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레터 Nov 06. 2024

연재 소설 28화 - 시크릿 파일

미스테레 연재 소설 - 선정이의 마지막 메시지

감금 폭행 사건이 보도된 후, 들끓는 여론과 사건의 엄중함으로 인해 수사는 화양경찰서에서 경기도 광역수사대로 위임되었고, 매일 같이 관련 속보가 쏟아져 나왔다. 나흘간의 입원 끝에 내가 퇴원한 후에도, 아버지는 한동안 뉴스를 애써 외면했다. 모자이크로 일부 가려졌지만, 너무나 쉽게 연상되는 나의 물고문 장면이 담긴 방송을 볼 때면, 당신의 숨이 막혀온다고. 나 역시 편치 않았다. 유튜브에 접속할 때마다, 불편하도록 친절한 알고리즘에 의해 사건 관련 뉴스와 영상은 최신으로 업데이트되어 나의 스마트폰 속에 전시되었다. 네모박스에 반듯하게 포장되어 배달된 수백 개의 랜덤 폭탄처럼. 그 박스들을 개봉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교체 시기가 지났는지 불규칙적으로 깜박이던 조명, 두 손이 뒤로 꽁꽁 묶인 채 욕조 속으로 머리가 처박힐 때마다 엄습하던 차디찬 죽음의 공포. 그리고 그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수치심과 모멸감. 그 순간 나는 몹시 살고 싶었지만, 강렬하게 죽기를 원했다. 불안하게 깜박이는 조명처럼 나의 삶이 꺼져간다는 위태로운 본능과 함께, 폭력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는 존재의 연약함...그 견딜 수 없는 수치가 콸콸 넘쳐 흐르는 물속에 영원히 수장되기를 바랐다. 수십 번 의식을 잃어 파편화된 기억들이 뉴스 동영상을 플레이하면서 가지런히 정렬되었다.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그 폭력의 시간을 복기하면서 비로소 나는 선정이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져도 ‘박제된 나’는 무한 복제되어 어둠의 세계를 유령처럼 떠돌게 될 것이라는 끔찍한 진실. 익명의 집단이 나를 마음대로 플레이하고, 멈추고, 더듬고, 능멸하며 배설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 그것은 명백한 집단 윤간. 한순간의 안식도 허락하지 않는, 그 무한지옥의 폭력 앞에 무너지지 않는 영혼이 있을까? 마지막 만났던 날, 자기만의 방에서 휴식하고 싶다 했던 선정이의 목소리가 아프게 마음을 파고들었다.


    


지난 7월 22일, 같은 학교 학생을 모텔에 감금하고 폭행하다 검거된 경기도 한 고등학교 도박총판 조직의 범죄가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관리 중인 불법도박 사이트 홈페이지 배너에 성 착취 동영상을 올려 소년을 유혹했습니다. 사이트 가입 후 도박을 하면 텔레그램 비밀채팅방으로 유도하고, 새로운 성 착취 동영상을 지속적으로 보내주는 수법으로 회원 이탈을 막았습니다. 또 도박 빚을 갚지 못한 여학생을 협박해 성 착취 동영상을 찍는가 하면 남학생은 마약 던지기 운반책으로 활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승합차에 싣고 다니며 병원을 투어해 의료용 마약류인 펜타닐을 대량 처방받아, 거액의 웃돈을 얹어 판매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편 이들 조직의 우두머리인 한 모 씨의 오피스텔에서 1억 원이 넘는 현금 돈다발이 발견되어 경찰은 자금의 출처를 추적 중입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마음이 조급해 질 때마다 습관적으로 뉴스 속보를 플레이하고 있다. 다락방, 내 책상 위에 놓여있는 선정이의 스마트폰. 퇴원 후 이틀 동안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건 현장에 지훈이가 도착했을 때 나는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선정이의 스마트폰을 한 손에 꼭 쥐고 있었다고 했다. 경찰들이 놈들을 체포하는 정신없는 순간, 눈치 빠른 김화식 기자님은 그 스마트폰을 손에 넣었고, 내가 병원에 있을 때 디지털 포렌식 복구를 한 업체에 맡겼지만 실패했다. 아무래도 선정이의 비밀을 개봉할 사람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며 기자님은 퇴원일에 맞춰 퀵 서비스로 스마트폰을 보내왔다.  

   

한도영 패거리가 구속돼 다행이지만, 통쾌하거나 후련한 기분이 아니었다. 내가 사고당한 날을 복기할수록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불편함, 도대체 그게 무엇인지 선명하지 않아 시간이 흐를수록 답답함이 더해졌다. 나에겐 반드시 해결해야 할 두 가지 문제가 남아 있다. 한도영은 선정이의 죽음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김화식 기자님도 경찰이 놈들의 스마트폰과 공기계 분석을 통해 성 착취 동영상 추가 피해자 7명의 신원을 확보했지만, 선정이와 관련된 자료는 단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정보를 주었다. 선정이의 죽음이 정말 놈들과 관련이 없다면? 선정이를 낭떠러지로 몰아간 ‘파우스트’는 누구일까?

