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양 Feb 10. 2018

집단괴롭힘의 피해자를 외면함의 대가

영화 크로니클

                                              이 글은 영화 리뷰성과 고찰이 짙은 글입니다. 



 최근에 한국에서 <염력>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평범한 중년 아저씨가 염력을 주어졌을 때,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힘을 쓰게 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평범한 사람에게 초능력을 주어지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미국의 마블이나 DC는 물론 일본의 만화나 한국 웹툰에도 세우기 싫을 정도로 수두룩하다. 그들은 과연 전부 영웅이 되었을까?

 다시 한번 다른 캐릭터와 없이 접근해 보자.



 한 소년이, 한 소녀가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어떨까? 대부분 새로운 영웅, 히어로가 탄생할 거라고 생각한다. 가난하고 찌질했던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이 되는 것처럼. 약자에게 초능력이 주어진다면 과연, 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기회는 주어졌다.

 피터 파커는 거미에 물려서 거미의 능력을 가지고 삼촌의 죽음으로 뉴욕을 지키는 서민의 영웅이 되었다. 지금부터는 영화 <크로니클>에 초능력을 가지게 된 약자 앤드루의 모습을 보자. 




 주인공 앤드루는 늘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카메라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시점의 역할을 하고 있다. 3인칭이나 1인칭과는 달리 주인공이 들고 있는 동영상 카메라의 시점으로 주인공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신기하기도 했지만, 조금 낯설었다. 이건 대체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처음에는 어떤 면에서 설 수 없는 감정을 낼 수 없는 기계가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립의 시점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를 좋아하고 새로운 설정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주인공.

 영화 속에는 주인공이 카메라를 설정하는 기쁨에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찰나, 주인공이 노크소리와 함께 긴장하는 표정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폭력.

 바로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인공을 구타하기 시작한다.

"숙제나 해."

 라고 마지막 말을 붙이면서.



 카메라 시점은 주인공을 비추어 주다가도, 주인공이 감독이 되는 것 마냥 스스로 조절을 하곤 한다.

 치어리더들이 연습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찍으려고 하기도 하며, 파티에서 섹시하게 춤을 추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촬영하기도 한다. 

파티에서 여자를 찍다가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들켰다, 그리고 몰래 아닌척 하며 치어리더를 찍기도 했다.

 자신이 카메라 감독으로 무언가를 찍을 때에는, 그 영상에 비추는 건 앤드루의 욕구였다. 여자에게 관심을 받고 싶었고, 그 점은 학교에서 괴롭힘이 대상이 가지기에, 아니 그 이전에 건장한 소년의 입장에선 충분히 흔한 일이었다. 

 사실 그런 비유를 하는 건 당연했다. 카메라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찍지, 엽기스럽고 보기 싫은 것을 찍으려고 할까. 하지만 늘 저지당한다. 치어리더를 찍을 때도 찍지 말라고 직접적으로 거부당하고, 파티의 여자를 찍을 때도 돌아오는 건 그 여자의 남친의 욕설과 침뿐이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앤드루에게는 친구이자 사촌인 맷으로부터 동영상을 찍지 못하도록 경고를 했었다. 어디까지나 앤드루를 걱정해서 한 말이었고, 늘 학교에서 동영상을 찍으면서 되려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말한 경고였다. 

 맷은 앤드루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 말을 지키지 못해 결국 피해를 본 건 앤드루였다.

 그런 그 앞에 친구가 될 수 있는 동급생이 권유를 해 온다.


"맷이랑 있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어. 심상치 않아. 와서 찍어. 안 찍으면 후회할걸?"

 

앤드루와 친구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이 일을 계기로 이 친구들은 염력에 가까운 초능력을 얻게 된다. 동시에 앤드루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초능력과 함께, 함께 즐기고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 맷과 스티브를 얻게 되었다.

 초능력으로 친구들과 블록을 조립하기도 하고, 던진 야구공을 멈추도록 해 본다.

 그리고 앤드루는 새로운 캠코더를 구입하게 된다.


"우리 초능력을 전부 찍을 거야."

 앤드루에게는 새로운 욕구가 생겼다. 그리고 그것을 찍는다는 건 분명, 만족하고 즐기고 있다는 것. 하지만 친구 스티브는 말한다.


"계속 찍는 건 좀 심하잖아, 세상과 벽을 쌓는다는 생각 안 들어?"

 그들의 초능력은 세상에 공개하긴 어려웠다. 그건 충분히 인지하는 부분이었고 자신들이 얼마나 곤란해 질지 염려해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앤드루는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티브는 앤드루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앤드루와 공감하고 싶어 했고 전부 알고 싶어 했다. 스티브가 앤드루에게 권유하면서 초능력을 얻고 친구가 되어준 것처럼, 스티브는 앤드루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서로 비밀을 공유하면서까지.


고통스러운 병을 앓고 있는 앤드루의 어머니.

 앤드루에게는 한 가지 더 이겨내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사랑하는 어머니의 병. 폭력을 난무하는 아버지와는 달리, 상냥한 어머니는 자신이 웃음을 짓게 하는 몇 안 되는 희망 중 하나였다. 자신을 응원해 주는 사람은 늘 곁에 있었고, 자신이 창피하게 만들 정도로 팔불출이었다.

