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년간의 독문학 학회 경험기

-2019년, 마음의 출발점을 찾아서

by 북극성 문학일기


[COVID-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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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코로나 확진자 통계만 봐도 눈물이 쏟아지던 2020년 어느 연말, 나는 독일 교환학생 포기담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포기담을 쓰기에 앞서서 대체 왜 독일에 가겠다는 결정을 내렸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독일어 공부를 위해 신청한 첫 휴학까지, 총 1년 반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결정을 내렸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흐릿해졌다. 비 오는 날의 자동차 창문처럼 닦아도 닦아도 흐릿했다.


사랑하고 꿈꾸던 마음의 첫 출발점을 살펴보고 싶었다.


그래서 2019년의 기록을 다시 꺼내 보기로 했다. 독문학 학회에 참가했던 1년의 기록이 담겨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니 온 마음, 사랑 가득한 시기의 내가 떠오른다. 그땐 독문학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라 설렘과 떨림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글로 적으며 마음을 달래던 시절. 낯 뜨겁게 고백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우면서도 그 시절의 내가 부러워지기도 한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까지 나를 포기하지 못하게 하나 보다. 아래 그 글을 첨부한다.







2019년, 마음의 출발점을 찾아서

-<1년 간의 독문학 학회 경험기>



내게 사랑은 나 아닌 것에 ‘빠져듦’ 그리고 ‘달라짐’이다. 우연한 계기로 엮여 서로의 세계를 흡수하면서 안 하던 짓을 하거나 하던 짓을 안 하게 되는 일. 이전과 다른 삶으로 넘어가는 계기적 사건이 사랑같다.

( 은유, 다가오는 말들 (p.87). 서울 : 어크로스)

독문학을 만나다

-익숙해진 ‘나’에게서 벗어나기


이 글을 읽다가 문득 나는 지금,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 한 해가 그러했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작품을 공부하는 국문과 학생이라는 정체성에 나를 가두고 규정지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문학작품을 좋아하고 책과 사람을 좋아한다는 일이 세상과 동떨어진 ‘책 바보’가 되는 것 같아 두려웠다. 그 시선을 의식해 좋아하는 일을 좋아한다고도 말하지 못했다.


그러다 독일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생겼다. 외국어도 잘하지 못하고 한국을 벗어나 외국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꿈조차 꾸지 못한 나에게 독일은 그저 ‘낭만적인 나라’로만 존재했다.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낯선 나라. 독일이 궁금해진 건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이 나라를 떠나보고 싶다는 욕구가 든 시점에서였다. 나는 내 정체성을 다시 찾고 싶었다. 나는 자주 나를 알고 싶었고 내가 되고 싶었지만, ‘국문과’ 학생이라는 정체성마저 끊임없이 흔들렸다. 나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걸까? 내 안의 생각에서 갇히는 느낌에 혼란스러웠다. 막막한 이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서는 익숙함에서 벗어나 나를 낯설게 만들어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 말은 국문학이라는 전공을 배우고 있는 나와 나 자신 모두에게 해당했다. 나를 낯설게 바라보는 일. 나는 나와 거리를 둘 필요가 있었고 익숙해진 한국어와도 마찬가지였다. 다와다 요코의 <목욕탕>에서 빼앗긴 혀를 찾는 주인공이 떠오른다. 말을 다시 배우기 위한 의미에서의 혀의 상실은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상실해야 다시 시작할 수 있기에.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낯설어지고 싶었다.


독문과 학회를 처음 알게 된 건 정말 우연한 계기였다. 국문과 학과 사무실 근처를 지나다가 독문과 사무실 벽에 붙여진 홍보물을 봤다. 종이에는 학회장의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고 이어서 되돌아가서 번호를 내 핸드폰에 저장하고 말았다. 독일에 대한 막연한 관심을 구체적으로 해보고, 한번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우물우물 문장을 곱씹어서 다듬고 문자를 보냈다. 청강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독문 스터디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독일 문학작품을 만난다. 사람들과 함께 토론하고, 작품을 읽으면서 궁금한 점은 독문과 교수님께 여쭤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문학 속에서 죽음을 만나다


처음 교실에 들어갈 때의 어색함과 떨림이 기억난다. 얼굴이 약간 달아올랐다. 붉어진 얼굴을 들고 교실을 둘러보았는데 뭔가 다른 교실과는 다른 구조였다. 책상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보며 ‘1학기, 잘 부탁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눈인사를 건넸다.