또 하나 도박사이트에서 허무하게 공중분해 된 지훈이의 소중한 돈. 지훈이는 정말 괜찮다고 미안해하지 말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했지만, 지훈이의 꿈 자체인 그 돈을 포기할 순 없다.    


  

최신 스마트폰 기기의 보안이 강화되어 비밀번호로 잠금 설정한 경우 ‘브루트 포스(Brute Force) 툴’로 노가다를 뛰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가령 6자리 비밀번호로 잠겨있는 스마트폰의 경우 무차별 암호 대입방법을 사용하면 무려 100만 가지 경우의 수가 생긴다. 비밀번호로 잠겨있는 선정이의 스마트폰, 다양한 숫자를 조합해 잠금 해제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병원에서는 심각하지 않은 뇌진탕이라 했지만, 체력이 떨어져 그런지 견딜 수 없는 피곤함이 몰려와 초저녁잠이 들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빠져든 잠은 곧 그 시간으로 나를 데려갔다. 차가운 욕실 바닥에 던져진 활어처럼 내가 울컥울컥 마신 물을 토해내는 동안, 한도영은 1인용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바카라 게임을 하고 있다. 충전금액은 이제 350만 원밖에 남지 않았다. 잃기로 작정한 것처럼 놈은 고민도 망설임도 없는 플레이를 반복 중이다. ‘제발 그만해!’ 울분처럼 터져 나온 외침. 들리지 않는지 녀석은 플레이를 멈추지 않는다. 이상하다. 유체이탈이라도 한 것처럼, 완전히 열린 감각을 통해 모텔 안의 모든 장면들이 광폭 스크린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닫혀 있는 작은 방안, 성배는 침실 위에 널브러져 있고, 간이 테이블 앞에 앉은 영진이는 스마트폰을 들고 메시지를 작성 중이다.  

이제 나는 한도영과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나를 본다. ‘우리가 관리하는 사이트 중에 핫한 데가 있거든. 거기에 지훈이 돈 싹 긁어 니 이름으로 계정 파서 이체했어.’ 한도영이 탁자 위에 도박 중이던 스마트폰을 내게 내밀 때, 그 게임 사이트를 본 순간 나는 이미 ‘놈’을 감지했었다.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는 두 개의 카지노 사이트.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왜 바로 기억하지 못했을까?

그 카지노 사이트에 설정되어 있던 나의 닉네임 ‘알리바바 은호’. 한도영과 강영진은 절대 알 수 없는, 닉네임 ‘알리바바’를 알고 있는 놈. 놈을 찾아야 한다! 모텔 문을 열고 나가려 할 때, 엄마가 건네준 하얀 표지의 책이 협탁 위 선정이 스마트폰 옆에 나란히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아...엄마가 주신 책을 빠트렸었구나. 책을 손에 쥐자 내가 바라보던 공간이 부드러운 곡선처럼 휘어지더니, 순식간에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튕겨 나가듯,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몇 시일까? 스탠드를 켜고 책상 앞에 앉았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두근두근, 가슴이 떨려왔다. 정신없는 퀘스트를 허겁지겁 해결하며 드디어 마지막 출구 앞에 선 느낌. 떨리는 손으로 노트북을 열며 생각했다. 사고 당일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풀리지 않던 질문. 강영진은 왜 물고문 현장을 동영상으로 남겼을까? 경찰 조사 결과 놈들은 평소 범죄 증거가 될만한 동영상이나 자료들은 휴대폰 공기계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나름대로 철저한 강영진이 조직에 불리한 동영상을 촬영한 목적이 궁금했었다. 한도영을 내가 폭행하는 장면만 동영상 기록으로 남겼다면, 녀석들이 만들어둔 시나리오대로 도박 빚 때문에 꼭지가 돈 내가 놈들을 음해하고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끼워 맞출 수 있었을지 모른다. 조금 전 ‘그놈’의 정체를 깨닫기 전까지는, 텔레그램 비밀방에 생생한 폭력을 담은 스너프 필름을 공유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알 것 같다. 영진이가 동영상을 찍은 것은 바로 그놈에게 인증샷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정말 환한 빛을 쏟아내는 모니터 너머에 숨어 있는 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읽지 않은 메일들로 가득 찬 나의 메일 함, 한참을 스크롤을 내리다, 보안 테스트를 부탁하며 놈이 나에게 보내왔던 제안 메일을 찾았다.

mediator@pantheon.com.

정말 놈이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을까? 내 추측이 맞다면 강영진의 스마트폰에서도 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번 강영진의 스마트폰을 해킹했을 때 저장해둔 파일들을 다시 확인했다. 있다! 강영진의 텔레그램 친구목록에서 발견한 아이디, mediator. 점점 나의 추리에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mediator, 중재자라는 의미의 닉네임을 즐겨 사용하는 놈. 혹시나 이 아이디가 선정이 스마트폰의 비밀번호일지도 모른다.  

