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 눈사람은 눈결정체에 담긴 기억들을 꺼내보았다.
이제 젤리 눈사람은 왜 아이가 찾아오지 않는 지 그 이유를 알고싶었다. 눈사람은 그에 대한 답을 찾기위해 눈결정체에 담긴 기억들을 꺼내보았다. 기억을 빛에 반사시켜 하늘에 펼쳐보았다. 눈사람이 아직 작은 눈결정체로 있었을 때의 기억들이었다.
흩어져있던 눈결정체들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동그랗게 하나로 뭉쳐질 때, 어렴풋이 보았던 장면이 보였다. 그림자에 가려 만들어 준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의 반짝이는 눈동자들을 볼 수 있었다. 눈사람은 흐릿한 장면 속에서 보이는 얼굴의 형태가 어린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눈사람은 다른 눈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은 어른들이 만든 눈사람이라고 결론지었다. 눈사람은 자신이 어른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곳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눈사람의 외로움은 결국 자신만의 환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자신을 만들어 준 그들이 자신이 이렇게 외롭게 혼자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반드시 자신을 찾으러 오리라 믿었다. 눈사람은 어느 날 부터인가 매일 그들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냈다.
“어? 우리가 만든 눈사람이야-!”
눈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드디어 눈사람을 찾으러 왔다. 수소문 끝에 학교 운동장에 있는 놀이터에서 눈사람을 발견했다. 그들은 눈사람이 눈결정체로 존재할 때 흐릿하게 보았던 모습보다 더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드디어 찾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
너무 보고 싶었어!”
사람들은 눈사람을 보고 환하게 웃어줬으며, 그토록 듣고싶었던 말들을 해주었다.
“우린 항상 네 옆에 있을거야. 우리랑 함께 한다면 넌 영원히 녹지 않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거야.”
새하얀 눈보다 밝고 환한 얼굴을 하고 웃는 얼굴들. 눈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 환상 속에서 눈사람은 녹지않고 그들과 영원히 행복하게 살 것이었다. 비록 이 모든 것은 눈사람의 환상일 뿐이었지만, 눈사람은 스스로 만들어 낸 환상 속에서 위안을 얻었다.
젤리 눈사람이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측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놀이터에서 태어나 놀이터에 일어나는 일들을 하루종일 지켜보았던 눈사람은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것이 아이들의 부모님이라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사람이 지켜본 바, 그들은 언제나 아이들을 끝없이 사랑해주었다. 언제나 아이들을 두 팔 벌려 안아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눈사람은 자신도 다른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른들이 자신을 찾으러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었다.
눈사람은 다른 눈사람 친구들에게도 왜 아이들이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고 다녔다. 다른 눈사람들 친구들은 금방 젤리 눈사람이 만들어낸 환상을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운동장에는 가끔 어른들이 눈사람들을 만들고 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커플들이 만들어놓은 눈사람, 할아버지와 손자가 만든 눈사람, 엄마,아빠와 그리고 아이가 만든 눈사람. 다양했다. 젤리 눈사람의 말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하얀 숲은 젤리 눈사람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바람을 보냈다. 바람은 젤리 눈사람에게 따뜻함이 담긴 목소리로 자신을 찾아올 수 있는 방법을 속삭여주었다.
“하얀 숲으로 우리를 찾아오렴. 깊은 마음이 담긴 물건을 찾아. 그 물건이 하얀 숲으로 찾아오는 열쇠가 되어줄거야.”
젤리 눈사람은 어느 날은 자신을 만들어준 사람들이 자신에게 하얀 숲으로 찾아오라는 말을 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눈사람들은 하얀 숲이라는 단어에 놀라움을 표했다.
세상의 모든 눈은 북쪽에 숨어있는 하얀 숲에서 태어나 다시 하얀 숲으로 돌아갔다. 모든 눈사람들이 알고있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떤 눈사람도 하얀 숲에 대한 무성한 소문들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전해 들어본 적은 있어도, 직접 들어본 적은 없었다.
