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이촌 회귀록
대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에 마른 소리가 섞여온다. 바람에 찬 기운이 느껴진다. 까만 차를 탄 산불수호신 할아버지가 오시겠다.
2022년 9월, 몸과 마음이 회복하는데 쓸 수 있는 잔진한 여유와 내일에 대한 기대가 모두 소진되어 메말랐던 그해 가을, 나는 스스로를 살리고자 시골을 찾아다녔다.
두 돌이 되지 않은 아기였던 지우는 시골을 좋아했다. 지우가 자라서 이곳을 떠올리며 잠시 한숨 돌릴 수 있다면, 나의 선택은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았다. 짧디 짧은 주말을 이용해 찾아다니다 보니, 두 달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양양의 햇살집을 만났다. 집과의 두 시간 거리라는 나름의 기준을 간신히 만족하는 곳이었지만,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때 만난 첫 귀한 인연이 산불 할아버지시다. 쭈뼛쭈뼛 집 주위를 맴돌던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셨다. 살가운 강원이웃이라니, 쪼로록 계절을 한 바퀴 돌아와서 회귀하여도 우리는 운이 좋았다. 그 가을의 할아버지께서는 살기 좋은 양양을 소개하셨다. 중간중간 멋쩍게 웃기도 하셨다. 올가을 할아버지께는 따뜻한 쌍화차를 드려야지.
지난봄엔 많은 사람이 걱정했다. 고개를 드는 산나물보다 여린 우리를 대하는 강원을. 결심과, 실행과, 결과도 마냥 쉽진 않았다. 잃은 것도 있고, 얻은 것도 있다. 온정이 넘치는 마을이지만, ‘?’ 하는 순간도 많았다. 내 호두. 먹음직스럽게 열렸던 호두는 다시 찾은 주말엔 볼 수 없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남아있는 딱 두 개의 알을 땄다. 내년 가을엔 꼭 지켜내야지.
어쨌든 삶은 변화했다. 오늘 일과가 끝나면, 내일 할 일에 사로잡혀 쉬지 못했던 지난날과는 달리, 시간을 쪼개어 누리는 법을 알게 되었다.
가을 단비가 내린다. 잠이 덜 깬 출근길, 우산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가만히 들으며 다시 이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든다. 주말엔 앞마당의 대봉을 따다가 곶감을 만들어야지, 나의 일주일 여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