   

모의 해킹대회 출전 때보다 더한 긴장감 속에 선정이 스마트폰에 <mediator>를 입력했다. 경쾌한 소리음, 거짓말처럼 잠금이 해제되고 드디어 비밀이 문이 열렸다! 스마트폰 배경화면에는 ‘파일을 순서대로 열 것’이라는 안내 문구가 떠 있다. 선정이의 스마트폰은 공기계처럼 깨끗했다. 파일명을 번호로 표기한 다섯 개의 파일만이 남겨져 있었다.     



< 1 >

은호에게

네가 여기까지 왔다면,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나리라 생각해.

고3인 너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게 한 것, 뭐라 표현할 수 없이 미안해. 이유는 모르겠어. 너라면 피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모든 사건의 베일을 벗겨줄지 모른다는 믿음. 내가 가지고 있는 <mediator>의 자료들, 어떻게 너에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했어. 사용하던 스마트폰은 해킹에 감염되었고, 내가 죽고 나면 어떻게 처리될지 알 수 없어서 공폰에 담았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네게 보낸 메시지는 웹문자를 이용한 예약발송이야.

혹여나 네가 중간에 지쳐버려 이 편지에 도착하지 못한다 해도... 내 힘든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었던 단 한 사람. 은호야, 친구가 되어줘서 눈물 나도록 고마워. 두 번째 파일은 출력해서 파우스트에게 전해주면 고맙겠어. 항상 행운과 축복이 너의 삶에 가득하길 기원해.     


메시지에는 교정 벚나무 아래 책을 들고 나란히 서 있는 선정이와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이 첨부되어 있다. 선정이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니, 기억을 더듬어 본다. 작년 봄 북태그 동아리 홍보영상을 만든다고 회원들이 몰려다니며 교정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었던 적이 있다. 만개한 벚나무 아래, 선정이의 미소는 아프도록 환하다. 너무 짧은 봄날 같은 삶을 살다간 아이. 선정이의 메시지는 이제 끝일까? 죽음 너머에서 간절함을 담아 나에게 온 메시지, 그 마음을 펼쳐 보는 것은 항상 말할 수 없이 먹먹했다. 선정이의 파일을 내 스마트폰으로 전송했다. 그리고 두 번째 파일을 열었다.          




< 2 >

내게 지옥을 선물한 당신,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똑같이 비밀스러웠던 모든 것들이 베일을 벗을 시간입니다.

그러나 나는 죽었고, 당신은 흥건한 피가 흘러넘치는 도시 속에 살인자의 얼굴을 숨긴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나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파우스트의 결말은 다시 쓰입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당신은 영원히 지옥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아는 주님의 선하심입니다. 아멘.     


* 선생의 손이 범한 살인의 피가 아직 그 도시에 묻어 있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복수의 전령들이 살해된 자의 무덤 위를 떠돌며, 살인자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소. -파우스트-   


  

선정이가 파우스트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읽으며 나는 다시 한번 혼란에 빠졌다. 나는 mediator가 선정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파우스트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선정이는 분명하게 mediator와 파우스트, 두 존재를 구분하고 있다. 파우스트는 대체 누굴까? 궁금증을 가지고 세 번째 파일을 열었다. 파일에는 아무 설명 없이 두 개 사이트의 주소가 적혀 있다.         



 


< 3 >

* www.pandemonium.net

* www.deathcitygame.net     




선정이도 알고 있었구나, 놈의 정체를. <www.deathcitygame.net> 사이트에 접속했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를 비행하는 긴 날개를 가진 악마의 압도적인 모습이 모니터를 가득 채운다. 뒷배경만 살짝 다를 뿐, 베타버전 오픈과 함께 인기몰이 중인 판데모니움 게임의 오프닝 화면과 매우 흡사하다. 밤하늘에 우뚝 선 거대한 에메랄드 성 위로 <회원 가입> 메시지가 뜨면서 카지노 게임 맛보기 화면이 실행되고 있다. <www.deathcitygame.net> 역시 메타버스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도박사이트였다. 공간을 구성하는 주요 색상과 게임 환경, 게임 메뉴, 모든 것이 판데모니움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 모텔에서 바카라 게임 중인 한도영의 스마트폰을 보았을 때도 너무나 눈에 익은 게임 공간에 나는 기시감을 느꼈었다.

합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소셜 카지노게임 <판데모니움>, 그리고 어둠의 영역  에 속한 불법도박 사이트<deathcitygame>. 이 두 개의 세계를 박쥐처럼 오가며 프로그램을 설계한 자. 지브롤터에 있는 게임회사 ‘판테온 플레이어’의 부사장 다니엘 정. 놈이 바로 mediator다!  




*브루트 포스(Brute Force) :조합 가능한 모든 문자열을 하나씩 대입하는 것.

*스너프 필름 : 실제로 행해진 강간, 살인, 자살, 폭행 따위를 찍은 영상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