1학기에는 겨울 나그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모래 사나이, 베니스에서의 죽음 등 죽음을 다룬 작품으로 토론했다. 독일 문학작품에는 정말 다양한 ‘죽음’이 존재했다. 독일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많이 토론하고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작품에도 담아낸다고 한다. 그래서 작품들이 대부분 어두웠지만 그만큼 나를 돌아보는 사유의 시간을 마련해줬다. 앞만 보며 달려오기에도 바빴기 때문에 정말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질문인 ‘사람은 왜 사는가?’ 나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특히 피하고 싶은 ‘죽음’에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 의도적으로 피해왔다. 그러나 <모래 사나이>에서 주인공이 모래 사나이를 두려워하지만 결국 다시 마주친 것처럼. 사람은 언제나 마지막일지 모르는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렇기에 하루를 더 소중히 살아내자는 다짐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매주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열띤 토론이 끝나면 항상 그 자리에는 열기가 남았다. 나의 볼에는 아직 식지 않은 그 열기가 남아있었고, 교실 밖을 나오는 순간 볼에 닿는 차가운 느낌이 좋았다. 그 차가운 공기는 꼭 내가 낯선 곳에 낯선 이들과 텍스트 속에 푹 빠져있다가 나온 느낌을 주었다. 이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일까? 이때까지는 12월의 내가 이렇게 푹 빠져있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고등학생과 함께하는 독문학 학회


2학기 학회에는 큰 변화가 찾아왔다. 바로 지역사회 공헌 프로그램에 뽑히게 된 것이다. 그동안은 학회원들끼리 토론했다면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면서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만남도 가능해졌다. 우리 학교와 가까운 근처 고등학교 학생들을 학교로 초대하기로 했다. 학생들에게 작품을 읽어오라고 하기보다는 가볍게 영화를 감상하고 토론하기로 했다. 그렇게 독일 영화인 ‘파울라’와 ‘헤어드레서’로 총 두 번의 만남을 가졌다.


준비하는 과정은 다사다난했다. 학회장인 친구는 행사를 준비하면서 입술이 부르텄다. 학생들에게 나눠 줄 팸플릿과 스티커도 그림 솜씨가 좋은 학회원들이 직접 제작했다. 혹여나 고등학생들이 길을 헤맬까 봐 화살표 모양 안내문도 만들어서 학교 정문부터 언덕까지 붙였다. 날이 추워서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도 만남에 정성을 다한 이유는 ‘설렘’ 때문이었다. 고등학생과의 만남 자체가 설레는 일이었다. 그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5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설렜다. 그렇게 오픈데이 당일. 우리는 학생들과 함께 마주했다.


영화 파울라는 독일 표현주의 화가인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짧은 생애를 담은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함께 빈 종이에 단어들을 채워나갔다. 자유로움, 비극, 시대 등 다양한 단어가 등장했다. 여러 단어가 등장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들도 함께 터져 나왔다. 파울라를 통해 우리는 꿈과 꿈을 억압하는 것들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었다. 1876년, 독일에서 태어난 파울라의 일대기를 보면서 2019년 한국의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 활발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 참 이상적이었다. 배우고 성찰하는 공간인 ‘대학’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뿌듯한 경험이 됐다.


만남이 끝나고 대학생들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시간이 있었다. 복수전공 신청은 어떻게 하는지, 대학은 어떤 점이 좋은지 등등 학생들은 열정적으로 질문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의 고등학생 시절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었다. 대학에 오기 전에 얼마나 많은 꿈이 있었고, 와서 하고 싶었던 일이 얼마나 많았었는지가 떠올랐다. 점점 학년이 올라가면서 열정이나 학문에 대한 호기심이 떨어져 가던 시점이었는데 학생들을 보면서 반성의 마음도 좀 들었다.



-연대로서 존재하는 사람들


누가 나에게 책이 왜 좋아?라고 묻는다면 나는 “책 그 자체가 좋은 건 아냐”라고 말할 것이다. 책의 분위기를 사랑하고 책이 나에게 선사하는 사유의 시간을 사랑한다. 그리고 나에게 책은 매개체로서 가장 빛이 난다. 그래서 현재의 나는 내 속을 들여다보는 존재로서의 책, 나와 타인을 이어주고 나와 낯선 세계를 이어주는 존재로서의 책을 좋아한다. 문학이 삶에 조금이라도 연관 있지 않으면 읽을 필요가 없다는 독문과 교수님 말씀에 동의한다. 그래서 나는 영화도 음악도 책도 그림도 다 좋아한다. 나와 낯선 사람들을 이어주는 매개체니까.


