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살아있는' 미우라 켄타로를 마주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베르세르크 전시'(大베르세르크展)에 다녀왔습니다. 베르세르크 만화는 애니메이션으로는 봤는데요, (황금시대인가, 그 부분만 봤습니다.) 만화책으로는 '로스트차일드'편까지 보다가 중단했습니다. 제가 생각보다 심신미약자라서요.
아니, 정말로 베르세르크 만화책을 본 날은 꿈자리가 너무 사나운 거예요. 솔직히 황금시대 편은 그냥 중세시대의 권모술수나, 인물들의 세밀한 감정묘사가 탁월해서 봤는데, 마물들이 나오기 시작하니 더 폭력적이고, 자극적으로 만화가 전개되더라고요. 만화책을 읽고 나면 기분도 찜찜하길래 '이럴 거면 왜 보냐'싶어 중단했어요.
그런데 우연히 원화 전시를 알게 됐습니다. 미우라 켄타로는 21년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는데요,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장인정신'에 대해 한 번쯤 들어보셨을 거예요. 완벽을 추구하는 작가가 모든 걸 한 땀 한 땀 손으로 그려냈다는 걸요. 그래서 '휴재의 왕'으로 조롱받기도 했지만, 그의 만화를 보고 있자면 그의 그림에 대해 입을 댈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완벽주의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하튼 22년 일본전시 이후, 국내는 처음이라기에 방문했습니다. 그의 원화를 가까이서 한 번 꼭 보고 싶었거든요. 어중띤 시간에 갔더니 손님은 저와 외국인 남성 단 둘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사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었어요. 원화는 아예 촬영이 불가하고 각 연대기 존에 있는 피규어만 촬영이 가능하더라고요.
중학교 때는 만화부에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웹툰 이런 거보단 종이만화 시대였으니까요. 저도 종이 원고에 열심히 만화를 그리고, 스크린톤을 잘라 붙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마주한 종이 원고가 이렇게 컸나(a4사이즈 같았어요.) 싶은 생각도 들고, 펜 선 밑에 보이는 연필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스크린톤의 긁기 등을 보고 있자니 입이 떡 벌어지더군요. 정말 '살아있는' 미우라 켄타로를 마주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원고지 밑 인쇄되지 않는 부분에 그림 연습을 한 흔적, 펜 굵기를 조정한 흔적, 컬러의 경우 색상 테스트를 한 흔적, 모든 흔적이 있었어요. '와, 이런 게 원화구나.'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미우라 켄타로가 '이 그림을 그릴 땐 어떤 모습으로 있었을까. 계절은 여름이었을까? 밤이었을까 낮이었을까?'등 작가 삶에 대한 여러 상상도 했습니다. 시력 0.3인 사람처럼 원화 코 앞까지 다가가 모든 그림을 샅샅이 살펴봤어요.
원화를 보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가와 친밀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만화가 이노우에 타케히코나, 야자와 아이가 원화 전시를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만화가들은 원고 원본을 다 보관하나?라는 궁금증도 생겼습니다.
뒤로 갈수록 모르는 내용이 나왔지만, 만화책을 앞부분만 봤어도 그의 그림을 보기엔 충분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작품들이라 생각하니 작가 오리지널 완결을 못 본다는 생각에 조금 씁쓸하긴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