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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꽃봄 Apr 29. 2024

스물아홉, 서른둘

여섯 번째의 상기

   

    생애주기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가장 짙은 푸름을 띌 스물아홉과 서른둘은 남은 인생을 평생 함께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열을 받고자 다섯을 주는 사랑이 아니었다. 세상엔 이런 크기의 사랑도 있답니다, 늘 서로에게 귀감이 되는 눈이 부신 연애였다.


    한차례 이별도 했더랬다. 불꽃이 일어 감정적으로 맞이한 이별이 아니었다. 놓아주고, 떠나가는,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찔끔 나는 가슴 아픈 이별이었다. 우리가 헤어지던 날, 진은 한참 우리 집 앞을 떠나지 못했다. 나도 그가 보이는 창 옆을 떠나지 못했다. 그날 밤은 아주 길게 마음을 시리게 했었다. 그 시린 마음속에는 오롯이 사랑만 남았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했다.


   어린 후배들은 종종 결혼을 결심한 계기에 대해 물어보곤 하는데, 나는 고민 없이 답한다. 자신이 없었다고. 시간은 누구에게나 약이기에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잊고 살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아, 나는 알고 있었다. 다시 행복해질 수는 없다는 것을. 잿빛 하루에 어찌저찌 색을 덮어 놓아도 결국은 섞여 다시 잿빛일 거라고.


   분홍빛 사랑만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에는 많은 형태의 사랑이 더해졌다. 동료애로 똘똘 뭉쳐서 세상에 내놓은 우리의 새 생명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쳤다. 행복이 커져갈수록 사랑에서 파생된 가시도 생겨났다. 자주 서로를 애달파하던 우리는 감정을 여과시키지 않고 쏟아내며 상처 주는 일이 잦았다. 지켜야 될 것들이 늘어나자, 예민해지고, 팍팍해졌다.


   - 엄마, 여보 사랑해.


   여섯 해를 돌아 어제였다. 나의 꽃 지우와 내 둘도 없는 사랑 진이 작은 꽃다발 하나씩을 들고 주일 아침을 열어 주었다. 영문을 모르고 휘둥그레하던 나는 빽빽이 적힌 편지를 읽고서야 여섯 해 전의 오늘을 기억해 냈다. 어떻게 사랑해서 오늘을 지켜냈는지, 그제서야 기억해 낸 것이다.


  자꾸만 기울어가는 하루에 스쳐 지나가는 행복을 들여다보자고 연재까지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곁에 둔 행복에 인색해져 있지 않았나 싶다.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가장 귀한 이 행복에 좀 더 정중해져야 하겠다. 행복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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