 앤드루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웃음이 많아졌다.

 친구들과 초능력으로 무리가 없을 정도로 장난질을 해가며, 동네 장난꾸러기 마냥 장난을 치고 낄낄 웃었다.


초능력으로 다른 사람의 차를 다른 곳에 주차해 버리기.


 원래 이들에겐 초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녀석들이 아니다. 어디까지 정체를 모르는 것에 이끌려 얻게 된 힘인데, 몸에 익숙하지 않아 무리하게 되면 코피를 쏟게 된다. 이건 경고다. 우리가 피곤하면 흘리는 것처럼, 이들에게도 선을 넘지 말라는 뜻에서 코피를 쏟게 되는 거였다. 하지만 장난은 원래 하면 할수록 끝이 없는 법이고, 그리 크게 생각하지도 않게 되는 법이다. 


 결국 아무런 뜻도 없이 한 일에 사람이 죽을 뻔한 사고를 만들어 버린 앤드루, 친구들은 자신들만의 룰이 필요하다고 강요한다.

 평범한, 아니 찌질한 주인공이 초능력을 가졌는데, 여태까지의 행적이 마냥 어느 히어로와 다른 게 너무나 많았다. 장난을 치면서 죽을 위기에 스티브를 구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남을 위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서 초능력을 사용한다. 자신들의 룰을 정하고서도 깨트리기도 한다.

 하지만 히어로들은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잃으면서 자신이 그 힘으로 무엇을 해 나아가야 할지 결정한다. 그 계기가 앤드루에게도 오게 되는데.


 시점은 앤드루의 방.

 아무도 없는 그 방에 캠코더는 녹화가 진행 중이었고, 소리는 엄마의 비명이었다.


"앤드루! 너무 아파! 약 좀 줘."


 병에 대한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있었고, 그 곁에는 앤드루가 있던 것인지 아버지를 찾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그 캠코더 화면 안에 아버지의 모습이 찍힌다. 앤드루의 방을 뒤지고 있는 것이다. 돈이 될만한 것이 없는지. 그러다가 새로 샀던 캠코더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을 두고 아버지는 앤드루에게 호통을 치기 시작한다.

"캠코더 살 돈으로 엄마 약을 샀어야지!"


 하지만 그건 아버지가 할 말이 아니었다. 그는 어디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는 건지 늘 돈을 찾았고 술에 절어 있었다. 아버지를 찾는 앤드루와 어머니의 고통 비명을 듣고서도 돈이 될만한 것을 찾는 것을 보면, 뭐가 중요한지 반대가 되어 있다.

 그리고 얼마나 가족에게 관심이 없는지 폭언하는 아버지는 앤드루를 폭발시킨다.


"캠코더를 아버지 돈으로 산 적 없어요."

"네 학교 등록금이랑 엄마 약 값으로 내 돈이 전부 나가잖아!"

"공립학교는 공립이라 등록금이 없어! 이 병신아!"


 이 대화는 아버지가 얼마나 자식에게 무관심하고 그저 폭력과 돈이 나올 구멍에 불과했는지 나타나고 앤드루의 어머니의 처지를 알 수 있었다. 앤드루가 학교에 가 있다면, 어머니는 완전히 그저 방치되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는 거였다.

 결국 폭발한 두 사람은 몸싸움을 하게 되지만, 더 이상 앤드루는 참지 못한다.


"죽여버릴 수도 있어!"


 하면서 초능력을 쓰면서 아버지를 내팽겨 처 버리는 앤드루.

 앤드루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자신의 현실에 좌절하며 하늘로 날아가 울부짖는다. 그리고 그의 초능력은 친구들에게 반응하고 주변에 천둥번개를 만들어 버린다.


  

 슬픔과 분노에 가득 찬 앤드루를 진정시키려고 제일 먼저 다가온 건 나타난 스티브였다. 늘 앤드루를 도와주고 싶어 했고, 앤드루가 행복하길 원하는 스티브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진정하지 못하는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그건 바로 자신들이 주체할 수 없는 초능력에 룰을 만들었던 이유처럼, 주체할 수 없는 힘으로 번개를 이끌어 스티브에 작렬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건 결코 앤드루가 누군가를 돕게 되는 계기가 되지 못한다.

 아버지의 폭력, 여전히 자신을 괴롭히는 학교 친구들. 자신 때문에 죽게 되어버린 스티브, 책망하는 맷.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도 않는다. 자신을 피하지도 않고 오히려 괴롭히려 든다. 앤드루에게 불편한 시선을 주는 건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 또한 앤드루에 대한 공격이었다.

 힘을 가진 앤드루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저돌적인 공격성으로 보복하는 것뿐이었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잖아?"


