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란 게 되게 대단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외골수'라는 말을 아세요? 저는 '외곬수'인 줄 알았더니 '외곬'은 사물에 사용하는 단어이고, 사람에게 사용할 때는 외'골수'라고 쓴다 합니다. 여하튼, '외골수'는 '한 곳으로만 파고드는 사람'을 의미해요. 좋게 말하면 저렇고, 나쁘게 말하면 하나만 파는 고집불통일수도 있겠네요.
저는 상당히 외골수적 기질이 있습니다. 특히 음식과 취향에요. 한 음식에 빠지면 정말 질릴 때까지 먹습니다. '질릴 때'라는 기간은 제 몸이 정해요. 어떤 해에는 비빔밥에 빠져, 모두가 다 학을 떼는 비빔밥집에 혼자 가서 먹던 날도 있었습니다. 요즘처럼 아주 더운 날도, 살을 에는 추운 날에도, 20분을 걸어가서 비빔밥을 먹고 나오면 기분이 얼마나 좋던지.
음악도 그렇습니다. 하나에 빠지면 몇 년 동안 그 노래를 들어요. 말하기 좀 머쓱하지만, 요즘에는 동방신기 노래에 빠졌습니다. 제 기억에는 작년부터 빠졌던 것 같아요. 동방신기가 노래를 참 잘하더군요. 특이하게도 '아카펠라' 형식의 노래가 꽤 있는데 그 절묘한 화음과 음색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말로가 아쉬운 보이그룹이지만, 당시의 음색과 가창력은 당대 최고의 보이그룹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최근 회사동료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고로케, 나는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어요. 어중이떠중이. 그래서 이 회사에서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요.' 그 당시에는 '저도 그래요.'라고 대답했지만, 집에 오면서 진득하게 생각해 보니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저는 요즘 우동에 빠져있고, 요즘이 아니라 약 2년 됐습니다만. 아직 안 질렸어요. 이 정도면 우동을 진짜 사랑하는 사람 아니겠어요? '우동'이란게 취향이 되기엔 가볍고, 하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도 저의 취향이잖아요. 취향이란 게 되게 대단하게 '나는 나이키 브랜드를 사랑하고요, 그의 이념과 철학, 블라블라, 어쩌고 저쩌고, 마케팅에서, 디지털에서 어쩌고, 대단하고 짱먹어.' 라고 할 필요 없는 거예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뭘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본인의 취향 없음을 깨닫고 당황합니다. 저는요, '뭘 좋아하세요?'라고 누군가 갑자기 물으면, 열 중에 아홉은 바로 대답 못 할 거라 생각해요. 강백호가 소연이의 '농구,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떠올리며 '네, 좋아합니다.'라고 명확하게 대답한 것도, 소연이가 '농구'라는 주어를 명확하게 넣어서 물었기 때문일 거예요. (물론 작품 내에선 중어적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지만요.)
그러므로 본인의 취향 없음에 낙담하지 말고, '내가 뭘 좋아하더라?'라고 한 번쯤 생각해 보세요. 그게 음식이 돼도 좋고, 브랜드가 돼도 좋고, 뭐가 돼도 좋습니다. 저는 요즘 우동을 진짜 진짜 진짜 좋아하고, 수박을 미친 사람처럼 좋아해요. 그리고 베르나르 뷔페라는 화가를 좋아합니다. 전시 보고 빠졌어요. 이게 2024년 8월의 제 취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