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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May 08. 2019

죽어라 일하면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니라 당연한 게 된다

일하는 데 힘을 다 쓸 필요가 없다.

회사(이 글에서 말하는 회사를 사장, 상사, 팀장 등으로 바꾸어 쓸 수도 있다. 편의를 위해 회사라고 통칭한다)는 직원이 열심히 일하길 원한다. 여기서 ‘열심히’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회사는 부하 직원이 온 정성과 열의를 다해 일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이 문장을 읽고 희망찬 기대는 하지 말길. 그럼 곧바로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 이상을 원한다. 맡은 일에 관심과 시간과 실력과 정성을 100%가 아니라, ‘200%’ 쏟아붓길 원한다. 회사는 욕심쟁이다. 얼마 전에 전 직장 동료(이하 지인)를 만나서 이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지인이 속해 있던 부서의 상사는 인격도 좋고, 일도 참 열심히 했다. 그 상사가 어느 날 지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했다.


“그동안 회사 일을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런데 회사는 내게 열심히 일한다고 칭찬해주는 게 아니라, 더 열심히 일하길 원했다.”



나도 그 상사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에 저 말에서 그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의 말이 내 속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 말에 크게 공감했다. 상사의 말을 전한 후에 지인이 덧붙인 말에 더 크게 공감했다.



“회사 일에 힘을 100% 쓰는 것도 좋지만, 그건 미련한 짓이다. 60-70%를 사용해서 일을 감당할 수 있으면 100% 쓰지 말고 비축하는 게 낫다. 남은 30%는 보여지는 일에 투자해야 한다. 보여지는 일에 최대한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 회사는 내가 힘과 능력을 200% 발휘해 일을 한다고 인식한다. 서로의 신뢰는 보이지 않는 나의 열심으로 생기는 게 아니다. 회사와 직원의 신뢰는 보이는 결과로 생긴다.”



맞는 말이다. 보여지는 일이 쓸데없는 일이 아닌 한, 60-70%의 힘으로 맡은 일을 100%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해야 할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보여지는 일에 힘과 신경을 더 쓴다면 좋은 말을 들을 수 없다. 미련한 짓을 하는 것이다. 그런 게 아니고서야 지인의 말이 맞다.




모든 회사가 직원의 열심을 몰라주는 것은 아니다. 먼저 알아봐 주고, 칭찬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칭찬과 응원은커녕 그 정도로 일하는 건 당연하다거나 그 정도밖에 일을 못 하냐고 직원에게 독기를 쏟아붓는 회사도 있다. 내가 다닌 회사 중에 지금 다니는 회사는 전자에 해당하고, 첫 회사와 직전에 다닌 회사는 후자에 속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나의 열심을 먼저 알아봐 주고 칭찬해준 건 사실이지만, 그 칭찬을 거저 얻은 것은 아니다. 입사하자마자 정말 열심히 일했다. 내 체력과 업무 능력을 내 일에 150% 쏟아부었다. 그리고 보여지는 일에 50%를 할애했다. 내 한계를 넘어서서 일했더니 몸에 무리가 갔고, 담까지 걸렸다. 담은 영광의 훈장이었다. 입사 3주 만에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알아봐 주고, 힘내라는 응원이 아니라 그러다 탈 나면 안 되니까 쉬엄쉬엄 일하라고 자제시키기까지 했다. 만약 내가 보여지는 일에 힘을 들이지 않았으면 과연 회사가 알아챘을까? 어느 정도는 알아챘겠지만, 그렇게 빨리 인정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일을 열심히 하기도 했고, 일을 보여지게 하기도 해서 업무 성과를 빨리 알아챈 거라고 확신한다.

직전 회사에서도 정말 열심히 일했다. 소처럼 일했다(회사에서 소처럼 일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알아주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았다. 내 할 일만 다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회사가 몰라줘도, 칭찬받지 못해도 내 의무와 책임을 다하기는 걸로 만족했다. 맡은 일만 열심히 할 뿐 보여지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일을 보여지게 하지 않았다. 어떤 결과가 생겼을까? 당연히 칭찬은 없었다. 그건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으니 상관없었다. 소가 되어버렸다. 온갖 일이 내게 쏟아졌다. 무슨 일을 시키든 묵묵하게 열심히 다 하니 사무실 청소부가 됐고, 시설 관리원 노릇도 했다. 짐꾼이 되기도 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그 회사에 들어간 건지. 직무와 전혀 상관없는, 별의별 일을 다 했다. 그게 당연한 게 되어버렸다.




회사는 직원의 노고를 먼저 알아주지 않는다(다시 말하지만 모든 회사가 그렇지는 않다). 직원의 열심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거나 알아도 모른 척한다. 직원이 열심히 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당연한 게 아닌데도 말이다. 회사는 왜 열심히 일하는 걸 당연한 거라고 생각할까? 월급을 줬으니까. 월급을 받아가려면 당연히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원도 사장처럼, 내 일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주인 의식 또는 애사심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그건 주인 의식이나 애사심이 아니다. 또 다른 형태의 갑질이고, 직원을 노예화하는 것이다.

주인 의식이나 애사심이 저절로 생기나? 직원이 주인 의식이나 애사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만한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 급여를 올려 주거나 보너스를 주어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복지를 좋게 해주거나 그도 안 된다면 최소한 칭찬을 자주 해주고, 직원의 수고에 진심으로 고마워해야 한다. 그런 대우 없이 직원이 주인 의식이나 애사심을 갖게 하는 것은 부당한 강요이다. 그런 대우 없이 열심히 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취이다. 회사는 정말 무지하고 이기적이다.




회사는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 당근을 잘 주지 않는다. 채찍질만 즐겨한다. 직원이 열심히 일하는 걸 회사가 당연하게 생각하니 맡은 일에 힘을 100% 쏟을 필요가 없다. 가능하다면 70% 정도의 힘으로 일을 처리하고, 나머지 힘으로는 보여지는 일을 해야 한다. 아니면 30%는 비축해 두어야 한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 일이 쏟아질 걸 대비해서 말이다. 하지만 늘 예상 못한 일이 생기는 법이다. 힘을 100% 쏟아야 하거나 쏟을 수밖에 없다면 요령이 필요하다.

일은 능력껏 해야 하기도 하지만, 요령껏 할 필요도 있다. 때론 일을 ‘보여지게’ 해야 한다.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얼만큼 일했는지 티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힘만 다 써버리고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애써 일하고 그것밖에 못 하냐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면 일을 보여지게 해야 한다. 내가 전 직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누가 뭐라고 하든 ‘일을 다 끝냈으니 됐지 뭐’라고 자기 위안으로 만족할 게 아니면 보여지게 하는 게 좋다. 어떻게 보면 그게 업무 요령이자 능력이다. 요령도 능력이다.

일을 열심히 하기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죽어라 일해봐야 남는 게 없다. 아니, 나만 남는다. 기진맥진한 나만 말이다. 죽어라 일하면 지쳐 전사한다. 아니면 “당연히 그렇게 일해야지” 혹은 “그것밖에 못 하냐”는 상사의 가시 돋친 말에 정신이 찢기고 찢겨 너덜너덜해진다. 그렇게 되길 원하는가? 그러면 죽어라 일하라. 죽어라 일하면 정말 죽게 될 것이다. 죽기 싫다면 요령껏 일하라. 무식하게 일하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다. 회사만 득을 본다. 그러니 힘을 적절히 분배하고, 요령껏 일해야 한다. 칭찬은 웬만해서는 듣기 힘드니, 싫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리고 지치지 않으려면 요령껏 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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