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모님 생각이 날까
생일은 나이가 듦에 따라 의미가 작아지는 것 같다. 작아진다는 의미가 딱 맞다.
어렸을 때만 해도 생일에는 누구를 초대할지, 어떤 선물을 받을지, 생일잔치는 어디서 보낼지, 엄마가 무슨 음식을 해줄지 그 당시 중요한 몇 가지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냥 하루가 온전히 이슈없이 지나면 그만큼 감사할 일이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힘든 취준기간에는 마음의 여유와 금전적인 여유가 없던 시기기에 주위 사람들보단 정말 친한 친구들과 가족들의 축하가 소중하게 다가왔던 때였다. 물론 난 그때도 연애를 하긴 했지만 그 친구의 축하는 그다지 와닿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안하다.)
그만큼 내가 어렵고 기가 죽어있던 시절엔 친구와 가족들의 지지와 응원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던 게 아닐까?
긴 터널과 같던 취준 기간이 끝나고, 힘들게 취업 문턱을 넘어서고 나니, 그곳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워낙 어려서부터 사람을 좋아하고 외로움을 잘 느끼는 터이기도 하고 부모님은 형제가 없는 나에게 형제가 없는 만큼 좋은 지인들을 많이 만나라고 항상 일러 주신 덕인지 내 옆은 사람들로 끊이지 않았다.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타지에서 내 외로움을 채워주기엔 충분했으니.
점점 주말에 집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고 가족들보다도 회사 지인을 더 많이 보게 되었다.
고단한 사회생활이었던 터라 어쩔 수 없는 순리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어느덧 시간이 지나 내 짝을 만나고 금쪽같은 내 새끼까지 태어났다.
이제는 내가 '막내'인 가족 말고도 내가 '가장'인 나만 보고 기다리고 나만 믿는 가족이 생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본가에는 기념일, 명절 때만 발걸음을 향하고 있었다.
이 현상은 나뿐만이 아니다. 아내도 똑같이 겪고 있다.
이는 정상적인 부모가 되어가는 현상이다.
어느 날 우리 가족과 장모님이 카페를 갔다.
사실 장모님이 오실 때는 내가 주말에 일이 있고 아내도 결혼식에 갑자기 가야 할 때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을 때 급히 요청드리지만 늘 그랬든 흔쾌히 받아주신다.
(물론 이게 당연하지 않은 것이라는 걸 잘 알기에 항상 감사할 따름이다.)
그때 카페에서 장모님께 슬쩍 여쭤봤다
"멀리서 기차 타고 오시는 거 안 힘드세요?"
장모님은 내 물음에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의아해하시고는 곧 활짝 웃으시며
"하나도 안 힘들어, 축복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오는 건데 뭘~ 너희도 축복이가 너희만 보는 시기 얼마 안 남았으니 실컷 즐겨! 이제 친구가 1순위가 되는 시기 금방 올 거야"
나는 손사래 치며 "에이 한참 멀었죠, 근데 축복이에게 진짜 그렇게 친구가 1순위가 되면 저희를 안 찾을까요?" 설마 설마 하면서 내 딸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자만과 오만이 섞인 마음이 녹아있는 내 물음이었다. 그리고는 바로 장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내게 정말 와닿았다.
"근데 뭐든 어때 더 보고 싶은 사람이 가면 되지"
이게 맞다.
'누가 보러 가고 누가 보러 오는 게 무슨 상관이야' 하며 나이 들게 되면 그땐 나도 힘든 사지를 이끌고 내 자식 곁으로 가겠지.
사실 지금은 '아니 그래도 내가 너 아빤데! 자주 보러 와야지!'라는 옹졸한 초보아빠의 마음을 헤아려줄 만큼 축복이가 빨리 컸으면 좋겠다가도
너무 빨리 크면 그만큼 내손을 빨리 떠날까 봐 두렵기도 하다.
축복이가 첫돌이 되던 때 실로 정말 감격스러웠다
내 아이가 이렇게 세상에 태어난 지도 1년이 지난 그 간의 노고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잘 버티고 여기까지 와준 축복이가 대견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축복이 첫 생일이 지나고 내 생일이 다가왔을 때 문득 우리 부모님도 내 생일에 이렇게 감격스러워하셨을걸 생각하니 목이 메어왔다.
이렇게 나이가 들면서 내 생일인데도 부모님 생각이 나는가 보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그리운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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