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어.
이제는 다 지나간 줄 알았던 일인데,
문득 다시 생각나고,
괜찮다고 넘겼던 감정이 다시 울컥 올라오는 날.
사람들이 그러잖아.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고.
근데 나는,
슬픔이 그냥 사라지기보다는
내가 오래 만지고 나서야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것 같더라.
예전엔 나도 그 감정들 빨리 털어내고 싶었어.
힘들다고 말하면 약해 보일까 봐,
잊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는데.
그게 오히려 더 나를 힘들게 하더라.
지금 생각하면,
나를 힘 빠지게 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나한테 힘이 되어 있었던 거야.
그래서 그냥,
지금 너한테 온 고통이나 슬픔도
조금 더 천천히, 오래 만졌으면 좋겠어.
금방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그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어쩌면 그게,
너를 버티게 해주는 무늬가 될지도 모르니까
오래 만진 슬픔
-이문재-
이 슬픔은 오래 만졌다
지갑처럼 가슴에 지니고 다녀
따뜻하기까지 하다
제자리에 다 들어가 있다
이 불행 또한 오래되었다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고 있어
어떤 때에는 표정이 있는 듯하다
반짝일 때도 있다
손때가 묻으면
낯선 것들 불편한 것들도
남의 것들 멀리 있는 것들도 다 내 것
문밖에 벗어놓은 구두가 내 것이듯
갑자기 찾아온
이 고통도 오래 매만져야겠다
주머니에 넣고 손에 익을 때까지
각진 모서리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리하여 마음 안에 한자리 차지할 때까지
이 괴로움 오래 다듬어야겠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