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코로나로 인해 포기합니다 : 이성의 문제

독일 교환학생포기담

by 북극성 문학일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포기를 결정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이지만 다음을 기약하고자 합니다.




학교 국제교류팀에 포기 의사를 밝히자 1시간도 안 지나서 해외연수 포기 서류가 메일로 왔다. 사유는 많았지만 간단하게 적었다. 1년 전, 신청서를 작성할 때만 해도 있는 말 없는 말 다 가져와서 살을 붙였는데. "결정은 역시 이성이 하는구나." 독일 교환학생 준비를 포기했다고 친구에게 말하자 그가 내게 했던 말이다. 준비하는 모든 과정은 이성이 아닌 마음이 이끌려서 했다. 코앞까지 다가온 독일행이었지만 마음을 정리하고 이성을 따르는 선택을 했다.


적어도 나에겐 가지 않는 편이 더 적합한 선택이었다. 우선 언어 문제. 독일어를 1년 반 정도 배우고 있지만 기초 수준이다. 독일어 자격증은 쓰기, 읽기뿐만 아니라 말하기도 있다. 내 생각을 외국어로 말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준비하면서 새삼 느꼈다. 코로나 상황이기에 대면 수업이 아닌 ZOOM을 통해서만 수업이 이뤄지기에 몸짓 발짓도 통하지 못한다.


다음으로는 제한된 상황이었다. 최근 1개월은 주로 집에서만 있었다. 나갈 일이 많지 않았다. 가서도 똑같을 것 같았다. 물론 가지 않아서 이제 알 수 없지만. 자취도, 혼자 일주일 이상의 여행 경험도 없기에 연고도 없는 독일에서의 1학기가 두려웠다. 스포츠나 언어 교환도 모두 인터넷으로, 심지어 학식도 픽업으로만 가능했다.

가장 결정적인 건 첫 취지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사유의 시간을 얻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서점이나 프랑크푸르트 도서 전시회를 방문하며 문화적 낯섦도 느끼고 싶었다. 현재 유럽권은 우리나라보다 더 코로나 확진자가 많은 상황이기에 이런 일들이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장기적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에서도 ‘언어’가 가능하다면 체험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마지막으로는 이미 교환학생이 한 학기 미뤄졌다는 점, 학점 문제, 연초에 스트레스로 갑자기 생긴 콜린성 두드러기가 아직도 낫지 않았다는 점, 부모님의 걱정도 한몫했다. 그러나 지난주만 해도 이런 모든 문제를 다 떠나서라도 가고자 했던 나였다. 그리고 함께 준비했던 친구들은 이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가는 것을 결정하기도 했다.


작년에 한 학기 연기되었을 때보다 올해가 더 힘든 이유는 나를 자꾸 탓하게 되는 마음 때문이다. 주변 친구들은 줄곧 거침없어 보였다. 본인도 걱정 많은 상황에서 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 고민하지 말라며 다독여주었다. 독일에서 내게 문제가 생긴다면 3시간 거리니 자신이 이곳으로 와주겠다고도 말했다. 오페어로 가서 잘 지낸다면 동네에 초대하겠다던 언니, 근처 맛집을 잘 아니 같이 다니자고 했던 친구도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준비하며 한 번도 확신을 가졌던 순간이 없었다. 늘 두려웠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 이렇게 부족할까 하는 마음에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실망했다.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내 마음의 크기를 의심하기도 했다. 너 정말 가고 싶은 거 맞아? 하며 다그치기도 했다. 새벽에는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를 얻더라도, 자고 일어나면 다시 확신이 없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런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결국 선택했다. 친구와 나를 비교하는 미련한 생각을 앞으로도 할 수 있다. 안 가기를 선택한 나는 어쩌면 안 간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다. 그때 더 용기를 냈더라면, 하는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게 지금의 나의 선택이다. 후회보다는 지금을 더 고민하자고 다짐한다. 지금 나는 다시 출발점에 서 있다. 경로를 다시 바꿔야 하는 시점이다. 그동안은 독일만을 바라보며 달려왔다면, 지금은 다시 삶에서의 모색을 시작해야 한다.


잘할 수 있을까. 우선 이별부터 잘하기로 했다. 안녕, 하고 인사부터 잘 건네주기로 했다. 포기했다고 해서 이게 끝은 아니니까. 마무리가 있어야 다시 시작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다. 2년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정리하자고.










* 지친 마음으로 자장가처럼 듣던 영상

-서이제 작가의 지속되는 빛


https://www.youtube.com/watch?v=yh7fXdS0umw


지속되는 빛에 나오는 모든 문장이 맥락과 상관없이 좋았다.

영상을 보다가 내 이야기 같아서 펑펑 울기도 했다. 무엇 하나도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던 그때에 영상에 나오는 문장들을 읽고 듣고자 영상을 하염없이 보곤 했다. 문장들이 다 반짝였으니까.


-지나간 것들이 그대로 지나가버릴 수 있도록 내버려 둬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어.

-생각으로만 살기

-도대체 지금껏 나는 어디에 있었던 걸까

-이십 대가 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올해 내 일기장에 노래, 영상, 내레이션이 있다면 이 모습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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