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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Oct 29. 2024

'흰'책을 덮으며

흰, 한강

인간은 다른 이의 삶을 얼마나 이해하고 짊어지고 살아갈 수 있는 걸까.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은 언니의 삶이 없어서 살아 있을 수 있었던 여자의 삶은 얼마나 흰 것일까. 흰 얼룩은 정말 다른 얼룩보다 나은 것일까. 흰 것은 정말 흰 것인가. 


질문이 멈추지 않고 던져지는 책이다. 시를 읽고 있는 건지, 누구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건지, 누가 말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혼돈을 느끼며 읽다 보면 어느새 희게 변할 수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책. 


이 책에서 '흰'은 더럽혀지는 색이 아니라 더러움과 결별시키는 색으로 읽혔다. 검은 듯 붉게 태어난 아기에게 입히는 배내옷처럼. 죽은 이의 마지막 길에 그간의 삶을 덮어주는 흰 천처럼. 


하얗게 웃는다.라는 표현은 (아마) 그녀의 모국어에만 있다. 아득하게, 쓸쓸하게, 부서지기 쉬운 깨끗함으로 웃는 얼굴. 또는 그런 웃음. 


너는 하얗게 웃었지.

가령 이렇게 쓰면 너는 조용히 견디며 웃으려 애썼던 어떤 사람이다. 


그는 하얗게 웃었어. 

이렇게 쓰면 (아마) 그는 자신 안의 무엇인가와 결별하려 애쓰는 어떤 사람이다. 


애절하게 '흰' 것을. 


그 흰, 모든 흰 것들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마실 것이다. 


'흰' 것은 깊은 곳에 있다. 내가 삶 속에서 할 일은 심연의 그곳을 들추어내어 내 삶을 덮어주고 누군가의 억울한 삶을 덮어 주는 것이다. 신성한 생명력이 부스러지며, 부스러진 것을 그러모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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