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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Jun 23. 2021

애기 엄마의 면접 본 썰

이문재, <혼자의 넓이>(2021)

인도에서는 명상에 들어가기 전 절대 명상 상태에 진입하기 위해 집에 도착하자마자 집안일을 한다고 한다. 집에 도착하기 전부터 무엇부터 해결할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는 것부터 명상의 준비과정이라 했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글을 써내려 갔다. 절대적이었던 오늘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어, 나 면접 끝났어."

나와 면접 날짜가 같았던 선배 j의 전화였다.

"저 지금 앞이에요. 지금 봐요." 

j의 얼굴을 하얗게 질려있었다. 면접 잘 보셨냐는 질문보다는 나는 j를 안았다.


"고생하셨어요." 

선배보다 한참 후배인 내가 한 포옹은 선배에게 불쾌감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멈칫 j의 안면을 살폈다.

"우리 다음 주에 좋은 결과로 보자." 


면접장에 들어섰다. 임기제 공무원이라고 써진 테이블 위에 다섯 개의 이름표가 올려져 있었다. 고요한 대기실에 검고 하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핸드폰으로 무언갈 계속 적고 확인하고 있었다. 대기시간이 무려 2시간이나 지났다. 나도 그들처럼 핸드폰으로 예상 시나리오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대기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조금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 가방 속에는 시집 하나가 있었는데 이문재 시인의 <혼자의 넓이>라는 시집이었다. 고요함 속에 의자 끄는 소리, 밖에서 나는 새소리, 서걱대는 시집 넘기는 소리가 영락없는 도서관 풍경이었다.


<혼자의 넓이>에는 <노후>라는 시가 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동창과 곱창집에서 술을 먹다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내용의 시이다. 이 시에는 늙어가는 중년 남성들의 주담이 나온다. 우린 늙어서도 늙지 말아야 한다. 우린 늙지 않는 게 노후다! 일, 일, 일. 끊임없이 일을 하기 위해. 과연 면접 대기실에 어울리는 시였다. 누가 떨어지고, 누가 붙고 승패를 가르지만 우린 모두 늙지 말아야 하는 거다. 평생 늙지 않고 죽지 않을 것처럼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다섯 시가 되어서야 면접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긴장보다는 아이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걱정이 되었다. 여섯 시가 넘어서야 어린이집 하원을 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미안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뭐가 미안하세요. 다 조아를 위해서 한 일인데요." 아이와 남편과 함께 모쪼록 외식을 했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주저리 털어놓았다. 인생에 있어 두근거릴 일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까. 적당한 긴장은 좋은 것이라고. 남편은 말했다.


며칠이 지나고 오른쪽 눈두덩이에 다래끼가 생길 무렵, 최종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선배 j와도 점심 약속을 잡았다. 하루하루 매사에 글로 남길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또 이렇게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하루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투덜거렸던 순간도 눈에 난 다래끼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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