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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Sep 14. 2021

혼자 사는 사람들

홍성은 감독, <혼자사는사람들>,(2021)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창문을 다 열어놓고 바깥 풀벌레 소리를 듣는다. 고요해 보이기만 한 새벽이 지저귀는 풀벌레 소리에 소란을 맞는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이 소란이 멈추지 않을 것만 같은 착각에 휩싸인다. 오랜만에 아무에게나 전화하고 싶다. 불쑥 전화를 걸어본 게 언제였더라. 


회사 동료 J는 최근 술만 마시면 필름이 끊긴 채로 지인들에게 전화를 한다. J는 무려 세 시간 동안 회사 동료 D와 통화를 했다고 했다. 술의 힘을 빌려 전화하는 일도, 전화통이 뜨거워질 때까지 통화하는 일도 나로서는 갖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대뜸 전화를 걸어 오래도록 대화를 나누고 싶다. 


보고싶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다가 그냥 잠들어 버린다. 막상 문자나 전화를 보내도, 열이면 열이 "너 육아하느라 바쁜 줄 알았지"라는 말을 한다. 어떤 친구는 "오죽 힘들면 자기에게 연락을 했겠냐"라고 걱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힘들어서도 외로워서도 아닌데. 별 것도 아닌 일에 자지러지게 웃고, 아무 이유 없이 전화 걸고 전화 받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는데. 그게 그리울 뿐인데.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결혼 전에는 매년 명절 연휴 끝자락에 친구들과 모이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코로나도 코로나고, 가정과 육아 때문에 모이기 힘들어진 것이 사실이다. 마음이라도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명절을 앞두고 선물을 보내고 싶은 사람 몇 명을 추린다. 그렇게 선물을 달갑게 받을만한 사람들에게 추석선물을 보내곤 한다. 그마저의 용기도 쓰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SNS에 좋아요를 누른다. 돈 들이지 않고 시간도 크게 들이지 않으며 사람들의 안부를 전해 들을 수 있는 시대다.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 제목처럼 주인공은 혼자 사는 사람이다.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처럼 영화의 분위기가 어둡다. 무서운 장면이 나올 것 같이 음산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내 일상을 다큐로 찍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집-회사-집을 반복하는 회사원의 일상을 빼닮았다.


카드회사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진아의 하루는 수십 명과 통화를 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일상이지만 철저히 혼자다. 혼자 일어나고, 혼자 버스를 타고, 혼자 일을 하고, 혼자 담배를 피우고, 혼자 똑같은 식당에서 똑같은 음식을 먹고, 혼자 편의점 도시락을 데워 먹고, 혼자 잠이 든다. 진아는 혼자인 삶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진아는 복도에서 가끔 담배 피우는 옆집 남자가 옆집에서 고독사 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게 된다. 혼자가 편하다고 여겨왔지만, 실은 하나도 편하지 않았다는 것.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1인 가구 증가로 인해 개인이 겪어야만 할 파편화되는 관계의 고립을 세태 비판적인 자세로 유지하면서도, '함께'와 '더불어'를 외치는 권선징악적 메시지는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내가 이해한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이 주는 메시지는 다름 아닌 '혼자 잘 이별하는 법'이다. 가뜩이나 혼자인 사람에게 잘 이별하는 법이라니. 의아해 할 수도 있다. 자신의 마음과 감정에 솔직할 것, 충실할 것. 자신의 일상을 묶고 있던 감정을 내려놓을 것. 진아는 비로소 이 과정을 겪으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솔직할 것. 충실할 것. 내려놓을 것. 소리를 내어 읊조린다. 고요한 새벽 적막이 깨진다. 오늘은 누구와 어떻게 이별해볼까. 풀벌레 소리처럼 마음들이 옅게 새벽을 지저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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