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눈물이 났다.
비록 잠시 동안 하는 일이었지만, 오전 6시에 출근해서 오후 11시에 퇴근하는 공장의 일은 너무나도 고된 일이었다.
너무 힘이 들어서 더 오래 일해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았지만, 나는 하루빨리 그 일을 그만두고 싶었고, 얼마나 돈이 벌기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적게 버는 일이 더라도 조금 더 여유 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선호했고, 조금 적게 벌면 더 아끼면 된다는 생각으로 돈을 모아 왔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저축의 중요성을 느끼고 한 달에 150만 원을 저축해야 한다는 생활방식이 생겼었다.
그렇기에 집에 생활비를 주는 것 빼고는 그다지 쓸 돈이 없었다. 애초에 일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출은 줄었고, 고정지출은 교통비나 통신비 그리고 몇 만 원 수준의 생활비뿐이었다. 식사는 직장에서 해결할 수 있었고, 가끔은 2000원이나 3000원짜리 마실 것을 사는 것에도 사치를 느끼기도 했다.
그 당시 통신비와 교통비를 제외하곤 나의 생활비는 적게는 5만 원, 많게는 15만 원가량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돈을 쓰는 것을 피하다 보니 돈이 저축되는 건 당연한 거였고, 옷 하나 사는 데에도 디자인이 아니라 2~3만 원의 가격 때문에 몇주를 고민하는 것을 보면 나도 참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오랜만에 조카를 보러 간다는 생각에 선물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할인과 할인을 덧 붙여 2만 원에 구입한 신발을 신고 있는 나는, 큰 고민은 없이 6만 원이나 하는 첫걸음용 스포츠 브랜드의 신발을 선물로 샀다.
좋아하는 건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조카가 아니라, 그 아이를 키우는 사람의 몫이었다. 그건 그것대로 만족스러웠다. 후회는 없었다.
그게 이상했다.
나에게는 투자하는 것을 그렇게 아까워하면서, 왜 1년에 두세 번 볼까 말까 한 어린 조카에게 그런 선물을 했을까.
딱히 그리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물론 귀여웠지만, 너무 보고 싶어서 안달 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그런 말을 들었다.
"너 그러다가 병나. 정신병."
나를 비난하는 게 아닌 걱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나는 한창 일할 땐, 너보다 일을 더 하고 받는 돈은 더 많았지만, 빚을 갚기 위해서 저축도 쓰지도 못했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스스로를 억제시키면 너만 고생해. 너 그러다가 대머리 된다."
공짜를 좋아하면 대머리가 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아. 돈을 아끼다가 보면 당연히 싸거나 무료가 좋으니, 그 말이 맞구나 싶었다.
"정신병이 걸린다는 건, 스트레스받아서 대머리가 된다는 말인 건가?"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일을 하면서 힘든 만큼 그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힘든 만큼 돈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런 유형이 아니었다. 내가 싫어하는 말에는 이런 말도 있다.
"오늘 보너스 얻었으니까 한 턱 쏴."
보너스를 받았으면 받은 건데, 그걸 한턱 쏘는 걸로 상쇄시켜 버리면 금전적으로 남는 게 없으니까.
애초에 그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거라면 결국 남는 게 없을 것이고, 다시 힘들고 스트레스 풀고 도돌이표나 다름없기에 통장의 숫자라도 늘리자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거기에서 나는 너무나도 나를 억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직장에서 상사와 불화로 인해서 인격모독을 하는 듯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말을 어떻게 해서든 넘겨 듣는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말을 들어왔지만, 두 눈을 마주한 채 똑바로 그런 말을 듣기만 하는 건 상상 이상으로 자존심이 구겨지는 말들이었다.
결국, 그 일로 인해서 그 일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옛날 통닭 방식으로 한 마리씩 통째로 튀지는 치킨집을 발견했다.
기름기가 많아 보였지만, 구수한 냄새가 나는 게 저녁으로 먹기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이걸 사가면 저녁 해결은 물론 치킨을 사 온다는 것 자체만으로 가족들이 좋아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는 이미 누군가가 나와 똑같은 치킨을 사놓은 사람이 있었다.
그건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 오신 거였다.
설마 서로 퇴근길에 같은 치킨을 똑같이 사 올 줄은 생각도 못해봤다.
"미리 연락을 하고 올 걸 그랬나."
나는 그대로 나란히 치킨을 두고 내 방 소파에 기대 누웠다.
그렇게 저녁식사는 1인당 치킨 한 마리씩 하는 것처럼 포장지를 뜯듯이 치킨의 살을 뜯어먹었다.
나도 즐겼지만, 동생 또한 좋아했고 따로 식사를 만들 시간도 없이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깔깔 대면서 치킨을 먹었다.
TV 때문에 웃기도 했고, 괜히 분위기에 따라 입고리가 슬렁슬렁 거렸다.
여전히 직장에서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가족의 분위기로 조금은 잊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요새, 일 힘드냐."
그 말을 하신 것뿐인데, 어째 본인이 그 말을 듣고 싶으신 것 마냥 느낌이 들었다.
"왜요?"
"아니, 그냥 네가 뭐 이렇게 사 오는 것도 없고, 그냥 얼굴이 힘들어 보여서."
"그냥,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 보여요?"
"아니, 그냥. 그냥 그런 거 같아서. 쉬어라."
아마 아버지도 같은 마음이었던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건 아닌가 하면서 되짚어 보았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한참 돈이 필요할 때에는 담배도 필 수 없어서 길에 버려진 꽁초라도 주워서 피고 싶었는데, 그걸 줍는 순간 자신의 자존심이 무너지고 한심해 보였다고. 그 대신에 가족을 생각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버텨왔다고 했다.
그래서 힘들 때마다 전화를 하셔서,
"뭐 먹고 싶은 거 없냐?"라고 물으셨던 것 같다.
내가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족 생각으로 치킨을 산 것처럼.
신발을 받으면 좋아할 조카나, 누나를 생각하면서.
누군가가 나로 인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나 또한 기분 좋아 길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건 아버지도 그랬던 것 같았다.
그걸 이미 알고 계셨기에, 나에게 무슨 일이 있던 게 아닌지 느끼고 걱정이 드셨던 걸까.
그건 자신이 힘들수록 더 그런 마음이 강해지는 모양이셨다.
아버지는 그게,
내가 어릴 적 때도 지금도,
아버지가 사 오셨던 치킨 하나만으로도 맛있는 식사가 될 수 있으면 행복한 것으로 대신하셨다.
"아빠 올 때 치킨!"
어렸을 때 그랬던 적이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아빠에게 치킨 먹고 싶다고 사 와달라고.
아버지는 아직도 퇴근하는 길에 가끔 말도 없이 치킨을 사 오시곤 한다.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못했기에 아버지의 기분을 제대로 알 순 없었다.
하지만 사소하더라도 평소와는 조금 다른 식사더라도 즐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상상한다는 게, 또 내가 선물을 준 것 마냥 그로 인해 좋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자신에게 큰 위로가 될지.
조금은 알아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