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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본쓰 Sep 24. 2020

O선배의 이직 소식.

(18) 올 것이 왔구나!

 직장 사수였던 O선배는 늘 퇴사와 이직을 입에 달고 살았다. 무릇 직장인들이 꿈꾸는 퇴사와 이직이지만, 그는 조금 달랐다. 이 꿈을 입으로만 얘기했던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기기 위해 매일 구직사이트를 들락날락거리며 매의 눈으로 탐색한 것이다. 심지어는 사무실에서 잠시 쉬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그의 휴대폰에는 항상 구직사이트에 올라온 채용공고가 띄워져 있었다.      


“선배, 뭐해요? 주식 봐요?”

“아니, 사람인 보고 있는데?”

“에? 사무실에 팀장님도 계신데...”

“맨날 본다, 맨날 봐. 팀장님도 아실 걸?”     


 '사무실에서 다른 회사 채용공고를 본다고?'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O선배에게는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팀장님도 알고 계실 거라는 말이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그의 퇴사 내지 이직 도전은 신입사원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입사하기도 전, 그러니까 그가 입사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았을 즈음 다른 기업에 지원해서는 최종 면접까지 응시했던 적이 있었다. 운이 나빴던 것인지, 팀장님과 책임님의 촉이 좋았던 것인지, 그의 일탈은 그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고 O선배는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결과적으로는? 이직에 실패했으니 이 이야기를 쓰고 있겠지. 그 뒤로는 이직할 만한 마땅한 기업이 없는 탓에 이직 생각을 잠시 접은 그였다. 하지만 줄곧 이 회사를 떠날 것이라는 그의 말이 뜬 구름 잡는 소리 같지는 않았기에, 나도 언젠가는 그도 떠날 것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날이 되도록 천천히 오기를 바라면서.  




 어느 금요일, 그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날이 가까이 왔음을 직감했다. 여느 때처럼 정신없는 금요일을 마무리하고 퇴근길에 나선 나는 휴대폰에 남겨진 부재중 전화 한 통과 카카오톡 메시지 한 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연차로 출근하지 않았던 O선배의 연락이었다.

 

‘퇴근하고 전화 좀 해줘.’


업무 전화겠거니 하고는 바로 O선배에게 전활 걸었다.


“에, 행님, 전화 달라고 하셔가꼬.”

“어, 퇴근했나?”

“네네, 방금 퇴근하고 이제 부산 갈라구요.”

“아. 딴 게 아이고… 내일 시간 되나?”

“내일요? 아, 내일은 안될 거 같은데...”

“하루 종일?”

“네네. 친구들 만나기로 해서. 왜요?”

…… 아, 그러면 일요일은 시간 되나?”


 평소와는 다른 O선배의 목소리와 휴대폰 너머로 느껴지는 그의 머뭇거림. 뭔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네네. 일요일 버스 오후 3시니까 그전에는 다 괜찮아요. 왜요?”

“얘기할 게 있어서… 뭔지는 만나서 얘기해주께.”

“어 뭔데요? 지금 얘기해주면 안 돼요? 궁금한데?”

“아이다, 만나서 얘기하께.”

“아, 중요한 얘긴갑네. 지금 얘기 안 하는 거 보니까.”

“어. 중요한 얘기. 일요일에 만나서 얘기하자.”

“네네, 알겠어요. 들어가세요.”


 보통 약속을 잡는 전화에서 만나는 목적을 밝히는 그였지만, 이날은 달랐다. 재차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았고, 그랬기에 내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1분 정도 되는 통화에 나는 뭔가에 맞은 듯 머리가 멍해지고 왠지 모를 불안감이 나를 덮쳤다. ‘무슨 얘기지?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나? 신변에 큰 변화가 있나?’ 이것저것 생각해보니 불안한 마음은 더 커졌고, 그 생각들과 불안감은 모두 한 가지를 향하고 있었다. 퇴사.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을 지나 일요일 아침까지도 나는 그 중요한 얘기가 무엇일지 궁금해했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이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들의 반응은 ‘그 선배가 너 좋아하는 거 아니냐’라는 식의 장난부터, 내 생각과 마찬가지로 ‘퇴사 아니면 이직 맞는 것 같다’까지. 하지만 나는 원래 촉이 없고 둔한 사람이었기에, 이번에도 그저 이 직감이 틀리기만을 바랐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렇게 안 찾던 신도 찾았을까. ‘하나님, 제발 퇴사나 이직 아니게 해주세요.’


 내가 그의 퇴사와 이직을 그토록 두려워했던 이유는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가 없는 직장생활은 너무 고달프고 끔찍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O선배는 늘 만능이었다. 중국 현지인으로 의심받을 만큼 유창한 중국어 실력에, 업무적으로도 남다른 센스, 남들과 금세 어울리는 것 등등. 모든 걸 놓고 봐도 사원들 사이에서는 낭중지추였던 존재였다. 그랬기에 팀장님과 책임님의 신뢰를 한가득 안고 있었다. 그에 따른 업무 비중도 항상 O선배가 상당 부분을 차지했고, 그가 없는 해외파트는 난장판 그 자체였을 것. 그에 반해 나는 여전히 그의 보호와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2년차 직린이였다. 내 업무 실력은 그를 따라가기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고, 늘 그의 도움과 보호를 필요로 했다. 실제로 업무 도중 모르는 것이 있거나 도저히 내 선에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으면, 어떻게 알고는 먼저 구원의 손길을 뻗어 나를 도와주곤 했었다.

