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당부하는 뜻은 실재를 마주하는 활기찬 삶을, 활기차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든 없든 말이지요."
책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회사를 그만두고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표정이 좋아졌다'는 말이었다. 스스로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나를 보는 사람마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회사를 다닐 때부터 오랜 시간 알고 지냈던 사람에게 물었다.
"그럼 전에는 어땠어요?"
"항상 신경 쓸 게 많아 인상 쓰고 있는 느낌이랄까. 늘 뭔가를 골똘히 집중하는 표정이 많았어요"
아. 그 표정. 스스로 마주친 적은 없지만 무슨 표정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랬구나. 표정이 훨씬 편해졌구나. 뭔가를 계속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과거의 내 표정으로 드러났다면 이제는 좀 더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훨씬 부드러워졌구나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혹은 타인)이 뭔가를 시작한다는 다짐의 말을 잘 믿지 않는다. 절실하다면 몸이 먼저 나서고 말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나를 지켜보던 사람이 한결 편해진 내 표정을 발견했듯이 전과는 다른 변화가 감지될 때 사람들은 '새롭게 시작하시는 거예요?'라는 질문을 먼저 건네온다.
많이 알면 언어적으로 잘 풀어내는 경우는 많아도 좋아하는 건 비언어적인 눈빛이나 몸짓에서 드러난다. 전자를 보면 '저 분야에 되게 바삭하시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면 후자는 '저 사람 저거 좋아하네'라는 생각부터 찾아온다.
분야에 바삭한 상대를 만날 때는 주로 듣는 입장이지만, 눈빛에서 좋음이 드러나는 사람들에게는 꼭 '그 분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건넨다. 스스로도 이미 아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건넨 말을 통해 처음 깨닫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들이 갖가지 이유로 삶에서 흐려질 때 사람들의 반짝이는 눈은 초점을 잃는다. 무엇을 말해도 냉소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 주어진 일 외에 다른 것들엔 의미 부여하는 것이 에너지를 잃은 행위라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눈빛에서 생기를 잃어간다.
여기가 좋아서 있는 게 아니라, 저기로 가기가 두려워서 여기 있는 것이라면, 반드시 저기로 가야 한다.
책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 정지우
현재 눈빛에서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면, 혹은 이미 잃어버렸다면 지금 여기가 좋아서 있는 것은 아닐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눈빛에 생기를 부여해 주는 저기로 반드시 가야 한다. 그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 글을 쓰는 나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훨씬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가 좋아서 있는 것이라면, 저기는 더 좋지 않은 한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여기가 좋지 않은 거라면 반드시 저기로 가야 한다. 나는 그 저기를 '자기만의 방'이라고 부르고 싶다. 자기만의 방에서는 누구든지 눈빛이 반짝인다. 여전히 뭘 좋아하는지 몰라 방황하고 있다면 뭘 할 때 눈빛이 반짝이는지 끊임없이 시도해 보는 게 중요하다. 그 과정 중에 시간, 돈, 에너지 어느 것 하나 효과적으로 쓰는 것이 없을지언정 적어도 나답게 만들어주는 힌트를 찾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