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서는 순간, 당했다- 싶은 카페가 있다. 이곳에 다시 또 오고 말 것이라는 생각. 그런 첫인상이 단숨에 마음에 박히는 장소가 있다. 뭔가 모르게 내 마음을 안온하게 하는 분위기가 있는 곳.
카페에 들어섰을 때, 정면에 커피 도구와 커피 머신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가게를 사랑한다. 그 정초한 풍경에 바리스타가 꼭 서있을 필요는 없다. 다만 바리스타가 쉬고 있다가 나를 보며 당황히 일어나는 풍경은 아주 달갑지는 않다. 그저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 과한 친절보다는, 묻어나는 웃음과 인사면 족하다. “안녕하세요- 계신가요- ” 인사를 하면, 곧 어디선가 나타나서, “아! 어서 오세요”라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해주는 정도는, 좋다. 카페 클라라는 - 그런 곳이었다.
<책을 기증하는 분께 차 한잔을 서비스로 드립니다.>
라는 문구가 하얀 나무문에 적혀있다. 책을 읽으러 카페에 오는 사람을 아끼는 사장님의 배려와 친절이, 들어서면서부터 나를 웃음 짓게 한다. 나도 에코백에 들어있던 소설책 네 권을 기증한다. 내가 즐거이 읽은 만큼, 카페에 온 누군가의 마음에도 이 책들이 닿기를 바라며.
소중한 커피를 받아 카페 전체가 한눈에 잘 보이는 구석 자리에 앉는다. 오픈 주방을 쳐다보자니, 커피머신이 대번 눈에 들어온다.
주황색 커피머신이다. 커피머신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주황색은 처음 보는 것만 같다. 색감이 다채로운 커피 도구들의 중심을 그가 잡는다. 풍경이 따스하고 사랑스럽다. “맛있게 드세요” 커피를 건네 준 바리스타 분은 주방을 떠나 다시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으셨다.
오픈 주방과 카운터의 정면을 맘껏 바라본다. 다시 말하지만, 이렇게 커피 주방이 잘 보이는데 주인이 서있지 않은 풍경은 더없이 좋다. 정말이지 마음껏 이 카페를 훔쳐볼 수 있다. 눈치 보지 않고 주방의 구석구석을 눈으로 훔쳐본다. 메뉴를 훑는다. 앞에 서서 주문을 할 때에는 사실 한 땀 한 땀 메뉴를 오래 쳐다보는 것이 왜인지 눈치 보인다. 나의 주문을 앞에서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천천히 훑어볼 수 있는 지금의 순간이 벅차오르게 좋다. 완벽한 오픈 구조의 주방. 청결에도 도구에도 자신이 있기 때문이겠지. 다양한 컵을 훔쳐보고, 여러 가지 커피를 내리는 기계나 오븐을 훔쳐보는 재미를 만끽한다.
햇살이 쏟아지는 오후 시간. 커다란 창으로 흔들리는 나뭇잎과 하늘이 보인다. 책들이 창가 앞으로 무질서하게 쌓여있다. 이런 조합은 늘 순서가 없는 것이 순서가 있어 보인다. 책만큼 마음대로 쌓여있을 때조차 아름다운 물건이 없다.
쌓인 책들과, 주인이 보이지 않는 카페라니. 어쩐지 마음이 푹 놓이는 풍경.
그때 따릉- 하고 대문에 달린 '종'이 사랑스러운 소리를 낸다.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왔다.
두 여자 손님은 꺄르륵 거리며 커피를 주문한다. 어디선가 또 나타난 바리스타님은 멋진 등을 내보이며 묵묵히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든다, 커피를 만드는 그의 뒷모습 또한 마음껏 훔쳐본다. 재밌다. 열중하는 누구가의 등과 손은 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손호준이 나왔던 리얼리티 커피숍 프로그램을 열심히 봤던 것은, 그것이 꼭 손호준이 잘생겼기 때문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물론 잘생겨서 더 좋았다. 내 스타일. 흐흐)
우리는 무언가를 열심히 만드는 사람의 한 움직임을 느린 눈으로 관찰하는 게, 무엇보다 힐링인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순간 외에는, 모든 것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만 같아서겠지.
탕탕
커피가루를 내리고 탬퍼로 누른다
최악 치이잉이ㅣㄱ-
기계가 우웅웅 하고 작동한다
에스프레소가 내려오면
이내 커피 향이 카페의 공간에 한 겹층을 더한다
달그락 - 탁 -
컵을 준비하는 소리에 마음이 설렌다. 이번에는 어떤 커피를 만들고 계실까.
한 입 머금은 커피가 맛있는 카페라, 모든 메뉴가 궁금해진다. 지켜보는 커피홀릭의 눈과 귀가 쫑긋해진다.
왓, 라테구나! 냉장고에서 잡혀 나온 차가운 우유가 우유팩에서 미끄러져 내린다.
어째서인지 나이아가라 폭포가 떠오르고 만다. 배를 타고 우비를 입고 꺅꺅- 거리며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 에스프레소 안의 기포들이 우유 폭포를 맞고 신나 하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하다. 맛있는 아이스 라테는 투명한 잔에 담겨 나간다.
그리고 마무리 작업.
치지지직 -찌릭 찌릭
사용한 도구를 물과 바람으로 청소해내는 정겨운 소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때를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손목을 움직인다.
포터 필터에 남아 있는 커피가루를 사삭 털어낼 때의, 개운하고도 상쾌한 감각이 스쳐 지나간다.
다시 조용해진 카페. 피아노 선율이 마음을 흘리고, 홀린다.
나무로 된 널찍한 테이블들과 노란빛의 조명, 지나치게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봄날의 적당한 햇살과 힘을 합하면 카페의 공간은 부풀어 오른다. 두둥실. 피아노 선율을 타고 카페 전체가 날아오를 듯한 느낌이다 마치 영화 UP의 한 장면처럼.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면, 창 밖으로 구름이 보이고 발아래로 무지개가 내려 보일 듯한 감각. 공간과 조명이 잘 만나면 이러한 상상이 사람에게 깃든다.
노란 벽면에는 탐스럽고 화려한 색감의 작은 액자들이 걸려있다. 앵두를 거머쥔 늙은이의 손 사진 액자 하나, 화가를 가장 설레게 한다는 노랑 빨강 그리고 초록이 섞인 그림 액자 하나. 카페에 흐르는 피아노 연주와 어울려, 그림도 음을 연주한다.
반대편 붉은 벽면으로는 여백이 많은 흑백 액자가 3개 나란히 걸려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 같다. 한 여자가 옆을 흘깃 보며 테이크아웃 종이컵을 들이켜고 있다. 화가 모자를 쓴 한 남자는 생각에 잠겨있는 듯하다, 마지막 한 액자는 거의 비어 있다. 무언가를 응시하는 누군가의 옆모습이 아주 조금 담겨있다. 세 액자의 모습이, 어쩌면 다 카페에서의 내 모습 같고 너의 모습 같을까. 그래서 걸어두었나 보다.
이 카페는 분위기가 따뜻하고도 세련되었다. 나무문과 나무 테이블. 그리고 나무 의자, 자칫 앤틱 할 수도 있을 듯한 공간이 정돈되지 않은 채로 충분히 정돈되어 있다. 이런 것들이 모여 누군가의 마음을 더없이 편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