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밤편지

주는 것 이상 돌아 오는 사랑

by 신지훈

“실화냐. 벌써 여섯 시라니.”

“미안, 여보.”

“뭐가?”

“나는 안 나가잖아.”

“뭐래. 내일 많이 춥다는데 걱정이네.”


세상 모든 직장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월요일을 하루 앞두고,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해지는 일요일 오후였다. 육아휴직을 하고 나니 출근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져서 좋긴 한데 가족들 앞에서 내색할 수는 없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만 갇혀 있었더니 주말이 훌쩍 지나갔다. 연 이틀 늦잠을 잤고,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어영부영 벌써 일요일 오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갔다. 어떻게 보면 평온한 휴식 같지만 휴식도 휴식 나름. 눈에 안 보이는 존재들이 소중한 시간을 갉아먹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많은 것들이 멈췄어도 새로운 월요일은 어김없이 다가 오고 있었다. 여전히 어른들은 회사 가기 싫듯, 아이들이 학교 가기 싫은 것 또한 마찬가지다.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아빠, 혼자 논다고 자랑이야?”

“넌 온라인 클래스잖아.”

“나도 피곤하거든?”





- 여보, 이거 너무 감동이지?


다음 날, 출근한 아내에게 도착한 메시지에는 포스트잇에 또박또박 써 내려간 손편지와 화장대 의자 위에 가지런히 올려진 옷과 목도리 사진이 담겨 있었다. 둘 다 제이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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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엄마, 일어났구먼.

오늘이 월요일이라 많이 힘들지?

그래도 오늘 많이 힘내.

사랑해, 제이가.


춥다는 이야기를 흘려 듣지 않고 옷과 목도리를 코디해주고 편지까지 남겨주다니.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제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 와, 자기 좋겠네. 언제 쓴 거지?

- 우리 자는 사이에 몰라 와서 썼대.

- 옷은 또 뭐야?

- 어제 일기예보 보고 직접 골랐대.


우리 가족의 겨울 일상은 어둠에서 시작해서 어둠으로 끝났었다. 퇴근 후 아내와 함께 제이를 데리고 오면 어느새 컴컴한 밤이었고, 새벽에 출근할 때도 여전히 어두웠다. 잠자는 시간 말고는 함께 하는 시간이 항상 부족했다.


아직 엄마와 아빠가 왜 둘 다 회사에 가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던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우리 부부에게는 작은 습관이 있었다. 할머니 집과 우리 집을 넘나드는 두 집 생활 시절에 만든 습관이었다. 집에 온다고 해도 어린이집에 다녀와서 느지막하게 저녁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제이에게는 엄마, 아빠와 보내는 시간에 대한 갈증이 많았다. 길어야 두 세 시간 놀다가 바로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제이에게는 자기 집이 마치 기숙사처럼 느껴졌을 시간이었을지 모르겠다. 이런 생활 속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외로움이나 공백감이 제이의 마음속에서 싹트지 않게 하고 싶었었다. 혹시라도 그런 마음이 생긴다면 조금씩이나마 지워주고 싶었다. 그래서 제이에게 수시로 포스트잇이나 메모지에 간단한 손편지를 써서 방 여기저기 붙여놓곤 했었다. 손편지에는 ‘사랑해’, ‘행복한 하루 되자’, ‘밥 잘먹고’ 등과 같은 일상의 평범한 안부 메시지들을 적었다. 제이는 그런 편지를 받고 때로는 좋아했고, 때로는 심드렁했었다.


아마도 내가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난 뒤,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엄마가 외롭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종종 퇴근 전이나, 자고 있는 사이에 엄마 화장대 거울 앞에 엄마에게 깨알같이 사랑고백을 남겨두거나, 옷장 속에 몰래 아침 인사를 숨겨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이를 보듬기 위해 했던 행동이 되돌아오는 모습에 알 수 없는 뭉클함이 느껴졌다. 이제는 엄마, 아빠 이상으로 되돌려주고 있었다.


“제이야, 아빠도 편지 받고 싶은데...”

“아빠는 출근 안 하잖아.”


예쁜 짓의 수혜자는 죄다 엄마라는 사실에 속마음을 드러냈다가 오히려 핀잔만 들었다. 아마도 필요한 순간에 자주 함께 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엄마에 대한 애착이 상대적으로 더 깊어졌을 것이다. 회사에서 유연하게 출퇴근 시간을 조절할 수 있었던 나와 달리 아내는 그러지 못했다. 아내는 경력직으로 입사하여 연차가 많이 쌓이지도 않았다.


때문에 제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학교나 학원에 선생님을 만나러 가야 할 때 대부분 내가 제이와 함께 했다. 그런 경험이 쌓이고 쌓여 엄마에 대한 애틋함이 더 깊어졌을 것은 당연하다. 초등학교 가자마자 아빠하고는 말도 안 하려는 아이들도 많다는데 이 정도면 만족하자 싶었다.


어느새 회사에 복귀한 지 3주쯤 지난 밤이었다. 친구들과 회사 근처에서 모처럼 술 한잔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오후 11시였다. 먼저 퇴근한 아내가 제이를 데리고 집에 왔고, 둘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었다. 현관문을 조심스레 닫고 들어오는데 신발장에 A4 용지에 큼지막하게 적힌 제이의 편지가 날 반겨주었다.


아빠, 피곤하지? 잘자, 사랑해.

나 먼저 잘게.

이건 아빠가 떼어서 가져. 안녕.


다행히 내게도 지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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