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가 품은 문장 1
가장 처음 남기고 싶은 <토지>의 명문장은 '팔월 한가위'에 관한 것입니다.
기록 전에 잠시 생각해 봅니다.
'한가위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은 뭘까?'
'만약 한가위를 주제로 글을 쓴다면 나는 어떻게 쓸까?'
(잠시 멈추고 함께 생각해 주시길...)
(by 소리)
설날의 설렘만큼이나 한가위, 추석이라는 명절은 풍요로움의 상징과 같이 느껴진다.
옛 전통을 굳이 지켜 따르는 명절은 아니었지만, 마트에 풍성하게 쌓인 윤기 흐르는 송편들, 한 아름 품에 안고 싶은 탐스런 보름달, 늦여름 끝자락에서 누릴 수 있는 꽤 긴 연휴... 이런 것들이 주는 전체적인 상념이 풍요롭고 넉넉하니 말이다.
깊은 밤 올려다보는 달은 언제나 아름다웠지만, 차갑고 외로운 아름다움이었다.
그런데 한가위에 보는 달은 유난히 밝고 빛나서 투명하게까지 보인다. 태양의 뜨거운 빛에도 밀리지 않을 만큼 달의 차가운 빛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럴 때면, 아스라이 깊은 마음속 소망마저 기꺼이 길어 올려 달에게 보내고 싶다. 그럼 정말 마법처럼 이루어질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도 된다.
한가위에 대한 저의 문장들은 이렇듯 풍요롭고 충만하며, 넉넉하고 여유롭네요.
중간 스토리가 어떠하든 결국은 이런 "한가위 예찬"으로 끝나는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토지>에선 팔월 한가위를 어떤 문장으로 담아내고 있을까요?
토지가 품은 문장 1
<토지> 1부 1권, p.27-29 (마로니에북스)
팔월 한가위는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는 아닐는지.
태곳적부터 이미 죽음의 그림자요, 어둠의 강을 건너는 달에 연유된 축제가 과연 풍요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는지. 서늘한 달이 산마루에 걸리면 잔잔한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소복 단장한 청상의 과부는 밤길을 홀로 가는데--- 팔월 한가위는 한산 세모시 같은 처량한 삶의 막바지, 체념을 묵시하는 축제나 아닐는지. 우주 만물 그중에서도 가난한 영혼들에게는.
가을의 대지에는 열매를 맺어놓고 쓰러진 잔해가 굴러 있다. 여기저기 얼마든지 굴러 있다.
쓸쓸하고 안쓰럽고 엄숙한 잔해 위를 검시하듯 맴돌던 한 바람은 어느 서슬엔가 사람들 마음에 부딪쳐와서 서러운 추억의 현을 건드려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하고 많은 이별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흉년에 초근목피를 감당 못하고 죽어간 늙은 부모를, 돌림병에 약 한 첩을 써 보지 못하고 죽인 자식을 거적에 말아서 묻은 동산을, 민란 때 관가에 끌려가서 원통하게 맞아 죽은 남편을, 지금은 흙 속에서 잠이 들어버린 그 숱한 이웃들을, 바람은 서러운 추억의 현을 가만가만 흔들어 준다.
(......)
풍요하고 떠들썩하면서도 쓸쓸하고 가슴 아픈 축제, 한산 세모시 같은 한가위가 지나고 나면 산기슭에서 먼, 먼 지평선까지 텅 비어버린 들판은 놀을 받고 허무하게 누워 있을 것이다.
마을 뒷산 잡목 숲과 오도마니 홀로 솟은 묏등이 누릿 누릿 시들 것이다. 이러고저러고 해서 세운 송덕비며 이끼가 낀 열녀비며 또는 장승 옆에 한 두 그루씩 서 있는 백일홍 나무에는 물기 잃은 바람이 지나갈 것이다. 그러고 나면 겨울의 긴 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저는 이 문장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
"풍요하고 떠들썩하면서도 쓸쓸하고 가슴 아픈 축제, 한산 세모시 같은 한가위"
'한산 세모시 같은'...
박경리 작가는 왜 한가위를 '한산 세모시'에 이렇게도 자주, 반복해서 표현했을까요...?
한산 세모시가 어떤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곱게 짜인 모시더군요. 특히 한산지방에서 유명한.
속이 비칠 만큼 섬세하고 투명한 모시 옷감은 보름달처럼 눈부시게 귀하고 아름다운데, <토지>는 이런 세모시 속의 비애(悲哀)를 보고 있네요. 밤낮으로 베틀을 밟으며 이를 지어냈을 아낙네의 고된 노동이 숨겨져 있기 때문일까요?
"처량한 삶의 막바지, 체념을 묵시(默示)하는 축제"
풍요로운 축제로만 여겼던 한가위가 이렇게도 서글프게 묘사되어 있는 문장들 사이사이를 저 또한 서글픈 마음으로 길을 잃은 듯 서성이게 됩니다.
본래 달은 "태곳적부터 이미 죽음의 그림자요, 어둠의 강을 건너는 대상"이었기에 그런 달의 절정, 보름달에 연유한 한가위가 과연 '풍요'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지?라고 묻는 박경리 작가의 문장은 제 주관의 고정관점을 단박에 깨는 듯한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태양의 뜨거운 빛에도 밀리지 않을 만큼 달의 차가운 빛은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저의 문장은, 한가위 보름달이라면 당연 그래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아마도 가난하고 굶주렸던 백성, "가난한 영혼들의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여름의 끝자락에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곧 뒤돌아 떠나버린 축제의 자리에는 이내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대신합니다. 쓸쓸한 낙엽('쓸쓸하고 안쓰럽고 엄숙한 잔해') 위를 맴돌던 바람은 백성들의 마음에 "서러운 추억의 현"을 건드린다 했습니다. 1897년 당시의 백성들은 흉년에 초근목피로 연명하다가, 돌림병에 속절없이, 혹은 억울하게 끌려가 원통하게 맞아 죽었다지요. 그런 부모, 형제, 이웃들에 대한 서러운 기억들이 서늘한 바람과 함께 백성들의 마음에 기어이 파고들고 맙니다.
이 마저도 지나고 나면, "겨울의 긴 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했습니다.
가난한 백성들은 곧 겨울을 맞게 될 것이고, "텅 비어 버린 채, 허무하게 누워있는 들판"에는 먹을 곡식이 없겠지요. 단 하루, 풍요의 축제 뒤에는 길고 고통스럽게 이어질 한 겨울의 굻주림과 절망, 보릿고개의 날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서글퍼했을 일입니다.
그러니 휘영청 보름달이 아무리 밝고, 축제의 노랫소리가 크다 한들 그 마음이 설렘으로 가득 찰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앞서 닥칠 고통의 시간을 알기에 조금이라도 늦게 마주하고픈 마지막 절규의 외침들이 아니었을까요? 그야말로 "처량한 삶의 막바지, 체념을 묵시(默示)하는 축제"일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쓸쓸하고 가슴 아픈, 영원한 외로움, 달에 연유된 축제, 이 축제가 끝난 후의 허무하고, 텅 빈 들판, 굶주리고 추운 긴 밤을 지새워야 하는 백성의 마음을 보듬고 있는 팔월 한가위에 대한 시선은 <토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귀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아닐까요?
몇 번이라도 어루만지고 어루만지며 그 속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은 문장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