순식간에 운동장에 있던 모든 눈사람들이 젤리 눈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러 찾아왔다. 덕분에 여태까지 받지 못했던 관심을 다시 한 번 받을 수 있게되었다.
“하얀 숲에 대해서 어떤 얘기를 들었어?”
“하얀 숲으로 찾아오라고 했어!” 젤리 눈사람이 당당하게 얘기했다.
“왜? 그럼… 사라지게 되는거야?”
“아니, 그 곳에 오면 녹지 않고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다고 했어.”
“우와… 영원히 녹지 않는거야?”
“응. 날 만들어 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해줬어. 날 만들어준 사람들이!”
“부럽다. 나도 하얀 숲으로 가면 녹지않고 영원히 아이들이랑 있을 수 있을까?”
“그럴거야! 함께 하얀 숲으로 찾아가자!”
꼰대 눈사람이 어디선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를 듣고 뒤뚱거리며 허둥지둥 뛰어왔다.
“안돼! 하얀 숲으로 가는 건 위험해! 그리고 내가 봤어. 널 만들어준 건 어른들이 아니야. 분명 어린 아이였어.”
“왜 안된다는거야?” 젤리 눈사람은 나뭇가지 눈썹을 모으며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얀 숲으로 가면 영원히 갇히게 될거야.”
“영원히 녹지않는게 아니라 영원히 사라진다고?” 모여있던 오리 눈사람들이 수근대며 물었다.
“영원히 하얀 숲 안에 갇혀서 다시는 이곳에 오지 못하는거지.”
“세상에!” 한 오리 눈사람이 놀라 뒤로 자빠지며 소리쳤다.
“아니야. 하얀 숲이 소원을 들어준댔어. 그래서 오라고 한거라고!” 젤리 눈사람이 반박했다.
“하얀 숲이 그냥 소원 들어주는 줄 아니? 떼끼!” 꼰대 오리 눈사람도 물러나지 않고 말했다.
“나는 너네랑 달라! 하얀 숲의 바람소리를 들었어! 자기를 찾아오라고 했어! 난 하얀 숲의 초대를 받은 거라구! 나도 하얀 숲으로 가게 되면 날 만들어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녹지도 않고 영원히 사랑받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너를 유혹하기위해서 속삭인 거겠지. 아무도 너를 찾아오지 않으니까 그걸 알고 널 부른거야.”
아무도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다는 냉정한 꼰대 오리눈사람의 말에 젤리 눈사람은 화가 나 눈을 뭉쳐 꼰대 오리눈사람 부리에 던졌다.
“난 어른들이 만들어서 여기로 찾아오지 않는거야. 어른들은 아이들처럼 항상 여기에 오지않으니까!”
“정신차려! 절대 시간이 되기 전까지 하얀 숲으로 돌아가면 안되는거야!”
꼰대 오리 눈사람이 젤리 눈사람에게 반격으로 눈뭉치를 던졌다. 이에 질세라 다시 젤리 눈사람이 또 눈을 던졌다. 화가 난 꼰대 오리눈사람이 다른 오리 눈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저 못-된 버릇 좀 보게! 오리들! 어셈블!”
오리 눈사람들과 젤리 눈사람의 눈싸움이 벌어졌다.
“정신차려!”
“날 만들어준 사람들을 꼭 찾으러 갈거야! 너가 무슨 상관이야! 나랑 함께 하얀 숲으로 갈 눈사람! 손!”
젤리 눈사람과 꼰대 오리 눈사람이 말다툼을 보려고 나온 한 곳에 있던 모든 눈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젤리 눈사람이 하얀 숲으로 소원을 이루러 가야 해!”
“아니야!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야!”
의견은 둘로 갈렸다.
그렇게 꼰대 오리 눈사람과 젤리 눈사람이 격렬하게 싸울 때, 한 무리의 시끄러운 아이들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