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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Aug 31. 2024

내가 좋아하는 괴로움의 종류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기쁨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한국에서 독서란 여전히 완수해야 하는 수단이지, 읽는 기쁨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 나도 도장 깨기 하듯 책을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텍스트(Text) 속 보이지 않는 문맥(Context)을 발견하는 기쁨보다 텍스트를 소비하듯 완주했다는 사실에 더 기뻤다고 할까. 마치 신입사원이 본인의 일이 어느 범위까지 영향을 미치는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일을 끝냈다는 자체에 기뻐하듯 말이다.


독서라는 행위는 자본이 아니라 부채다. 하지만 사람들은 책을 읽다 보면 언젠가 바뀌겠지. 언젠가 성장하겠지 생각하면서 고통을 참아낸다. 의지가 있을 땐 고통을 참아내기 쉽지만 사람의 의지란 외부 변수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우선순위에 밀리기 일쑤고, 그렇게 낮아진 우선순위는 힘들게 낚아채지 않으면 다시 올라오지 않는다.


 요즘 글을 쓰면서, 혹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김영민 교수의 책 <가벼운 고백>에서 나온 문장을 많이 인용한다. 최근에 읽은 책 속 문장은 아직 체득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쉽게 떠오르지 않는데 아래 문장은 워낙 인상 깊어서 금세 체득이 돼버렸다. 


너희가 고통을 사랑하느냐, 적성을 찾는다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괴로움의 종류를 찾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책을 읽는 행위가 고통이듯,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고통이다. 하지만 이 고통에는 차이가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의무감으로 인한 고통이라면, 내가 느끼는 고통은 김영민 교수가 말한 좋아하는 괴로움에 가깝다.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 본 영화를 다시 보는 것.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때 텍스트로 정리하는 것. 텍스트 속 콘텍스트를 찾아내는 것. 이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괴로움의 종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돈과 시간'을 들여 기꺼이 투자할 수 있는 애들이고 타인에게 굳이 조회수나 좋아요로 인정받지 않아도 된다. 그저 스스로 만족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보상이 된다.


요즘에는 '경험'이라고 하면 무조건 좋다는 인식이 팽배해 새로운 경험을 접할 때면 '나 이거 좋아하는 것 같아!'를 너무 쉽게 남발하는 것 같다. 그리고 며칠 지나면 금세 다른 경험을 좋아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정작 찾아 나서야 하는 건 새로운 경험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괴로움의 종류를 찾아 나서야 하는 거 아닐까. 만약 찾게 된다면 '이거 좋아하는 것 같아'라는 말 대신 '이거면 그래도 괴로움을 참아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것이다. 좋아하는 것에도 언제나 괴로움은 따라온다. 그러니 좋아하는 괴로움의 종류를 찾아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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