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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불안에서 존재의 자유로-나를 돌아보는 작은 전환

소유냐 존재냐_에히리 프롬

by 서수정

나는 요즘 건축공학 석사논문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며 책상 주변에 널브러진 책이며 프린트한 종이 등으로 가득하다.

거실에는 책이 쌓여있고 집안은 엉망이다. 하지만 지금의 일상이 나의 정체성을 증명해주고 있다고 믿게 된다.

이런 모습들 속에는 내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들이 담겨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롭기보다는 더욱 무겁게 하기도 한다.

성과와 책임 등은 늘어났지만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가고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고 발전하고 있는 것 같지만 ‘더 많이 가지기 위한 경쟁‘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소유하는 자는 자신이 가진 것에 의해 살아가고, 존재하는 자신이 살아 있기에 존재한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 소유의 삶은 끊임없는 불안 위에 서 있다. 내가 가진 것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결국 ’더 많이‘라는 집착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인간관계 속에서도 드러났다. 나의 일상의 모든 것들이 나의 존재보다 앞서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나를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은 채 바쁘게 살아가는 것만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재하는 삶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삶이다. 그것은 경험하고 나누며 창조하고 사랑하는 상태 그 자체이다. ”


어느 날,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잡 근처 농소천을 걸으며 조용히 다가오는 바람의 숨결을 느낀 순간이 떠오른다.

그 순간만큼은 무엇을 위해 애쓸 필요도 없고 가지려고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으며 타인들과의 관계에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시간이었다.

단지 이 자리, 지금 ‘존재하고 있음’ 그 자체가 내게 깊은 안정과 위로를 해주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취가 아닌 나 자신과의 내밀한 연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순간순간 나를 위한 시간은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성찰하게 도와준다.

요즘 나는 ‘어떻게 보일 것인가 ‘를 더 자주 묻는다.

글을 쓸 때도 누구가에게 인정받기보다는 내가 진심을 담아 표현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기술보다 감각, 성취보다 교감이 삶의 우선순위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들은 결코 헛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나를 정의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는 경쟁하기보다는 나누고 공감하는 삶을, 증명하기보다는 표현하는 삶을 선택하고자 한다.


“현대 사회는 존재보다 소유를 장려한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소유의 벗어난 속에 있다”


에리히 프롬은 이 책에서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닌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소유 중심의 삶은 사람을 불안과 고립으로 몰아넣지만, 존재 중심의 삶은 타인과의 연결, 스스로에 대한 이해, 그리고 삶의 진정한 기쁨을 가능하게 한다.

존재로 산다는 것은 매 순간 작은 선택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귀 기울이며, 자연의 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 있다면 나는 소유가 아닌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존재의 자유는 거창한 것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 내가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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