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서울 나들이
누구나 힘든 일은 피하고 싶어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힘들다고 판단되는 일은 부딪혀보기 전에 미리 피하곤 했다. 그러한 성향은 내가 성인이 되어 아이를 갖는 일에서도 드러났다. 지난번 글 <한 사람에게라도 내 이야기가 닿을 수 있다면>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힘든 것을 맞닥뜨릴 용기가 없어 임신을 미루고 미뤘다. 어찌어찌 출산은 했는데 육아를 할 때도 웬만하면 어려운 일은 피하려고 항상 노력해 왔다.
어제 토요일에는 머리를 하러 갔다 왔다. 나의 오랜 지인이자 멋진 동생인 재은이가 미용실을 확장 오픈하여 머리도 할 겸 구경도 할 겸 다녀왔다.
세 식구가 같이.
사실 원래 계획은 친정 엄마에게 도영이를 맡길 생각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엄마의 출근으로 어쩔 수 없이 도영이를 데려가야만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머리를 하는 것을 미룰 수가 없었다. 남편과 상의한 끝에, 우리는 도영이를 데리고 서울 연희동 나들이를 가기로 결정했다.
일단 클리어해야 하는 미션은 이러했다.
✔️ 남편 커트 및 펌: 약 1.5시간 소요
✔️ 나 커트 및 뿌리 염색: 약 1시간 소요
✔️ (가능하면) 점심 해결
최소 2시간 반 정도가 소요되니, 도영이가 많이 지루해하면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 가서 놀고 와야지 생각했다. 또한 점심을 먹기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면 그냥 집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내 걱정이 무색하게 도영이는 너무 잘 있었다. 미용실에 우리처럼 아기를 데려오는 손님이 꽤 있어서 직원분들이 이 상황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셨다. 내가 머리를 할 때는 남편이 도영이를 잠깐 보고, 남편이 할 차례에는 내가 보는 식으로. 아주 매끄럽게 우리의 첫 번째 두 번째 미션을 잘 클리어할 수 있었다.
내가 머리를 다 하고 나서, 도영이가 지루해하길래 아기띠를 하고 사러가 쇼핑센터에 구경을 갔다. 시원한 마트에서 돌아다니자 노곤했는지 도영이는 내 등에서 잠이 들었다. 할렐루야를 외치며 미용실로 갔다. 남편의 머리 손질이 끝나 있었다. 우리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옆에 라이라이(내가 정말 좋아하는 중식당)에 갔다. 아기가 잔 틈에 먹는 갓 한 가지 튀김과 간짜장은 (말해 뭐해) 너무나 맛있었다.
먹는 도중에 도영이가 잠에서 깼지만 남편과 교대로 먹으니 나쁘지 않은 외식이었다. 그리고 집 가는 차 안에서 예상치 못한 똥파티가 열렸지만 10개월 차 엄마답게(?) 당황하지 않고 해결한 후 무사히 집에 도착하였다.
막상 부딪혀 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던 미용실 나들이. 양가 부모님께 맡기지 않고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서 더욱 뿌듯했다.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이었지만, 결론은 할만했고 우린 해냈다.
내가 생각하는 어려운 일은 힘들겠다고 지레짐작만 할 수 있는 것이지 겪어 보기 전에는 그 실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내 인생에 있어서 꽤나 큰 교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어려워 보이면 미루거나 피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발전이 없고 쳇바퀴 같은 인생이 반복되기만 한다.
육아 휴직이 끝나가는 이 시점에 선택의 순간을 마주했었다. 돌도 안된 도영이를 12시간씩 어린이집에 맡기고 복직할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래서 결국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나의 고정 수입이 없어질 것을 대비해 아이를 돌보며 할 수 있는 사업의 길을 벌려볼 것인지, 아니면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아껴가며 생활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나는 마주해보지 않고서는 모를 그 어려움을 한번 겪어보기로 했다.
주변에서 영어 과외를 해보라는 얘기가 있었지만, 나는 항상 거절해 왔다. 그 정도의 실력도 아닌 것 같고 가르치는 데에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사실은 준비할 것도 많고, 에너지가 많이 소비된다는 이유로 피해왔던 것이다.
최근에 영어 과외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평소의 나였으면 또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이번 기회가 단순히 아르바이트처럼 단돈 몇만 원을 벌고 끝날지도 모르지만 이전과는 다른 발전의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어려움을 마주하고 결국에 해냈던 나 자신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