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 PROJECT ARCHIVE
어린 시절 소꿉놀이의 기억이 떠올랐다. 동네 친구들과 놀이터에 나가 흙으로 지은 밥과 반찬들을 먹는 시늉하며 놀던 기억은 유치원에 가며 교실에 놓인 갖가지 가짜로 만든 음식 모형들과 조리 도구들로 하던 역할 놀이로 옮겨갔다. 어른들의 부엌살림을 흉내 낸 플라스틱 모형을 입으로 탁탁 소리를 내며 요리하고 먹는 시늉을 하는 그 시간이 왜 그렇게도 즐거웠을까? 특히나 엄마 아빠 역할을 나누며 하는 놀이가 병원놀이, 시장놀이보다 신났다.
모형으로 만들어진 음식 모형들이 주는 묘한 쾌감 같은 것이 있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먹을 수 있는 것에 가깝게 만들어진 모형들을 보면 은근슬쩍 손으로 한번 눌러 보고 싶고, 먹어보면 꼭 맛이 날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억지스럽게 연결 지어 보자면 그런 생각들이 어른이 되면서 음식 모양의 마그넷을 모으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미니어처 음식 모양으로 만들어진 마그넷들은 나의 냉장고 여기저기에 붙어 새로운 식재료 창고를 펼친 모양새다. 식재료뿐만 아니라 완성된 요리도 함께 붙어 있다. 기분에 따라 틴케이스에 고이 모아둔 자석들을 바꿔 붙이기도 하는데, 요즘은 여행길에 샀던 빵과 쿠키 봉지가 찍힌 엽서를 비롯해 샌드위치와 파인애플 그림이 그려진 엽서, 그 위에 파스타면과 토마토소스 통 모양의 미니어처가 붙어 있다. 핫도그와 문어 소시지, 식빵과 꿀단지, 감귤에 식용유 미니어처도 있다. 이외에도 콜라, 시리얼, 통조림과 과자 등 식사와 후식까지 책임질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음식 모형을 만든 건 언제부터 있었을까 싶은 궁금증에 ChatGPT를 열었다. 여러 갈래의 답이 나오긴 했는데, 우선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례, 의식의 목적으로 사용되어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눈에 먼저 띄었다. 풍요와 번영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슬러 올라가고 올라가 문명의 시작점부터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이후로 나오는 내용들은 18~19세기 인형의 집이나 장난감 주방이 장난감으로 인기를 끌면서 음식 미니어처도 같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부유층 사이에서 아이들을 위해 제작된 미니어처들은 그 시대의 주요 예술가들이 작업을 했을 만큼 고급스러운 취미와 놀이의 도구였던 것 같다.
현대로 넘어와 음식 모형은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인테리어 소품화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지금도 여행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식당을 비롯해 푸드코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른바 고급 식당을 표방하는 곳들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식을 조형물로 만들어 호객에 사용하지는 않는다. 저렴한 가격에 모양새 있는 음식을 제공한다는 홍보로는 가게 앞 음식 모형만큼이나 좋은 게 없다. 지금은 잘 하지 않는 가족행사에서도 음식 모형이 자주 등장했다. 20년 전의 할머니 칠순잔치 사진 속 한복을 차려 입고 정면을 바라보고 선 어색한 사진 안에도 모형과 실물이 섞인 잔칫상이 앞에 자리해 있다. 알록달록한 오색의 전통 한과 모형들이 30cm 이상 높이로 높게 쌓인 모형은 환갑이나 칠순잔치의 상징과도 같은 그림이었다.
쓰임이 어떻든 바라는 것은 같을 것이다. 풍요와 번영을 비는 목적의 의식부터 건강과 장수를 바라는 누군가들의 마음을 담기도 하고, 복잡하고 바쁜 와중에 맛있는 한 끼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비록 가짜지만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음식들로 식욕을 돋우고 밥을 먹게 한다.
여러 가지 모아진 음식 모양의 마그넷 사이에 3,500원짜리 백만 마그넷이 큰 지분을 차지한다. 리틀템포 디자인 스튜디오라는 곳에서 제작한 이 굿즈들은 손가락 한마디 사이즈의 크기에 삼각김밥, 달걀프라이, 딸기우유, 컵라면 등의 음식 그림에 눈, 코, 입을 덧 그린 캐릭터들이다. ‘잘 먹고 잘 살자’는 모토를 가지고 바쁜 하루에 한 끼라도 건강히 백반을 먹자는 마음을 담은 디자인이라고 하는데, 백반 모양의 1인 밥상이 제일 유명한 상품이다.
소소한 장난감 같은 음식 모양의 마그넷을 모으고 바꿔 붙이면서 항상 ‘일상’을 대한 생각을 한다. 어린 시절 놀이 같은 추억도 있겠지만, 실제 먹는 시리얼이나 과자 브랜드를 비롯해 음식을 모형으로 만들어 두는 걸 보니 사람들은 이리도 먹고사는 것에 진심이구나 싶은 마음이 곧잘 든다. 그런 모형을 보면 마트 장 보듯이 주워 담는 나 역시 이렇게 진심이다. 오늘도 냉장고에 붙은 음식 모양 자석들을 보며 흐뭇하고 풍족한 마음으로 문을 열어 끓여 둔 보리차 한 잔을 마시고 회사로 나섰다. 퇴근길에는 냉장고 위에 차려진 풍성한 식탁만큼은 아니어도 맛있는 밥 한 끼 차려 먹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해 보는 하루다.
덧붙인 생각. ‘먹다’는 행위는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본능일 것인데, 오히려 앞에 붙는 수식어들에 더 몰두해 먹는 것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함께 먹다, 즐겁게 먹다, 맛있게 먹다, 건강하게 먹다, 좋은 것을 먹다.
당분간은 '무엇을' 보다 '누구와,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한 끼 밥을 먹을까'로 생각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도 가져본다.
UNIT 07. 대리만족의 물건
NAME. 리틀템포 디자인 스튜디오 백반 마그넷
FROM. 한국
SINCE. 2005
PRICE. 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