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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홍보인

흘러흘러 여기까지 왔어요

by LBR
문명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어쩌다 문명인’ 고갱



언젠가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을 읽다가 고갱을 소개하는 챕터에 있던 이 문장에 감탄하며 밑줄을 쫙쫙 그었다. 이거 잘 써놨다가 어딘가에 살짝 바꿔서 써먹을 수 있겠는데 싶어서였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벤치마킹할 만한 카피나 콘텐츠가 없을까, 월간 계획서에 넣을 만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벼락처럼 안 떨어지나 머리를 싸매는 공대 출신 홍보인이다. 문명에서 벗어나려 머나먼 타히티까지 갔지만 결국 어쩌다 문명인이 된 고갱이 저만의 사정이 있었던 것처럼, 나 역시 나만의 사정이 있다. 아무리 벗어나려 발버둥 치며 다른 길을 기웃거려도 결국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어렸을 적 꿈은 화가였다. 우리 딸이 책도 좋아하고 색종이도 접기도 좋아하고 그림도 곧 잘 그리는데 수학 문제 푸는 거 보니 공부 쪽은 영 아니네 싶었던 우리 엄마는 일찍이 딸의 예고 입학을 준비하셨다. 하지만 그 딸은 늘 그리던 그림 말고 엉뚱한 꿈을 꾸고 있었다. 당시 심취했던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과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이 화근이었다. 하필 그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모두 ‘신방과(신문방송학과)’ 출신이었다. 나는 그만 이 정도면 운명이 아닌가 하며 신방과를 졸업한 언론인이나 카피라이터, 홍보인이 내 길이라 굳게 믿어 버렸다. 그것도 이미 너무 강하게 꽂혀버린 나머지 다른 미래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인문계에 진학해 국어와 미술'만' 사랑하던 문학소녀는 결국 수포자가 되어 언어 영역을 제외한 전 과목의 수능 점수를 곱게 말아먹었다. 때는 교차지원 열풍이 강하게 불던 시기였다. 일찍이 컴퓨터 타자 속도가 빠르고 관련 자격증을 어린 나이에 취득했던 탓에 동네에서 '컴퓨터 잘하는 애'로 오인받았던 나는 그나마 잘 나왔던 언어 영역 점수와 사탐 점수로 어찌어찌 컴퓨터 공학도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학 생활은 처참했다. 적성 검사 그래프에 1도 안 나올 대학 수학, 물리, 화학, C언어의 늪... 4년간 컴퓨터의 언어를 해독하고 F를 면해 졸업이라도 하기 위해 팔짜에 없던 물리 공식을 달달 외웠다. 설상가상 졸업을 하려면 공학 인증까지 해야 된다고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외제차 한 대 값의 4년제 졸업장을 취득했다.


이 비싼 전공으로 먹고 살진 못하겠구나 하는 결론은 이미 오래전에 내려졌다. 그럼 앞으로 난 뭘로 밥벌이를 하고 살까. 어렸던 나는 무작정 내가 가고 싶었던 분야로 무모하게 뛰어들었다. 한 신문사의 단기 인턴직으로 들어가 온라인 마케팅이란 걸 배우며 혼자 블로그와 카페도 만들어 보고, 웬 냄비 공장 대표를 인터뷰하겠다고 혼자 주말에 KTX 타고 김해까지 내려가는 일도 불사했다. 어리고 무지했기에 지불 가능했던 열정 페이였다. 그 날 냄비 공장 사장님에게 김해의 광어회를 얻어먹으며 떠올렸던 10년 뒤의 내 모습은 지금과는 딴판이었다. 정확히 지금의 내 나이! 그 시절 내가 예상하던 나의 모습은 둘 중 하나였다. 새로운 가정을 제대로 꾸렸던가, 내 분야의 탑을 찍은 당당한 커리어를 가졌던가. 패기 넘쳤던 어린 보람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둘 중 하나도 아니어서 미안.


지금도 '업'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며 백만 개의 물음표를 떠안고 산다. 어리고 패기 넘쳤던 그 시절로부터 글 몇 줄로는 다 담기 힘들 정도로 다사다난했던 세월이 흘렀다. 열정 페이를 지불하며 처음 배웠던 온라인 마케팅과 글 쓰는 일을 프리랜서 형식의 알바로 병행하며 임원 비서, 복합 문화공간 매니저 등 숱하게 많은 일을 거쳐왔다. 내가 이런 은혜를 입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감사한 분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빌런들을 겪어내면서.


20대의 막바지, 나 홀로 목숨 걸고 처음 떠났던 파리 여행, 마레 지구의 한 카페에서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약처럼 들이키며 문득 이런 결심을 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해보고 싶었던 분야에서 정식으로 일해보자고. 그 결심 이후로 전공자들보다는 다소 늦은 나이에 마케팅, PR 업계에 정식으로 발을 들여 일을 시작했고 현재의 나는 PR회사의 이대리로 출근길을 걷고 있다.


아무리 스스로 원했을지라도 현실은 냉혹한 모습으로 나를 채찍질하며 제법 센 강도로 훈련시킨다. 이 업의 가장 큰 함정은 옆에서 봤을 때 세상 재미있어 보이는 일이라는 점이다. 나 역시 뭣모르던 어린 시절, 브라운관 속에 비춰졌던 신방과 학생들과 방송인들, 홍보인들이 보여줬던 세상 멋있고 재밌어 보이는 이미지에 홀라당 빠져 지금 이 자리에 앉아 내일의 출근과 일 폭탄을 걱정하고 있다. 밖에서 타인의 삶이라고 생각하며 볼 땐 유난히도 매력적이던 이 길이, 지금 나에겐 현실 그 자체라 온전한 아름다움으로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그래서 끄적이기 시작했다.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듯한 지금 내 현실의 기록. 힘든 것 만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짧은 위로라도 건네기 위해. 그게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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