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당신 곁에 없는 겁니다.'
ㄴ 책 'Blonote' 中 장범준의 손글씨 문장.
사람들은 두 가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분류하기도 한다.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
외향적인 사람은 대부분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거나 야외생활을 좋아하는 경향이 많았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내향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외향적인 사람의 반대 성향이라고 할 수 있는 내향적인 사람은 과연 남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는 걸까? 아니 그런 건 아니다. 그저 남들과 어울리는 것도 즐기지만, 그것보다 혼자 즐기는 것이나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글을 보는 사람들 중에서는 내향적인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외향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아싸'라고 직접적으로 지칭하진 않았다. 하지만 혼자서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대학교를 다니면 휴학을 하기도 하고 복학을 하는데, 그러다 보면 동기들은 하나둘씩 안보이기도 했고, 선후배 간에 교류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혼자서 생활하는 경우가 잦았다. 대학교는 특히 더 그랬던 것 같았다. 혼자 밥을 먹는 게 익숙해도 괜히 눈치를 보게 되는 게 대학교 학생식당이었다.
주변에 아는 얼굴들이 있고 서로 아는 사람임에도 같이 마주하고 밥을 먹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저 나의 식탁만 쳐다보고 식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건 분명, 왜 저 애는, 저 선배는, 저 후배는 혼자 밥을 먹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혼자 먹고 있네? 같이 먹을 사람이 없나 보다. 라면서 그다지 관심을 먼저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별하게 관심이 있던 사람이 아닌 이상.
원치 않게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분명 있다. 그런 사람은 타인과 쉽게 인연을 잇기 어려워 만든 결과다. 하지만 누군가와 같이 먹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내향적인 사람은 그렇게 혼자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많았다.
우리는 지금 그런 사람들을 아싸라고 멋대로 부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비하하는 방식이 많았다. 스스로를 지칭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대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화장실 변기 위에서 사람을 피해 밥을 먹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씁쓸하기만 하다.
그 사람도 그럴 필요가 없는데.
"넌 언제까지 그렇게 허송세월 보내고 있을 거냐?"
집에 있는 것만으로 답답해하는 아버지는 갓 스무 살이 된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좋을지, 어떤 계획을 세워서 해야 할지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지 못하고 있을 때, 아버지는 나의 그런 모습에 답답해하셨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좋아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아르바이트라도 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 답답해하시지 않았나 싶었다.
그렇게 반대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은 서로 이해하기 어렵다.
집에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아버지는 주말만 되면 산에 올라가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취미에 존중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는 흥미가 있는 취미이니까. 아버지 또한 나이를 계속 드시면서 책을 읽는 것에 더 존중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외향적인 성향이 더 강하시다 보니, 책을 읽더라도 집에서 읽고 있으니, 매번 나를 답답하게 보셨다.
"차라리 여행이라도 가지 그러냐."라고 하시면서.
아직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날, 번화가는 점점 사람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했고, 그 인파를 피해서 서점으로 들어간 어느 날, 그곳 서점에서 신기한 것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의 얼굴은 조금 변해있었다. 눈은 손을 댄 건지 없던 쌍꺼풀이 있었고 살집은 꽤나 불어 있었는데, 목과 턱의 경사가 조금 흐릿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한눈에 알아봤다.
그 사람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사람, 그 사람이라는 것.
하지만 그 사람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10년도 더 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못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내가 잘못 봤나 싶어서 한참을 멀리에서 다른 책을 읽는 척하고 그 사람을 바라봤다. 하지만, 묘하게 이상한 게 있었다.
그 사람은 검은 롱 점퍼에 검은색 모자로 자신을 감추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면에서 마주쳤었는데, 나만 그 사람을 알아본 이유는 그 사람의 눈동자는 고개의 방향과는 달리 앞으로 향하고 있기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기 혹시..."
라고 물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검은색으로 가리려고 하는 모습이 어째 주변 사람을 회피하려고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그 사람이 책을 구입하고 나가는 것 까지, 아무런 말도 걸지 못하고 보내 버렸다.
그녀는 그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좋아한 것뿐인 걸까? 아니면 내가 느낀 것처럼 사람을 피해 다니는 거였을까.
반대로 그런 친구도 있었다.
키도 185cm에 얼굴도 잘생겼었다. 옷도 잘 입고 다녔고 주변에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는 유난히 사람을 좋아했다.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서 화상통화로 화면 속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일을 할 때도 전화는 자주 왔고 일이 익숙해지다 보니 일을 하면서 전화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현상이 너무 집착스럽게 느껴져서 물어보았다.
그는 타 지역에서 온 대학생인데, 촌에서 오다 보니 도시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었다.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는데, 막상 하려고 하면 자취방에 있는 게 전부였다고 했다. 그러자 마자 바로 외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가 일하는 곳은 레스토랑 서빙 역할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레스토랑의 주방장이었다.
"너는 왜 여기서 일하려고 한 거야? 디자인 전공이라면서?"
"휴학하고 복학할 때까지 돈 모으고 학원도 다녀야 해서요."
"여기서 12시간 일하면서? 차라리 다른 데 알아보는 게 낫지 않아?"
"저는 여기서 손님이라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아요. 그래서 여기에 지원했던 거예요."
그는 사실 외로움을 엄청 타는 친구였다.
타지 생활도 하는데, 그 외로움은 거 격하게 달려들어 오고 있었고, 그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친구들을 만들고 새로운 만남을 즐기고 다니는 거였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면서 그런 건 있었다.
그게 너무 익숙해지다 보니까, 자기가 외로운 줄 모르고 있다는 거였다.
혼자 밥을 먹는 게 당연하게 여겼고, 그게 계속 반복되다 보니, 나는 어느새인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외로움이 싫었기에,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려고 한다.
성격이 외향적이고 내향적인 건 절대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는다.
아무리 내향적인 성향이 강해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순간이 있다.
아무리 누군가와 함께하는 걸 좋아해도 혼자 시간을 가지는 것을 원할 때도 있다.
그 사이에서 '외로움'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사람을 가르는 것 같다.
외로움을 느끼기에 사람과 어울리고 싶기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으로 외로움을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그까짓 눈치가 뭐라고.
외로움을 탈 수 있다는 건 정말 인간적인 부분인데.
그렇기에 다시 한번 이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저는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당신 곁에 없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