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생에도 너의 남편과 너의 아빠로...
내가 지금의 아내를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약 천일 전, 서로의 조상님들이 엮어주시듯 우리는 그렇게 무언가에 이끌려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렇다고 '덜컥'의 의미는 아니었다.
사실 나는 요새 새로운 신조어 중 하나인 '돌싱'이다. 나름의 높낮이가 있었던 인생인 만큼 '기준'이란 게 명확했고 지금의 아내는 그 허들을 쉽게 넘은 사람일 뿐이었다.
자연스레 우리는 축복과 같은 사랑의 결실을 보게 되었고 그 축복은 우리의 삶을 단아하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결혼할 때 아내에게 정말 자신 있게 뱉은 말이 있다. 세상 모든 여자가 부러워할 만한 그런 여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주겠노라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가장 최대의 조건은 정말 어려운 듯하다. 앞서 말했듯이 '돌싱'이긴 하지만 제대로 된 결혼생활을 해보지 않았기에 무의미한 경력이 다분하다. 그래서 아마 저런 패기가 겁도 없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 패기는 나의 하나뿐인 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가 싶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뭐든 잘해줘야지, 해달란 건 다 해줄 거야, 친구 같은 아빠가 돼야지" 하며 세상 좋은 상상을 했던 나였지만 행복한 현실 앞에서 가끔 나는 계산적이고 엄격하며 수직적인 그런 나조차도 상상하기 싫은 그런 아빠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뭐든 잘해주고 해 달란 건 다 해줄 거야"라고 했던 생각은 경제적인 이유를 들먹이며 "그게 꼭 필요해?"로 바뀌었고 "친구 같은 아빠가 돼야지"의 마음은 아직 말도 못 하는 아이의 예의정립을 거론하며 "어디 아빠한테"라는 꼰대의 혀를 가지게 되었다.
참으로 이걸 보며 제일 답답해했을 건 아내의 몫이다.
딸의 성장에 있어서 아빠와의 관계는 상당히 중요하다. 비록 내가 육아 관련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여러 매체로부터 보고 들은 귀동냥 덕에 한 가지 사실은 체득했다. 초반 아빠와의 관계가 특히 딸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오할지 모른다. 마냥 어렸을 적엔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은 뭔가 내가 되게 그럴듯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말들이 썩 달갑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 말은 즉슨 전적으로 나로 인해 상태가 안 좋아질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기에 아이에게 대하는 내 몸가짐과 마음가짐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뱉던 말들을 주의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대한민국 도로교통 환경에서는 주체가 안 되는 경우가 더 많긴 하다.
누구나 사람은 처음이 존재한다.
처음이라는 건 시작과 동시에 과정을 통과한다.
그 과정을 넘어서야 스스로 생각하는 목표치에 조금이나마 다다를 수 있다.
나는 딸과의 이상적인 모습이 있다. 그걸 혹자는 로망이라고도 한다. 마치 아들 있는 집에서는 '아들과 같이 사우나 가서 서로 때 밀어주기'와 같이 나도 그런 비슷한 로망을 수줍게나마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이상들을 이상으로만 끝내지 않으려면 나의 결단과 끝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처음이라는 의미로 면죄부는 주어지지 않는다.
내가 이번생에 누군가의 남편과 아빠로서 처음이라면 그들 또한 나의 아내와 딸이 처음이기에 최고만 주려고 하기보다 적어도 어제보단 나은 최선의 것을 주기 위한 한 겹씩 쌓아가는 노력을 한다면 시간도 그 정성을 높게 사서 허망하게 지나가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