, 강아지가 나온 사진으로 바탕화면을 바꾼다. 두 시간을 전철을 타고 졸다 내리면, 역 앞에 기다리는 애인이 보인다. 그녀에게 달려가 포옹한다. 사람들 눈을 피해 뽀뽀도 한다. 그제야 내 공간이 다시 넓어진다. 이상하게 애인과 같이 있을 때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지 않다. 핸드폰 화면을 내 뜻대로 바꾸고, 사람들 앞에서 나를 숨기지 않도록 나를 지지하는 건 애인과 쌓아가는 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