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에 창촌리에 첫눈이 왔다. 이곳의 계절은 봄부터 보았기에, 이 겨울은 매일이 처음이다. 짙어지는 계절의 빛들, 다 떨궈낸 그것에 날 것 그대로 맞는 차가운 기온이 '지금' '이곳'을 더 여실히 느끼게 한다.
오늘은 큰절의 계묘년 동안거 결제일이었다. 오전 9시에 계율을 읽는 포살(布薩)로 시작해 오후 1시에는 결제 법문이 있었다. 코로나 시절에 서울에서 혼자 동안거를 해보기도 했었다. 한 해의 일을 마무리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나 외부 만남을 줄이고, 머물며 쉬고 생각하는 시간을 늘렸다. 이제 생각해 보니, 엉성하기는 했어도 그때 했던 '도심형 동안거'의 힘으로 이곳 창촌까지 오게 된 듯하다. 올해는 승보종찰의 100여 명의 스님들을 가까이 뵈면서, 겨울 3개월을 보내게 되니 또 내게 어떤 힘이 될지.. 그 의미도 기대도 설렘도 더 깊다.
붓다는 '에히파시코(ehipasiko)', 와서 보라고 가르쳤다. 내가 불교 경전에 매료된 것도 스스로 마음의 힘을 기르게 하는 방목형 가르침이 좋았기 때문인데, 그것에 이르기 위해 '내가 가서, 내가 보게' 한다. 어떤 진리도 체감하지 않으면 잘 정리된 글일 뿐이다. 로컬 연구에서도 문헌자료 속을 헤매다 현장에 나가 직접 보고 만나면, 자료가 더욱 생생해지고 명쾌해진다. 진행 중인 충북 공공형 임대기숙사 정책 연구건도 음성, 진천, 청주의 산업단지 내에 실제 기업 기숙사를 가보고 근로자들을 만나고 나서야 연구진들 머릿속의 그림이 하나로 모아졌다.
창촌리 연구실을 열고, 여러 사람들이 내게 하고 있는 일에서 더 멀어지는 게 아니냐 걱정한다. 실제 클라이언트와의 물리적 거리는 멀어지고, 프로젝트 팀원들과도 대면 시간이 거의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게다가 동안거라는 멈춤의 시간을 갖는다 하니, 경기도 어려운데 정말 괜찮겠냐는 시선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가 욕망하는 것, 나의 가치관, 나의 일 뿐만 아니라 '지역'도 더 직면하고 명료하게 알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 더 신선도 있는 더 유니크한 것들을 건져가야지. 그것을 보는 데 겨울의 시간이 충분할지 그것이 더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