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책 읽는 능력 자체가 재능화가 되어가는 거 같다. 10년 넘게 오프라인, 온라인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책 읽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다.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은 머릿속에 '자기만의 방'이 있어서 그 안에서 잔뜩 읽을 책을 쌓아놓고 혼자 읽는 걸 좋아한다. 이런 사람들은 주로 문학 장르를 선호한다.
적당히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반 대중에 가깝다. 이들은 실용서를 선호한다. 요즘 무엇에 관심 있는지에 따라 자기계발, 경제, 경영/창업, 취미 등으로 장르가 분화된다. 몇 년 전부터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경제 분야인 것 같다.
사람들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스스로는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볼 때 그들은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이지, 책 자체를 열렬히 좋아하진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남들과 '책'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즐겁지만 혼자서 그 책을 읽고 있진 않는다.
독서모임 시장은 점점 커지는 느낌이 들지만 독서 시장은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 독서모임에 오려면 완독이 필수였는데, 사람들은 이제 완독 자체를 버거워한다. 독서모임할 때 완독 여부를 체크하진 않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해를 못 하고 있는 표정이 느껴질 때 '어디까지 읽으셨어요?' 물어보면 절반 내지 혹은 앞부분 정도밖에 못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니까. 다 읽어야 참여할 수 있는 모임에 점점 읽은 척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쉬운 일만 찾다 보면 어려운 일을 못하게 된다. 숏폼(짧은 영상)에 익숙해지면 긴 영상을 온전하게 못 보듯, 책 한 권을 온전히 읽지 못하면 읽은 척하기만 쉽다. 읽은 척의 가장 큰 문제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은 많은데 정작 본인의 생각으로 정리해서 말이나 글로 내뱉지는 못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을 옮기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활자라는 바닷속에서 유영하는 것이 아니라 뭍에 앉아 '난 수영을 하고 있어'라고 하는 느낌이랄까.
활자 안에서 유영하는 사람들이 귀해지고 있다. 올해 열렸던 서울국제도서전에 인파가 몰렸다는 소식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놀랐는데 원래 도서전이나 서점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다. 당장 교보문고 강남점만 가더라도 '우리나라에 이렇게 책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느껴질 정도니까. 시장이 작아질수록 응집력은 강해진다. 점점 서있을 곳이 적어지니, 온전하게 서있을 수 있는 곳에 사람이 몰리는 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