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금쪽이와의 대화법

대쪽같은 내 새끼와 몹시도 불친절한 아빠

by 신지훈


코로나가 한창 시작되던 봄날,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흥미로운 육아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관찰을 통해 금쪽이(자녀)가 어떤 문제 행동을 하는지 확인하고, 아이의 속마음도 들어본 뒤, 적절한 솔루션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하여 개선된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다.


금쪽 처방이라 불리는 솔루션은 국가대표 육아 전문가 오은영 박사에 의해 내려진다. 오은영 박사의 예리한 관찰력과 공감능력, 그리고 입이 떡 벌어지는 해결방법을 통해 아이가 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면 시종일관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주로 미취학 아동부터 초등학생까지 금쪽이로 나오다 보니, 남일 같지 않은 심정으로 지켜보게 되었다. 때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아이의 행동을 보면서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을지 떠올려 보곤 했는데, 상상 속의 나는 대부분 이성을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고민을 의뢰한 부모의 행동이 되려 문제의 원인이라거나, 혹은 작은 문제를 몇 배로 키우는 촉매제라고 종종 진단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오은영 박사는 부모 당신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나무라지 않고, 부모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한 발짝 더 들어가 보는 것이었다. 그러면 놀랍게도 엄마나 아빠의 어린 시절 자신의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음이 드러나고, 그 사실을 고백하며 오열하면서 부모도 그 순간만큼은 내면의 자신과 솔직하게 마주했다.


이후의 과정은 먼저 부모가 진심으로 자녀를 달리 대하게 되고, 아이도 조금씩 나아지게 된다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어쩌면 육아 교과서에나 나올 것 같은 이상적인 방법론이 현실에서 마법같이 적용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놀라웠다.


이렇게 유익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폭풍 공감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텔레비전 밖의 현실은 달랐다. 우리 집에서는 대쪽 같은 내 새끼(제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말다툼이 잦아졌다. ‘일어나라, 밥 먹어라, 세수해라, 공부해라’ 등 대부분 제이에게 무언가를 지시할 때 다툼이 발생했다.


그 상황에서 혹여 내 말을 건성으로 듣거나, 장난처럼 대꾸하거나, 거부하며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고 하면 순간 감정이 욱해지며 급발진의 순간이 찾아왔다. 육아휴직 기간 중에 매일 한 두 번씩은 다툼이 있었던 것 같고, 휴직 이후에도 종종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처음에는 내가 혼내는 모양새였는데, 결국 유치한 말다툼으로 이어지기 다반사였다. 이런 모습을 아내가 목격하면 “당신이 제이랑 같은 나이야? 왜 애랑 똑같이 행동을 하려고 해”라며 정색을 했다. 그러면 얼렁뚱땅 서로 사과하며 상황은 종료되었다. 더 큰 문제는 엄마가 없는 상황에서 주로 발생했다.


나와 단 둘이 있을 때 제이가 말대꾸를 하면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일단 말다툼이 생기면 어떻게든 제이의 말대꾸(제이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대답)를 신속히 제압하고 굴복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이게 다 너 잘 되라는 것’이라는 논리로 무장한 말발과 고성을 동원하여 제이의 잘못을 인정하게 하고, 사과를 강요했다.


체급이 한참 달라도 다른 제이를 싸움의 상대로 여기고, 코너로 몰아놓고는 억지 반성과 억지사과를 강요했던 것이다. 그 뒤 시간이 좀 지나면 아빠도 화내서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잘 하자는 식으로 사과인지 2차 공격인지 불분명한 말을 했다.(써놓고 보니 마치 가스라이팅이라도 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는 내용인데, 평소 제이가 아빠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임을 밝혀 둡니다.)


생각해보면 내 차가운 말 한마디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설령 제이가 속을 긁는 말을 해도 일시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하며, 가급적 좋게 좋게 웃으면서 말하면 되는 일이었다. 허나 ‘짜증 나도 참아야지’ 하며 흥분을 눌러 놓아도 임계점을 넘는 순간 통제불능인 내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제이가 내 뜻을 따라주지 않을 때마다 쉽게 불안을 느꼈고, 딸에게 무시당하는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사실 이건 부풀려진 감정이고, 오해며, 아빠로서는 해선 안 되는 소통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다툼이 있은 뒤, 가끔 제이가 먼저 내게 와서 손 내밀고 사과를 할 때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육아휴직이라는 시간을 통해, 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고민을 엿보면서 좋은 아빠란 무엇인지, 좋은 부모의 태도는 무엇인지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규칙에 복종하는 말 잘 듣고 착한 아이로, 마치 조련하듯이 제이를 대하던 내 방식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단지 부모라는 이유로, 나이가 더 많고, 경제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해서, 부모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이 넓은 세상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우연히 만난 개인들이 서로 노력하고, 배려해야 비로소 행복하고 안정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정적으로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고루한 인생의 조언이 고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육아휴직을 썼다는 것만으로 좋은 아빠라고 할 수 없다. 서로 마음이 불편한 상황에서 제이를 일방적으로 억누르거나 그저 시간이 해결해주기만을 기다리며 손을 놓고 있다면 그 관계에는 앙금이 쌓일 것이다. 10년 뒤, 그리고 20년 뒤에는 회복 불가능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이제 나의 다짐을 적어본다. 위압적인 태도나 상처 주는 말은 절대 하지 않기로 한다. 혹여 그런 일이 있다면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지 않는다. 항상 아이보다 먼저,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한다. 용서나 이해는 상대방의 몫임을 인정한다. 내 아이에게 명령이나 지시가 아닌, 권유나 정중한 요청을 하는 아빠가 되기로 한다.


물론 열 번에 한두 번쯤은 폭발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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