물론 가장 좋은 건 사람이다. 사람들은 거대한 이야기책 같다. 그 속에 있는 내밀한 이야기를 듣는 게 좋다.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직접적인 감정의 전달. 그래서 살면서 최대한 많은 사람과 대화하고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장벽 하나를 세우고 있기에, 그 사이를 부드럽게 해주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의 학회에서의 텍스트는 장벽을 허물어주는 장치로 기능했다.


올해 2학기 학회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은 이야기를 나누다 울었다는 것이다. 10명 남짓한 사람들 앞에서 울기란 쉽지 않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울고 있는데 엄청난 위로로 다가왔다. 울음 또한 연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학회에서 우리는 텍스트를 통해 장벽을 조금 허물어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그 시간이 꽤, 마음에 들었다. 말해도 또 말해도 부족한 느낌. 그 느낌을 글로 담아내기 쉽지 않다.



-나의 변화 그리고 이후의 나날


학회에는 다양한 학번의 학생들이 있었다. 19학번부터 14학번까지 다양했다. 덕분에 문학작품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삶의 경험들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이미 독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선배도 있었고, 대학원을 독일로 갈 예정인 선배도 있었다. 그들은 독일에 관련된 무언가를 물어보면 늘 성심성의껏 대답해줬고, 학회 참여에서도 언제나 100%에 가까운 참석률을 보여줬다. 처음에는 강인한 인상의 선배들이 무서웠으나 정말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걸 느꼈다.


나는 저런 선배일까? 하는 생각에 속으로 반성도 좀 했다. 포기해버리고 마는. 나는 그런 선배가 아니었나 싶었다. 정작 내가 보고 싶은 선배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자기가 읽고 싶은 문장을 쓰고자 한다는 어떤 작가의 말처럼, 나 또한 그래야 한다. 나는 나의 후배들에게 사랑에 솔직한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국문과 학생’이라는 나의 정체성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돈의 문제로만 여겨진다. 문학은 밥 먹여주지 않고 국문과는 비전이 없다는 말을 숱하게 들어올 후배들과 동기들에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솔직하게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욕망하는 사람으로, 사랑하는 걸 자랑스럽게 소개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선배의 모습을 보여줄 거다.


1년의 과정이 끝나고, 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그건 바로 독일로 가보는 것이다. 2학기 학교에서 독일어 교양 수업을 시작으로 독일 문학뿐만 아니라 서툴지만, 독일어도 배우고 있다. 1년의 학회 경험을 통해 독일 문학작품과 내게 익숙한 한국문학 작품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점점 익숙해진 것들이 낯설게 다가왔다. 낯설어지는 경험. 이런 경험을 이어나가고 싶어 졌다. 독일로 떠나 언어와 나를 구성하는 세계의 낯섦을 마주하고 싶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내가 문학작품과 ‘한국어’에 대한 사랑이 계속된다면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려고 한다.


사랑이 빠져듦과 달라짐이라면 나는 올해 이미 푹 빠졌는지도 모른다. 달라진 부분이 무어라고 명확하게 말은 못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사랑에 빠졌다고 이렇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보면 그거 하난 확실히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다. 슬그머니 비집고 나오려고 애쓰는 숨길 수 없는 마음을 끌어안고. 글을 마친다.










*2019년도, 나에게 설렘을 건네던 음식점

홍대 수카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327-9 산울림소극장1층
https://www.instagram.com/sukkara_seoul/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나에겐 수카라의 음식이 슴슴하기만 했다. 카레도 오므라이스도, 디저트도 마찬가지였다. 평양 냉면의 매력이 슴슴한 맛이라고 하던데, 친구를 따라 자꾸 가다 보니 어느새 그 슴슴한 맛에 푹 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맛은 꼭 수카라를 가야지만 먹을 수 있었기에 자주 그리워하며 방문하곤 했다. 지금은 폐업했기에 방문하지는 못하지만, 음식과 함께 살며시 건네받은 설렘으로 인해 수카라를 떠올리면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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