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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Dec 02. 2023

출장, 그리고 트라우마(2)

목표: 무사귀환

토악질을 하다 홀로 숙소로 돌아왔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촬영팀과 나를 포함한 한국직원은 총 4명이었고, 현지 코디네이터들이 몇 명 붙었기 때문에 차를 두 대를 끌고 이동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촬영팀이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쯤, 나는 현지 코디네이터의 리더급 되는 사람과 같이 차를 타고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미 내 몸은 역대급 강도의 두통에 잠식됐었고 빨리 숙소에 가서 누워있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숙소에 돌아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청소 중이었다. 호텔은 아니고 방갈로 같은..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멘트 벽에 감옥 같은 쇠창살이 있었고, 화장실은 물을 퍼서 변기를 내려야 했던 걸로 보아 고급숙소는 아니었지만, 청소를 해 준다는 것에 1차로 놀랐고, 청소 중이라 당장 누울 수 없단 것에 2차로 놀랐다. 축 쳐져서 그늘 아래 의자 어딘가 앉아 멍 때리는데, 숙소 직원 중 한 명이 '아 유 씩?'(Are you sick?)이라 묻길래 예스.라고 간단하게 대답한 기억이 난다.


들어오자마자 가방에서 참 붕어빵을 꺼내 입 속에 와구와구 넣고 다시 약을 먹었다. 나는 약물 복용 관련해서는 주의사항에 매우 민감한 편인데 막상 타국에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아프니 진통제 복용 간격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통을 잠재우는 것'만이 오롯한 목표였다. 그렇게 약을 한 번, 두 번, 세 번 연달아 먹었을 때 깨달았다. 이 두통은 나아지지 않을 거란걸. 실제로도 그날 밤은 머리가 너무 아파서 끙끙거렸고 돌아온 촬영팀을 보러 갈 수 조차 없었다. 눈뜨면 보이는 시멘트벽과 희미하게 들어오는 불 빛, 벽에 기어 다니는 도마뱀, 그리고 시간 맞춰 들리는 이슬람 사원 기도소리만 귀에 맴돌 뿐이었다.


아팠을 때 찍었던 숙소 내부. 이 때는 자고 일어나고 다음 날이 되면 컨디션이 좋아질 거라는 아련한 희망이 있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일정에서 배제됐다. 아련한 희망은 사라지고, 결국에는 '이거 편두통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가 현지 코디네이터(위에서 말한 리더)를 따라 현지 병원에 방문했다. 머물던 곳이 발리라면 실로암 병원에 갔겠지만(*인도네시아 최대 병원으로 우리나라의 대학병원과 비슷하다 보면 되겠다.) 나는 저기 시골 촌구석 중에서도 가장 촌에 있었기에 클리닉이라 불리는 병원에 갔다. 일단 응급실로 보이는 베드에 누우랬는데, 베드 위에는 누군가의 피(...)가 있었지만 너무 아파서 이 피 좀 닦아달라는 말조차 못 하고 대충 옆에 휴지로 슥슥닦고 발랑 누웠다.


들어올 때 간호사에게 영어로 대충 증상을 설명했는데 알아들은 건지 모르겠다. 여하튼 현지인과 같이 왔으니 대충 잘 전달했겠지 생각하고 누워있는데 갑자기 구역질이 났다. 화장실이 어디냐 물었더니, 양철통(주사기를 놓는 넓적한 양철그릇)을 주더니 '히어, 히어'(here, here)라고 해, 에라 모르겠다. 그냥 거기다 토를 했다. 그리곤 내 팔에 노란 액체를 주입했는데 당시 나는 그 링거가 진통제라 생각하고 환희에 휩싸였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비타민 수액 같은 거였다. 그렇게 낯선 곳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나 혼자 외국인이었다.) 천장만 보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가 바뀌었다. '편두통 극뽁~!'이 아니라, 무사귀환. 내 발로 한국 땅을 밟겠다는 비장함이 꿈틀거렸다.


병원을 2-3일 다녔지만 차도가 없었다. 병원에서 따로 준 약이 있었는데,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귀국 후, 시간이 지나고 짐정리를 하다 든 생각인데 인도네시아 약이 우리나라보다 약해서 잘 안 듣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무사귀환이라는 비장한 마음을 품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마지막 날에는 비척거리면서도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랩업 미팅에 참석해 발표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귀국을 앞뒀기에 가능한, 또 어떻게 보면 체면이라도 세우려는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그렇게 집에 왔다. 돌아올 때도 두통이 있어 비행기에 꼿꼿하게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감사하게도 내 옆자리가 빈자리라 W모양으로 몸을 꼬부린 채 옆으로 누워서 왔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집이 아닌 평소 다니던 병원으로 직행했다. 선생님께 증상을 설명하니 열사병 같다 했다. 열사병이건 나부랭이건 나는 아직도 머리가 미칠 듯이 아프다 호소하니 일단 진통주사를 맞고, 링거를 하나 맞으랬다. 이제 다 끝났다 생각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어차피 '내' 출장은 망했고, (촬영팀은 별개라 촬영을 다 진행하긴 했다.) 자포자기 심정이었다. 한국에 와서 치료를 받은 것만으로도 만족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뜨신 물로 샤워를 하고 푹 자고 일어났음에도 머리가 아팠지만, 곧 나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된 두통은 계속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소리가 2개씩 들리는 이명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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