 앤드루는 카메라에 그런 말을 하면서 자신을 합리화 하기 시작한다. 합리화라고 하기엔 죄책감이 들어 보이는 건 아니었고 정신이 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을 보호해 주던 맷은 앤드루를 책망시키기만 하고 초능력 싸움까지 이르게 된다. 여전히 아버지는 가정을 외면하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약국에서는 돈이 모자라 더 이상 약을 지어주지도 않는다. 

 자신을 제어하는 친구도 없고, 룰도 지키지 않으며, 사람들은 앤드루를 외면하기만 한다.

 어머니의 약을 구하기 위해서 앤드루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소방관 옷을 입고 능력을 쓰게 된다.



 완전히 영웅에서 거리가 멀어졌다. 

 분명 계기는 주어졌지만, 매번 다른 길로 향했다. 제일 놀라운 건 이 점이었다. 앤드루는 절도를 하고 사람을 공격하며 돈을 빼앗는데, 항상 자신의 주변을 찍는 캠코더를 녹화시키고 조절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앤드루는 분명 자신이 능력을 쓰는 모든 것을 찍고 싶다고 했다. 이런 악질이라도 말이다.

 캠코더는 결코 중립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앤드루가 믿을 수 있는, 앤드루가 제일 신뢰하는 것이었고, 자신이 옳다고 믿게 해 주는 유일무이한 것이었다.


 결국 이 행각이 용납해 주지 않는 것인지 폭발 사고로 병원신세를 지게 된 엔드루. 하지만 엔드루에게 아버지는 의식불명임에도 나무라기 시작한다.

 바로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목소리는 절망하는 듯 울음소리로 시작한다.

"엄마가 죽었다. 어젯밤에 내가 널 찾으러 간 사이에. 집에 들어가니 싸늘해져 있었어. 난 항상 엄마 곁에 있었다. 네놈은 말썽이나 피우러 다니고, 근데 너 때문에 엄마가 눈감는 걸 못 봤어. 나한테 사과해. 듣고 있는 거 알아, 당장 일어나서 사과해 이 이기적인 자식아! 다 네놈 탓이야."

 앤드루는 다쳐서 눈을 감고 있었다.

 의식이 있는 건지 잘 모르나, 여전히 카메라는 조절되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옆에 있는 심장박동 체크의 소리는 간격은 점점 짧아진다.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삐이이이 삐이이이 삐이이 삐이이 삐이 삐이 삐 삐.

 결국 앤드루는 그 누구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분노한다.


 앤드루는 영화가 시작하기 이전부터 끔찍한 환경에 자라왔다.

 아버지는 항상 어머니 옆에 있어주지 않았다. 어디서 술을 먹고 도박을 하는 거였고, 늘 곁에 있어주었던 앤드루였다. 심장박동의 주기가 짧아지는 것처럼, 참을 수 없는 아버지의 폭력과 언행, 그리고 뻔뻔함. 어느 한순간에도 앤드루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책망하기만 한다.

 유일하게 자신의 희망이었던 어머니도 존재하지도 않는데, 그걸 아버지가 앤드루의 잘못이라고 책망하니, 누구나 앤드루를 공감할 정도로 상황은 끔찍했다. 그런 아버지 아래에서 어떤 사람이 제대로 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아버지를 시작으로 앤드루는 폭주하며, 도시를 엉망으로 만드는 괴물에 가까워진다.




 결국 히어로가 될 수 있는 능력을 주어 받은 자가 그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었다.

 앤드루를 도와줄 사람은 분명 존재했다. 자신이 주체하지 못해 실수로 떠나보내게 만들었지만, 그 이전에 괴롭게 만든 것에는 자신의 현실이 시궁창이라고 느껴버리게 만든 아버지로부터 시작했다. 능력을 쓰고 친구를 만들었지만, 능력으로 친구를 잃어버리고, 아버지 또한 앤드루에게서 내팽겨 쳐지면서 완전히 외면했다. 사촌인 맷도 앤드루가 괴로움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컨트롤할 수 없자 외면해 버린다. 힘에 대해 자유로워진 앤드루는 사람들을 계속 적으로 만들었고 자신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건 자신을 외면한 사람들에 대한 앤드루의 복수였다. 

 힘이 없던 자가 힘을 가지게 되면, 어떤 복수를 할 수 있는지 끔찍하게 보여줄 수 있는 영화였다.

 


 사회는 공동체다, 누군가가 있기에 사회가 존재하고 서로 공유할 수 있으며 살아갈 수 있다.

 앤드루의 비윤리적인 행동과 폭주는 그런 면에서 외면을 받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짧지 않은 이전에 한 여중생이 피를 흘리는 사진을 낄낄대며 찍은 것을 인터넷에 올려 화재가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외면하지 않았다. 사회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면서 가해자를 비난했고, 처벌을 받게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그게 소년법으로 이루어지기 쉽지 않자, 세상의 사람들은 소년법을 개정 또는 폐지를 해야 한다고 더 큰 관심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 피해자는 사회의 사람들의 관심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만약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면 여전히 괴로워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사회는 공동체다. 서로가 있기에 공유할 수 있고 관계를 만든다. 그렇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 앤드루처럼. 





작가의 이전글 그리워, 보고 싶어, 잘 지내란 말이 무색해 질만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