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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Oct 24. 2022

그래 우리의 시작은 사랑이었다

결혼식에서

‘그래. 우리도 저런 출발이 있었지.’


지난 주말, 결혼식에 다녀왔다. 사촌 동생의 결혼식이었다. 하객이 무척 많고 부모님도 식장에 다 오셔서 길을 못 찾으시는 바람에 허둥지둥 결혼식장에 들어갔다. 평소에 예배 스타일의 결혼식은 지루할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터라 별다른 기대 없이 식에 참석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하는 결혼이라 그런지 군데군데 재밌는 요소가 많았다. 그리고 목사님의 주례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목사님 말씀을 듣고 있자니 결혼 생활 초기에는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귀에 잘 들려왔다. 달콤하기만 할 것 같았던 결혼은 짜기도 하고 가끔은 쓰기도 했다. 목사님은 신랑 신부가 너무 겁먹지는 않게 조심스럽고 따뜻하게 두 사람이 지켜야 할 것들을 설명해주셨다. 결혼 생활을 이미 시작해 진행 중인 나도 새겨야 할 말씀이 많았다. 결혼식이 끝날 즈음에는 나도 모르게 내 옆에 있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가끔 구글 포토에서 몇 년 전 사진을 모아서 보여주곤 한다. 문득 사진첩을 보다가 구글 포토가 추천해준 사진을 보게 되었다. 시간을 역행하는 순서로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들의 사진이 점점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처음에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재민이가 이렇게 작았지. 이렇게 귀여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쭉 사진을 넘기는데, 이번에는 남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볼살이 통통했었는데,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는 얼굴 살이 쪽 빠졌다. 결혼할 때 즈음의 남편의 모습을 보니 참 귀여웠다.


‘이때 남편 참 젊었다. 맞아 이런 모습 때문에 내가 아이를 낳고 싶었지.’


예전에는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남자 친구였고, 남편이었다. 그게 어떤 것보다 우선이었다. 그냥 이 사람이 좋았고, 함께 있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에 책임과 의무, 매일매일의 일상이 쌓여가면서 점차 우리는 “사랑한다”, “보고 싶다”는 말보다는 오늘 해야 할 집안일은 다 했는지, 오늘 저녁은 무슨 메뉴가 좋을지를 더 많이 말하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결혼이라는 지속적인 틀 안에서 일상적인 것을 묻고 지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내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의무와 책임을 묻고 따지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사랑해서 함께 있기로 결정한 사람들이었다.


아, 그랬다. 저 사람과 나는 사랑이었다.


시작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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