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
슬기와 밍의 발대식은 2차로 이어졌다. 아무래도 맨 정신으론 이 미친 싸움의 해결책을 생각해 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친 싸움에는 미친 정신으로! 그들은 술을 한번 마셔보기로 했다. 남들에겐 달고 단 그 술이 그들에겐 너무 쓰고 썼다. 마치 그들의 현재 상황처럼.
으… 그렇게 한잔 두 잔 술잔을 걸치고 있는데 티브이 너머로 한 가지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 작가 000 한국인 최초 노벨상 수상!
그 공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환호했다. 아, 맞다. 여긴 마동구지. 출판인들의 성지. 그렇게 자기 일도 아니면서 모두 한 마음이 되어 환호성을 터뜨렸다. 슬기는 어쩐지 이 풍경이 슬프다고 생각했다. 자기 일도 아니면서 기뻐하는 저 마음을. 그러면서 자기 자신도 기쁘면서 어쩐지 기쁘지만은 않은 이 복잡 미묘한 기분을 쉽게 설명할 수 없었다.
아무리 이 나라에서 노벨문화상이 나오고 평화상이 나온들 이를 함께 하는 이들의 현실은 나아지질 않는다. 물론 그것이 글을 쓰는 작가라고 뭐가 얼마나 많이 다르겠느냐만… 그녀는, 슬기는 그래도 어쩐지 슬펐다. 이제 내가 저들과 같은 출판인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슬펐다. 그렇게 발대식은 아무 소득도 없이 싱겁게 끝나버렸다. 다음을 기약하며. 일단은 누군가의 성공을, 온전히는 아니어도 축하하고 박수쳐 주고 싶어서. 그들은 잠시 보류를 하고 축하주를 들었다. 기쁘게.
2.
다음날, 그들은, 특히 슬기는 정신을 차려보기로 했다. 현실적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수국이를 구하기 위해선 일단 알려야 했다. 가오.갤 속 거짓 사진 이면의 모습을. 수국이의 현실을. 그리고 수국이와 일상을 함께 하는 집사들의 생활도.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일단 하나뿐이었다. 정면 돌파. 진실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단 진실을 알리자.
그렇게 정신 승리로 생각해도 인플루엔서도 아니고 적은 인원의 지인 간 옹기종이 모여 근황을 나누는 개인적인 공간이었던 sns에 글을 올린들 누가 읽어줄까…. 하지만 현실적으론 그 방법뿐이었기에 이야기 자체를 더 진실되게 써보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진실을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 한 글자 씩 써내려 가면서도 계속 그 점을 생각했다. 쓴 글을 고치고 또 고쳤다. 어쩐지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계속 덜어내고 덜어내는 편집 자체의 과정이 이어졌다. 아… 여기서도 편집을 하다니. 나는 천생 출판사 직원인데… 슬기는 또 이런 생각을 해버리며 글을 썼다. 그리고 질러 버렸다. ‘등록’ 버튼을 누르고 글이 업로드 됐다. … 잠시 기다려 보았지만 조회수는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하나 둘………..셋…………………..넷………………………..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일까. 어쩐지 상심한 그녀는 슬며시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러고 세 시간쯤 시간이 지났다.
3.
안녕하세요. 00사의 북디자이너였던 김슬기입니다. 그동안 이 공간에서 책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눠 보곤 했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제가 이 글에서 저를 00사의 직원이었다고 과거형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이제 저는 그곳의 직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약 10 몇 년 동안 00사에서 출판 전반의 일을 편집자들과 함께 했지만, 이제는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경위를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지난주 화요일 00월 00일, 저는 대표에게 구두로 퇴사를 권고받았으며, 사유는 대표실 바로 옆에 있는 탕비실에서 볼 때 대표실의 문이 열려 살짝 열려 있음에도 먼저 노크하며 들어가 살갑게 인사를 ’잘’ 하지 않고 그저 물만 조용히 떠 간다는 점이었습니다. 지켜봤는데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요.
누군가는 저를 보며 만화 <미소의 세상>에 나오는 ‘미소’ 같다며, 극 중 미소처럼 잘 웃지도 않고 말도 없고 괴짜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과 성실함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를 좋게 봐주신 분의 말이긴 하지만 이 말엔 제가 괴짜이고 웃지 않아서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후 몇 번의 대화가 오고 갔지만 제가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사측의 입장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입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잘 지내길 바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하긴 합니다. 저의 업무이자 임무는 책 디자인을 하는 것 아니었던가 하고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조금씩 웃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그러나 한 편으론 사람이 웃지 않는다고, 오로지 그 이유로 친절하지 않다는 오해를 받고 그 오해가 오해로 그치지 않고, 그 웃지 않는 사람에게 위해를 끼쳐도 충분히 관용적인 세상이라면 그것이 과연 옳은 세상인가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회사에 공식적인 사과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제가 원하는 건 단 하나, 공식 채널을 통한 사과문 게시 그것뿐입니다. 회사가 말하는 ‘인간에게서 배우고 그 배움을 실천한다’는 그 슬로건을 저는 실천하려고 합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된다고 말이죠. 적어도 인간을 배우고 실천한다는 그 회사에서 만큼은요.
- 책 만드는 한 사람이었던 김슬기 올림
4.
따르릉. 따르릉.
몇 통의 계속되는 전화 소리에 그녀는 잠에서 깼다. 일어나 보니 메시지 창에 메시지가 잔뜩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밍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 언제 이런 글을 올린 거야? 지금 조회수를 봐봐!”
그녀는 sns를 들어가 보았다.
조회수 50만…
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