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ON / OFF

하나부터 열까지…

by 신지훈

30대의 아이유가 무려 10대 시절에 부른 시대의 명곡 <잔소리>에 이런 소절이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그 소절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살짝 흔들린다. 마치 세상 모든 잔소리들이 그 한 줄 아래서 순한 얼굴을 되찾는 것만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 내가 뱉는 잔소리들은 그만큼 곱지도, 노랫말처럼 아름답지도 않다.


일찍 좀 자라

양치 좀 해라

겉옷 좀 챙겨라

스마트폰 좀 그만 봐라.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말이 내 입을 떠난다. 잔소리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반복되면 이건 거의 부모의 생활 리듬에 가까운 일종의 배경음에 가깝다. 잔소리는 ‘가늘고 작은 소리’에서 파생된 말로,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참견하거나 꾸짖는 말을 뜻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문제는 ‘필요 이상’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말들을 할 때마다 마음 한편이 어쩐지 민망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밤늦게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 속 짧은 영상들을 기웃거리며 하루의 끝을 허물어뜨리는 사람,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제이에게는 “폰 좀 내려놔라”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이불속에서 화면 밝기를 최저로 낮춰 끝까지 스크롤을 내리고 있다. 스마트폰으로도 모자라서 전자책을 본다는 핑계로 태블릿 거치대까지 침대에 세팅해서 잠이 쏟아질 때까지 보곤 한다. (전자책보다 너튜브 보는 시간의 총합이 월등하다.)


잔소리란 건 어쩌면 내가 지키지 못하는 것들을 아이에게 떠넘기는 묘한 사랑의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늘 부끄러움을 동반하고, 부끄러움은 종종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향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요즘 주변 지인들에게 농담 반 진심 반의 조언을 건넨다. 사춘기 아이에게 절대로 하면 안 되는 말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무엇을 하라’는 말이고,

두 번째는 ‘무엇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뜻이다. 다들 피식 웃지만, 나는 실제로 그런 순간들을 목격한 적이 있다. 말을 줄이면 아이가 쉬어갈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에 바람이 지나가듯 어느 날 아이가 천천히 다가오는 경험을 한다. 조급함이 잠시 내려앉으면 아이의 마음이 뜻밖의 길을 선택하는 순간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무언가 일어난다는 역설을 나는 불쑥불쑥 경험하며 산다.


물론 내 바람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요즘의 제이가 조금 더 살갑게 다가와준다면, 그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될지 잘 안다. 아침 등굣길에 가볍게 허그를 해준다든가,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 하고 툭 내뱉는 말 한마디 같은 것.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아빠라는 존재를 얼마나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지도 난 이미 알고 있다. (엄마아빠가 함께 읽어야 할 육아 에세이 - 아무래도 잘한 것 같아 - 참고)


그래서 때때로 묻는다. 제이에게 ‘조금만 더 살갑게 해 줘’라고 바라는 마음은 잔소리일까, 아니면 애원일까. 하지만 그 둘의 경계는 아주 미세해서 나조차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아마 그 모호한 경계가 부모라는 사람들이 평생 머무는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흘러간다. 사춘기의 계절도 언젠가는 지나가겠지만, 지나가는 동안 나는 조금씩 배운다. 말을 덜 하는 법, 기다리는 법, 아이의 속도를 억지로 앞지르지 않는 법. 무엇보다도, 아이의 침묵도 충분히 말이라는 걸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언젠가 제이가 툭 하고 “아빠, 요즘 왜 잔소리 안 해?”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아마 웃으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음… 따로 다 적어놓고 있어.”


말 대신 기다림을 건네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요즘 내 잔소리의 결말이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20화느낌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