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키운 마음의 근육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는 일은 단순한 독서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아이의 마음속 작은 창문을 열어주고, 말로는 다 전하지 못했던 감정과 생각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그 창문을 통해 우리는 아주 다정한 방식으로 서로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중에서도 네 권의 그림책은 특히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있었다.
[행복한 청소부]는 거리의 표지판을 닦으며 하루를 살아가는 한 아저씨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고, 이름도 모른 채 닦아오던 표지판이 유명 작곡가의 이름임을 알게 된 뒤, 그들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다.
단지 일을 넘어서, 그는 음악과 문학에 대해 알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삶을 살게 된다.
아이는 “이 아저씨 진짜 멋져”라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점점 더 잘하게 되는 게 멋있어 보여서”란다.
그 말은 마치, 자존감이란 남이 주는 칭찬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아이의 목소리 같았다.
어느 날, 남편은 아이들을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키우면 좋겠다며 한 번도 떠나 본 적이 없는 대전에서 유구로 이사를 했었다.
그곳에서의 2년이라는 시간은 아이들에게 많은 경험과 마음의 힘듦을 견디며 근육을 키우게 된 시간들이라고 기억된다.
그래서 아이와 읽은 책이 [강아지 똥]이었다. 버려진 강아지 똥이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를 묻다가, 결국 들꽃을 피우는 거름이 되어 자신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
이 책은 아이의 마음속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한참 말이 없던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불안한 자기 존재에 대한 첫 질문이었고, 나는 말 대신 아이를 안아주었다. 존재 자체로 의미 있다는 것을, 아이는 그날 처음으로 ‘깊이’ 느꼈던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읽었던 또 다른 그림책 [무지개 물고기]는 외로움과 나눔에 대한 이야기다. 반짝이는 비늘을 혼자 지키려 했던 무지개 물고기가 결국 자신의 비늘을 나누며 친구를 얻는 과정을 통해, 아이는 “혼자 예쁜 것보다 같이 웃는 게 더 좋아”라고 말하며 아끼던 스티커를 친구에게 건넸다.
나눔은 배워야 할 도덕이 아니라,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기쁨이라는 걸 아이는 이 책을 통해 직접 체득했다. 반짝이는 비늘이 떨어져 나갈수록 더 빛나는 건, 바로 그 물고기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께 읽은 [생각을 모으는 사람].
이 책은 한 장면, 한 문장이 고요하게 긴 여운을 남긴다. 주인공 아저씨는 생각을 수집하는 사람이다.
그는 흩어진 생각의 소리를 듣고, 조용히 배낭 속에 담아 정리한다. “예쁜 생각, 미운 생각, 시끄러운 생각, 조용한 생각… 모든 생각이 다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그는, 마치 아이의 마음속 혼란까지도 품어줄 줄 아는 어른처럼 보였다.
아이도 가끔 이유 없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예전엔 그 시간이 마냥 게으름 같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은 아이가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모든 생각을 받아들이고, 조심히 가려내며 마음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시간. 생각이 정리되면 그제야 쉴 수 있다는 말처럼, 아이는 요즘 들어 더 단단해진 눈빛으로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림책이 주는 좋은 점
1. 정서적 안정과 공감 능력 향상
그림책은 아이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감정을 언어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불안, 외로움, 슬픔, 기쁨 같은 감정들을 이야기와 이미지로 안전하게 체험하며, 아이는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힘을 키운다.
2. 자존감과 자기 이해를 키워준다
[강아지 똥]처럼 존재의 가치를 묻는 이야기나, [행복한 청소부]처럼 묵묵한 태도를 다룬 그림책은 아이에게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연습을 하게 한다.
아이들은 “나는 나로 괜찮다”는 감정을 책 속 인물을 통해 배우게 된다.
3. 상상력과 창의력의 원천
글보다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그림은 아이가 직접 상상하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글자가 없는 그림책도 많고, 그림의 숨은 의미를 찾는 과정은 아이의 사고력과 표현력을 풍부하게 만든다.
4. 부모와의 정서적 교감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책을 매개로 아이의 감정, 생각, 궁금증을 나누며 서로에 대한 이해와 애착이 깊어진다.
¤ 그림책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좋은 감정을 돌아보게 한다.
마음을 돌아보고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싶을 때 읽어보면 어떨까...
이 네 권의 그림책은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고, 작지만 단단한 자존감을 심어주었으며, 나눔의 기쁨과 성찰의 고요함을 가르쳐주었다.
책 속 인물들은 아이에게 단순한 주인공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친구이자 조용한 인생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함께 읽어볼까?”
그 질문은 책을 고르기 위한 말이었지만, 사실은 이렇게 아이에게 조용히 묻고 있었다.
“나는 너의 마음을 알고 싶어. 그리고 너의 곁에, 더 오래 머물고 싶어.”
그림책의 그림을 읽어보아요
1. 글보다 그림을 먼저 보세요
글을 읽기 전에 그림만 보고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상상하게 해 보세요.
그림에는 글에 쓰이지 않은 배경 정보, 감정 표현, 시간의 흐름이 숨어 있어요.
> 예: [생각을 모으는 사람] 속 장면에서는, 아저씨가 표지판을 닦는 손끝과 그 표정이 이야기보다 먼저 인물의 진심을 전해준다.
2. 색감과 구도를 살펴보세요
어두운 색은 긴장감, 밝은 색은 희망이나 따뜻함을 표현해요.
구도가 좁고 닫혀 있으면 불안감, 넓고 트여 있으면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요소들을 아이와 함께 느껴보는 것도 훌륭한 감정 교육이다.
3. 숨은 그림과 상징을 찾아보세요
종종 작가는 아이들 눈높이에서만 보이는 숨은 그림이나 상징을 그림에 넣어요.
그림 속 인물의 표정 변화, 배경에 숨겨진 작은 요소들이 전체 이야기의 메시지를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4. 그림의 '움직임'을 상상하세요
연속된 장면의 그림은 이야기의 '흐름'을 보여줘요.
아이와 함께 “이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말하며 그림의 다음 장면을 예측해 보는 것도 상상력을 키우는 좋은 연습이에요.
부모가 할 수 있는 그림책 읽기 방법
>> 질문하기: “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어떤 기분일까?”,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 감정 이름 붙여주기: “이건 슬퍼 보이지? 슬플 땐 울 수도 있어.”
>> 아이의 말을 기다려주기: 아이가 말하지 않아도 그림책은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을 주고 있어요.
>> 책을 덮은 후 이야기 나누기: “이야기 속 누구랑 제일 닮았을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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