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민들레!”

by 김경민

나는 거의 서울 토박이다. 여기서 거의라고 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약 2년의 시간은 제외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섯 살에서 여덟 살이 되던 해까지 약 2년의 시간은 아빠가 장기 출장을 갔던 포항에서 보냈다.


그 시절에는 당연히 어린이집이란 것은 없었고 유치원도 취학 전 1년 그러니까 일곱 살에 다니는 게 대세였다. 나는 이런 대세의 흐름에 거슬러 여섯 살에 유치원을 다녔고, 일곱 살에는 요즘으로 치면 가정 보육, 사실상 내맘대로 살았다.


그때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 엄마에게 500원을 받는다. 그 길로 동네 문방구에서 스케치북을 사고 오전 내내 그림을 그린다. 그럼 점심시간이 되고 그 이후에는 완전한 자유시간이었는데 그 시절에는 일곱 살 애가 밖에 나가서 해 질 녘까지 놀고 들어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나는 마구 동네를 돌아다녔다. 동네는 아직 개발의 바람이 불지 않아 공터가 많았다. 그 공터에는 그 시절의 내 키만큼 큰 강아지풀과 들꽃들이 가득했다. 그곳은 못할 게 없었다. 숨바꼭질, 공놀이, 무궁화 꽃이 피어습니다 등.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것은 아무것도 안 하기였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하늘 바라보기. 바람에 흔들리는 강아지풀 소리 듣기. 줄지어 걸어 가는 벌레 보기…

단편적인 어릴 적 기억 속에서도 그날들의 공기와 편안한 마음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동네에는 공터가 많았기에 들꽃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인지 티브이에서 보는 그 어떤 화려한 꽃들보다 나는 이런 들꽃이 좋았다. 특히 나는 강아지풀과 민들레가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매일 집에 오는 길에 강아지풀을 뜯어다 엄마에게 선물로 주었었다.

엄마는 처음에는 너무 기뻐하며 고맙다 하였지만 나중에는 이제 그만! 을 외치셨다.

무색무취. 강아지 꼬리 같은 그 꽃도 아닌 풀이 그렇게 예쁘게 보였는데 그건 나만의 취향이었던 것이다.


비록 받는 사람들은 별로 안 좋아했던 어린애치곤 다소 특이했던 취향은 어른이 돼서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취향이라는 것이 아이에게 전달될지는 몰랐다. 아이는 원색을 좋아하긴 하지만 화려한 꽃은 좋아하질 않는다. 하도 꽃을 좋아해서 꽃집에서 꽃을 사줘도 시큰둥. 동네의 장미밭에도 시큰둥한 모습을 보이던 아이의 마음을 훔친 것이 있으니 그건 민들레였다. 아이는 밖에만 나가면 주야장천 외치기 시작했다. “민들레! 민들레! (줘)”


꽃을 꺾어달라는 뜻이다. 아무리 꽃이 ‘아야’ 하니 안된다고 말려도 소용없다. 노란 민들레 너란 녀석! 너무 갖고 싶어!!! 아이의 성화에 할아버지가 몇 번 꽃을 꺾어주었다. 그럼 아이는 온우주를 얻은 듯 기뻐하며 꽃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며 ‘하아. 너란 녀석 취향도 엄마랑 닮았네. 어쩔 수 없는 내 새끼. 그래도 살아있는 건 놔두자. 그냥 봐도 충분히 예뻐’


덧.

아이와 산책을 하다 보니 모르는 들꽃이 많아 당황스러웠는데 이럴 땐 스마트 렌즈를 쓰면 유용했다. 이 스마트 렌즈를 이용하다 안 사실인데 꽃들이 멀리서 보면 다 똑같아 보여도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르다. 아이는 꽃이 노랗다고 다 좋아한 게 아니라 ‘민들레’를 좋아한 것이었다. 또 민들레와 아주 비슷하지만 봉우리가 살짝 작고 대가 얇은 것은 고들빼기라는 것도 알았다. 우리가 자주 먹는 고들빼기. 역시 아이 덕에 하나씩 배워간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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