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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만진 슬픔

by 소소



그런 날이 있어.

이제는 다 지나간 줄 알았던 일인데,

문득 다시 생각나고,

괜찮다고 넘겼던 감정이 다시 울컥 올라오는 날.


사람들이 그러잖아.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고.

근데 나는,

슬픔이 그냥 사라지기보다는

내가 오래 만지고 나서야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것 같더라.


예전엔 나도 그 감정들 빨리 털어내고 싶었어.

힘들다고 말하면 약해 보일까 봐,

잊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는데.

그게 오히려 더 나를 힘들게 하더라.


지금 생각하면,

나를 힘 빠지게 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나한테 힘이 되어 있었던 거야.


그래서 그냥,

지금 너한테 온 고통이나 슬픔도

조금 더 천천히, 오래 만졌으면 좋겠어.


금방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그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어쩌면 그게,

너를 버티게 해주는 무늬가 될지도 모르니까




출처 pixabay










오래 만진 슬픔

-이문재-


이 슬픔은 오래 만졌다

지갑처럼 가슴에 지니고 다녀

따뜻하기까지 하다

제자리에 다 들어가 있다


이 불행 또한 오래되었다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고 있어

어떤 때에는 표정이 있는 듯하다

반짝일 때도 있다


손때가 묻으면

낯선 것들 불편한 것들도

남의 것들 멀리 있는 것들도 다 내 것

문밖에 벗어놓은 구두가 내 것이듯


갑자기 찾아온

이 고통도 오래 매만져야겠다

주머니에 넣고 손에 익을 때까지

각진 모서리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리하여 마음 안에 한자리 차지할 때까지

이 괴로움 오래 다듬어야겠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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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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