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 PROJECT ARCHIVE
처음 혼자 살림을 꾸리면서 하나씩 가구를 들이는 일은 꽤나 번거로운 일이었다. 사이즈에 맞추면서도 전체적으로 어울리는 것을 찾아 발품 팔며 들였던 가구도 이사하는 집에 따라서는 짐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버려지지 않고 내내 같이 했던 책장은 키보다 살짝 낮은 높이의 3단 6칸짜리 책장이다. 동네 가구점에서 구매했는데, 별다른 특징 없는 두꺼운 나무 판 위에 흰색의 얇은 판을 덧붙인 깔끔한 책장이다. 튼튼한 게 가장 강점일 듯싶은데, 이사하면서 조금이라도 흠이 났다면 별생각 없이 이미 버렸을지 모를 일이다.
6칸짜리지만 안으로도 깊이가 깊어 앞뒤로 책을 두 줄로 꽂는 것이 가능하고, 일반적인 책 높이보다 세로 길이도 길어서 꽂은 책 위로 책을 더 쌓아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한 칸에 50권 이상도 거뜬히 채워진다. 그렇게 채워진 책장에 얇거나 두껍고, 높고 낮은 갖가지 책들이 360~370권 정도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자리가 없는 책장 밖으로 밀려난 책들은 책장과 책상, 스툴 위 곳곳에 흩어져 있는데, 여기저기 쌓인 책들을 볼 때마다 책방이 가지고 싶은 욕망이 더 강해진다.
이사를 할 때마다 한 번씩 책을 정리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초판으로 나온 에세이나 소설 등 몇 권을 제외하고는 그때그때 샀던 책들을 중고서점에 가져가 처리하곤 했는데, 깨끗하게 본 책들은 항상 A급 취급을 받으며 가장 높은 가격에 팔려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처분된 책들이 세상 제일 아깝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책을 읽는 방법이 변하면서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책들이 그리울 지경이다. 책을 활짝 펼치거나 줄 하나 긋지 않고 보던 책들이 내 머릿속에 다 쌓였을 리 없고 발췌해두고 싶은 구절을 따로 메모해두지도 않다 보니 완독을 했더라도 지나치는 책들이 되어 버렸다.
요즘의 책 읽기는 책을 괴롭히는 수준이다. 줄을 치고 생각을 메모하고 접고, 연결되는 책들을 같이 읽느라 책의 중간에 펜을 끼워두어 책이 구겨지기 일쑤다. 그렇게 읽은 책의 메모들은 다시 컴퓨터 메모로 들어가 차곡히 쌓인다. 원하는 정보를 뽑을 때 맞춰서 뽑아 쓸 수 있도록 정리를 한다.
책 읽기 습관이 바뀐 건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선배의 서점에서 열렸던, 책장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북토크를 통해서다. 당시 주제는 일본의 생활용품 브랜드 ‘무인양품’과 관련한 책을 중심으로 연결된 책들을 펼쳐두고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무인양품 디자인˼이라는 책의 주변에 무인양품 아트 디렉터로 활동한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 ˹백(白)˼ 등의 책과 더불어 ‘후카사와 나오토’의 ˹슈퍼 노멀(평범함 속에 숨겨진 감동)˼이 자리했다. 다음 단의 연결된 책장에는 오늘날 일본 산업 디자인의 영향을 미친 일본다운 스타일을 찾고자 한 일본 ‘민예운동’과 이를 이끌었던 ‘야나기 무네요시’와 관련된 책이 놓였다. 한 단락 더 옆으로는 민예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 ‘바우하우스’와 관련 인물들의 책이, 그리고 옆으로 한 단위 더 올라가 ‘존 러스킨’과 ‘윌리엄 모리스’까지 연결된 책이 자리했다. 선배는 이 구성을 ‘맥락장’이라는 이름을 붙여 소개했다. 책의 흐름을 타고 가며 관련한 연결점을 확장해가며 책 읽기를 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이 방법은 책 읽기에 앞서 책을 가지고 책장을 구성하면서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어내는데 훌륭한 목차의 역할을 해줬다.
이후로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연결되고 이 작가와 저 작가가 서로 연결되며, 관심을 두고 있는 것들의 읽기를 하면서 책장의 구성도 여러 영역을 포괄하며 확장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필요에 따라 6칸 안에서 배열을 바꾸고 묶음을 만들어 둔다. 최근의 책장은 ‘공예’와 관련한 장인, 도구, 디자인에 대한 맥락 한 묶음과 ‘큐레이션’에 대한 방식, 전문가와 일, 예술과 문화, 그리고 교양에 대한 맥락을 크게 한 묶음으로 정리했다. 얼마 전 구입한 ˹뉴 큐레이터 (건축과 디자인을 전시하기)˼를 더 잘 읽기 위한 형태의 맥락장을 만든 것이다.
책 읽기의 즐거움에 비례해 책의 양도 급격하게 증가한다. 중간에 다른 책 소개라도 나오면 일단 서점 앱을 켜고 책 재고부터 확인하고 하루 이틀 사이에 책을 사버리게 된다. 곧 비슷한 사이즈의 책장 하나가 집으로 더 들어오게 될 듯한데, 그렇게 되면 넓어진 책장으로 목차 만들기가 한결 더 수월해질 것 같아 기대가 된다. 눈에 보이는 자리에 내 뇌가 하나 더 확장되는 느낌이 들어서다. 어쨌든 당분간은 6칸짜리 책장이 머리와 마음의 지도 같은 역할을 해주며 여전한 읽기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UNIT 08. 생각을 펼쳐낸 물건
NAME. 동네 가구점 3단 책장
FROM. 한국
SINCE. 2007
PRICE. 6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