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을 아이들에게 작은 위안을 줘
겨울은 끝나가고 있는데 아직도 젤리 눈사람을 찾아오는 아이는 없었다. 젤리눈사람은 여전히 다른 눈사람 친구들을 찾아오는 아이들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젤리 눈사람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혹시 나를 찾으러 온 걸까?” 젤리 눈사람의 젤리 눈의 표면이 반들반들한 빛을 내며 꼰대 오리 눈사람에게 물었다.
“벌써 들떠있지 마라, 꽥.”
젤리 눈사람의 젤리 눈이 가늘어졌다.
“그만 째려봐. 난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있어.”
아이는 이번 겨울, 사랑하는 강아지와 영원한 작별을 맞았다. 슬픔이 찾아왔고, 그 슬픔은 너무 무거워 영원히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른들은 아직 어린 아이라 슬픔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할 것이라며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매일 슬퍼했다. 어른들이 모르는 아이만의 깊은 슬픔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이가 찾아온 날, 운동장에는 오랜만에 함박눈이 내렸다. 아이는 눈 내리는 모습을 보기 위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새 하얀 눈송이들이 찾아와 얼굴 위로 뺨을 간지럽히며 내려오고 있었다. 눈 내리는 아름다운 모습은 아이의 시린 마음을 오랜만에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이는 그 따뜻해진 마음으로 눈사람을 만들었다. 아이가 눈사람을 만드는 동안, 아이의 마음이 눈사람에게 스며들었다.
눈사람은 깨어나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가 눈사람에게 답했다.
아이가 눈사람에게 슬픈 마음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눈사람은 아이의 슬픔을 바라보고 함께 슬퍼했다.
아이는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이 내린 곳에 앉아 눈사람에게 기댔다. 아이를 위해 모든 눈사람들이 환상으로 주위를 깜깜하게 만들어주었다. 낮이었던 운동장은 어느새 별이 보이는 까만 하늘이 되었다. 아이의 마음이 스며든 눈사람은 하늘을 도화지 삼아 반짝이는 은하수를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저곳에 사랑하는 강아지가 살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은하수 사이에서 강아지처럼 생긴 별자리가 고개를 들더니 신이 난 것처럼 깡충깡충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난 기쁜 마음이 담긴 강아지의 몸짓이었다. 아이를 닮은 별자리도 나타나 신이 나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아이를 닮은 별자리와 강아지를 별자리가 만나 함께 까만 밤 사이에서 춤을 추었다.
환상을 보여주는 눈사람은 다른 눈사람들보다 빨리 녹았다. 눈결정체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담아 많은 빛을 반사시켜 환상을 보여주고 나면 그 눈결정체는 녹아내려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눈사람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모든 눈사람들은 언젠가 자신들이 녹아 사라진다는 것과 아이들이 자라면서 눈사람에 대한 기억도 없어져버린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나눈 마음이었다. 눈사람들에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왜 아이들은 환상을 보는 걸 좋아해?” 젤리 눈사람이 꼰대 오리 눈사람에게 물었다.
“환상은 아이들에게 작은 위안을 줘. 그 작은 위안을 통해서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주는 거지. 그렇다고 착각해선 안돼. 환상은 도망치는 곳이 아니야. 언젠가 아이들은 환상을 벗어나야 해.”
“왜?”
“작은 위안 속에서 평생을 살 수는 없으니까. 그건 위험해. 결국 하얀 숲에게 잡아먹히게 될 수도 있어.”
젤리 눈의 표면에는 아이와 아이가 만든 눈사람이 서로 기대어 앉아있는 모습이 비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