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꼬리잡기

가을 3종세트(억새, 단풍, 은행)

by 김보람


육지의 가을은 늘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데, 제주의 가을은 조금 다르다.

색이 짙어지기도 전에 바람이 잎을 먼저 떨궈서 단풍잎엔 구멍이 숭숭 나 있고,

억새밭은 언제 피었는지도 모르게 얄쌍해져 어느새 겨울을 맞이한다.

가을이 오는구나 싶다가도 훅 지나가버리는 이 느낌이 늘 아쉽다.

아니, 아쉽다는 말로는 부족해 서운할 지경이다.


그래서 이맘때면 나는 매년 늦가을의 꼬리를 붙잡아보겠다고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조용한 눈치싸움을 한다.

계절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데, 뭐가 그리 바쁜지 꽃 피고 단풍지는 그 짧은 찰나를 자꾸 놓친다.


그런 마음이 있어서였을까.

올해 나는 이상하게도 가을을 여러 번 붙잡았다.


가장 먼저는 아이들과 함께 걸었던 억새밭.

딸아이 안과 진료 때문에 제주시 병원을 다녀오던 날,

새별오름의 어깨쯤에 노을이 걸쳐졌다. ‘지금이다!’

차 안에서 골아떨어진 아이들을 깨워 “빨리! 해 진다!” 하고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엄마의 이런 P스러움에 아이들은 진저리를 치면서도 노을 진 억새밭 앞에서는 얌전히 인증샷을 찍어주었다.

그 찰나가 고맙고 행복해서, 푸드트럭에서 핫도그를 사 손에 쥐여주고 우리는 그렇게 가을 한 조각을 손에 쥔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 며칠 뒤에는 엄마와 함께 바다 보이는 카페에 앉아 일요일 오후를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다.

엄마는 늘 그렇듯 카페에 오면 자리를 고르기 전에 창밖 풍경부터 확인한다.

나는 커피 향만 맡아도 기분이 풀리는 사람인데, 엄마는 풍경이 열려야 마음이 열리는 사람이다.

그날도 창가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 엄마가 조용히 말했다.

“올해는 단풍구경 한 번 못 가보고 가을이 가네….”

그 말이 유난히 깊게 내 마음에 박혔다.

엄마가 편찮으신 뒤로, 매년 계절마다 달라지는 엄마의 컨디션을 느껴서인지 계절 하나하나가 더 아쉽고 조심스러워졌다.

그때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지금 가시죠, 어머니!”

우리는 “정말?” 하고 웃었고, 어느새 차는 숲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단풍은 이미 꽤 비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가을은 끝물일수록 더 따뜻하다.

바래가는 잎 사이로 “그래도 예쁘다~” 하고 말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그날의 가장 선명한 색이었다.


그리고 오늘.

여동생 MRI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갔다가 잠깐 짬이 생겨 병원 근처 은행나무길을 걸었다.

갑자기 몰아치는 비바람에 포기하려다, “그래도 오늘 아니면 안 돼!”하며,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사이로 뛰어들었다.

발밑은 폭신한 노란 잎으로 깔려 있었고, 엄마는 또 해맑게 웃으며 특유의 소녀감성을 내뿜었다.

“아, 나도 꼭 엄마같이 귀엽게 여물어가야지” 다짐하며, 단풍이 끝나는 자리에서 또 하나의 가을을 누렸다.


그렇게 억새, 단풍, 은행나무까지.

나는 올해 가을의 3종세트를 거의 완주하듯 누렸다.

바쁘게 살다 보면 계절이 바뀌는 것조차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지만, 올해처럼 틈틈이 가을을 붙잡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엄마의 영향일 것이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계절마다 나를 데리고 나갔다.

“이 계절은 지금만 볼 수 있어.”

엄마는 늘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 말을 진짜로 믿었다.

봄에는 꽃을, 여름에는 물소리를, 가을에는 빛의 색을, 겨울에는 차가운 공기를.

엄마는 계절을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으로 느끼게 해 준 사람이다.

돌이켜보면 그 유년의 감각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아이들과 억새밭을 걷고, 엄마와 단풍의 막차를 타고, 동생과 은행나무길을 걸으며.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서 배운 그 감각을 따라 계절을 향유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남편도, 아이들도 자연스레 그 길을 함께 걷게 된 것이 새삼 고맙다.


가을이 조금 아쉬웠던 이유가 있다면, 그래서 더 붙잡고 싶었던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올해 여러 번 붙잡은 ‘늦가을 꼬리잡기’ 덕분에 그 아쉬움도 잦아들었다.

가을은 그저 사라져 버리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가까운 곳에서, 가만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겨울은 끝자락이 아닌 절정의 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기를.

이번 겨울에도 계절을 향유하는 여유를 간직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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