 업무적으로만이 아니라, 인생 선배이기도 했던 O선배. 이 이야기의 처음도 O선배의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되었었고, 입사 후에는 직장생활에 너무 지친 나를 다독여준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의 모습을 보며 힘을 얻으며 버틸 수 있었고. 그가 없었다면, 나는 입사한 지 3개월도 안 되어 퇴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그의 퇴사와 이직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물론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언젠가는 찾아올 일이라 생각은 했지만, 지금은 아니길 바랐다. 정말 간절하게. 하지만 일요일 오후, 퇴사와 이직이라는 그 직감은 적중해버리고 말았다.

   



“행님, 먼저 와있었어요?”

“어어, 커피 먼저 시키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O선배는 미리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뒤늦게 도착한 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는 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그는 입을 열었다.


“H, 나 중국 간다.”


 역시, 이직이었다. 기대와 바람이 빗나갔을 때의 그 허탈감. 나는 순간 그런 감정들을 느꼈고, 헛헛한 웃음만을 지었다. 내색하지 않으려 지은 웃음이었지만, 그 웃음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묻어져 나왔나 보다. O선배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미안타, 니 놓고 먼저 가서."

"아, 아니에요. 잘 됐네! 무슨 회사예요? 반도체 쪽?”

"칭다오에 있는 외국계 회산데, 반도체 쪽은 아이고."

"아아... 가는 건 언제 가는데요?"

"아마 다음 달?"

"에? 다음 달? 금방이네. 면접은 언제 봤는데요?"

"내 얼마 전에 연차 썼다이가. 금요일날. 그날 칭다오 가서 면접 보고 다 했지."

"아, 그때? 출장 갔다와서 금요일날 연차 쓴다고 했을 때? 와, 대박."

"이번엔 팀장님이랑 책임님한테 안 걸릴라고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하고 갔다. 티도 안 내고… 그리고 내 저번 주에 니랑 L이랑 저녁에 치맥 했었다이가. 그때 얘기해줄라다가 안 하고, 눈치만 줬는데 몰랐나?"

"와, 대박. 그때 막 술 취해서 일부러 그런 얘기한 줄 알았는데, 그게 다 복선이었네!"


 돌이켜보니, 며칠 전 부사수 L과 O선배가 함께한 저녁 술자리에서 선배가 이상한 얘길 했었다. ‘너희도 무기 하나씩 준비해두고 이직 생각하고 있어라, 첫 회사는 딱 3년 채우고 나가는 게 좋은 것 같다, 일에 너무 몰두하지 말고 다른 방향으로도 항상 눈을 돌려라’ 등등. 그땐 그렇게 꼰대 같고 뭔 소리인가 했는데, 이제야 그 말들이 모두 주사가 아닌 이직을 암시하는 말인 걸 알게 되었다.

 어찌했든 O선배는 헤드헌터를 통해 중국 칭다오에 소재한 한 외국계 기업으로 스카우트되었고, 지금 받는 연봉의 2배 정도 되는 높은 연봉, 사택 제공, 이른 퇴근 시간까지 3박자가 들어맞는 조건에 이직을 결정한 것이다. 사실 나로서는 이런 것들이 부럽기보다는 막막함이 앞섰다. 내게 똑같은 조건과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나는 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았다. 지금 하는 일도 이렇게 벅찬데, 외국에 소재한 기업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지금의 자리라도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막막해진 것이다. ‘나 혼자 그 많고 어려운 일들을 잘 해낼 수 있을까, O선배 없이 나와 L이 해외파트를 잘 지킬 수 있을까, 나는 이제 힘들면 누구에게 기대야 하나’ 이런 막막한 생각들.




 1시간 30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이어진 둘의 대화는 축하의 말과 함께 끝이 났다. 집에 돌아오는 길, 그리고 부산에서 구미로 향하는 버스에선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한 고민과 걱정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O선배의 퇴사, 이직이 기정 사실화된 상황에서 나는 그동안 그토록 두려워하고 걱정해왔던 현실을 당장 마주하게 된 것이다.

 목표 없이는 버티기 힘들다 생각해서, 나 스스로 그 기간을 3개월로 잡았다. 그가 떠난 뒤 3개월 동안 어떻게든 버틴다면 그 뒤로는 계속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대로, 그 3개월을 버티지 못한다면… 바로 퇴사할 생각이었고. 업무적인 부분도 생각하면서 동시에 인생에 대한 방향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O선배는 다양한 경험과 뛰어난 중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이 일을 시작했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외국계 기업으로 스카우트되어 멋진 30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당장 내년이면 나도 서른 줄에 들어갈 것이고, 그때부턴 어떤 일을 하든지 평생의 업(業)으로 삼아야 했다. 하지만, 이 일을 계속 하기에 나는 아직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나도 다른 곳으로의 이직을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그처럼 멋지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삶이 30대부터 펼쳐질까? 너무 많은 생각들을 해서인지 정신은 점점 흐릿해졌고, 내 미래도 흐릿해져만 갔다.


 다음날인 월요일. O선배는 팀장님과 J책임님께 퇴사 통보와 이직 소식을 전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팀장님과 책임님은 물론, 막내 L을 포함한 팀원 모두가 난리였지만 그가 내린 결정들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O선배가 내게 얘기한 대로 그는 한 달 뒤 회사를 떠나는 것으로 확정되었고, 그때부터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나의 홀로서기 연습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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