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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 Dec 19. 2023

넝쿨째 들어온 호박

소소한 오늘의 밥상



  엘리베이터에서 3호에 사는 옆집 부부와 마주쳤다. 오며 가며 인사를 하는 부부로 언제 봐도 다정해 보이는 이웃이다. 오늘은 아주머니께서 커다란 호박을 한 아름 안고 계시기에 여쭈어 보았다.

"호박이 아주 크네요. 시중에서 그렇게 큰 건 못 봤는데 어디서 사셨어요?."

"아, 친구가 농사지은 호박이에요, 지난번에 맛있게 먹었다고 했더니, 오늘 또 주네요. 새우젓 넣고 조림하면 정말 맛있어요. 호호호.

호박 좋아하시면 드릴까요? 시중에 파는 것하고 비교가 안 돼요."

"네. 주시면 감사하죠. 호호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웃으며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많은 얘기를 나누는 이웃은 아니지만 마주칠 때마다 밝은 미소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이웃 간의 밝은 미소는 돈 안 드는 복을 쌓는 것이다.

이는 불교에서 보시바라밀의 무재칠시(無財七施) 중에 화안시이.

재물 없이 베풀 수 있는 7가지 보시 공덕에 화안시(和顔施)가 있는데, 화안시(和顔施)는 화할 화에 얼굴 안 베풀 시이다. 부드럽게 미소를 띤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공덕인 것이다.


"딩동, 딩동, 딩동~"

  주말 아침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어제 늦어서 오늘 가져왔어요. 호호호."

"어머나~이렇게나 많이 주세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호호호."

  커다란 호박을 절반으로 싹둑 잘라 주다니...

넝쿨째 들어온 호박을 가슴에 안아보았다. 묵직하게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이 호박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즐거운 고민으로 빠져들었다.

'호박찌개? 호박죽? 호박수프? 호박튀김? 호박나물?' 어제 끓여놓은 김치찌개가 있어서 호박찌개는 아쉽지만 스킵하고. 아주머니의 레시피대로 하고 싶지만, 새우젓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아직 주문을 안 했다.

:(

이럴 때는 유튜브찬스를 써야 한다. 구독하는 세프 선생님을 서칭하고 알고리즘으로 뜨는 다른 채널도 살펴본다. 나의 요리는 "Simple is the best!"


  호박을 3 등분해서 3가지를 해보기로 했다. 달달한 호박조림, 매콤한 호박조림, 부드러운 호박수프.

첫 번째 달달한 조림은 지름 4cm로 자른 호박을 냄비에 설탕 1:물 1을 붓고 10분 끓이다가 호박을 넣고 달달하게 졸인다. 두 번째 매콤한 조림은  기름을 살짝 두르고 자른 호박을 볶은 후 간장과 고춧가루를 넣고 뚜껑을 덮은 후 매콤하게 졸여준다. 그리고 세 번째 부드러운 호박수프는 물을 자작하게 넣고 10분 끓인 후 방망이 믹서로 곱게 갈아 준 다음 생크림을 넣고 눌지 않게 저으면서 끓여주면 호박수프 완성이다.

 호박이 음식으로 변한 시간은 2시간. 탕후루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호박 탕후루했다고 하니 맛있게 먹는다. 야채 안 먹는 아이를 위해 야채 탕후루를 개발하면 좋겠다.  

그리고 매콤한 호박조림은 저녁에 안주로 곁들여 먹기로 하고, 부드러운 호박수프는 내일 아침 메뉴로 낙점해 두었다.



호박죽

"딩동, 딩동, 딩동~~"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2호인데요. 호박으로 수프를 끓였어요.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호호호"

"어머나~ 안 주셔도 되는데,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호호호"

며칠 뒤, 3호 아주머니는 호박수프를 담았던 그릇과 함께 귤을 주었다. 넝쿨째 들어온 호박은 이웃의 정을 안겨주고 신데렐라처럼 12시에 변하는 호박마차가 아닌 화안시를 하는 모습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아파트에 살면서 이웃의 정을 느끼기 쉽지 않지만, 가끔은 사소한 친절로 이웃의 정을 나누는 것은 좋은 것 같다. 엘리베이터에서 핸드폰만 바라보는 것보다는 화안시로 가벼운 안부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소소한 살아가는 재미이지 않을까.

11월, 때 이르게 찾아온 추위지만 따뜻한 이웃이 있어 풍요로운 밥상을 차린 주말이었다.



《잡보장경雜寶藏經 卷第六, 무재칠시無財七施》

“네가 이 일곱 가지를 몸소 행하여 습관이 붙으면 너에게 행운이 따르리라.”


첫 번째, 안시(眼施)

호의를 담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기

두 번째, 화안시(和顔施)

온화하며 부드럽고 미소 띤 밝은 얼굴로 사람을 대하기

세 번째, 언사시(言辭施)

따뜻하며 다정하고 부드러운 말로 사람을 대하기

네 번째, 심시(心施)

따뜻한 마음과 선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기

다섯 번째, 신시(身施)

몸으로 할 수 있는 봉사하기

여섯 번째, 상좌시(床座施)

자리를 양보하여 내어 주기

일곱 번째, 방사시(房舍施)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방이나 집을 제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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