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지나, 초겨울의 입성을 체감한다. 아침 7시 전에는 집 앞 창촌초등학교 운동장에 가서 걷는데, 엊그제부터 손끝이 시려왔다. 나뭇잎들도 같은 처지인 듯, 가장자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다. 이제 겨울의 시간이다.
Time Storage를 만들어 보겠노라 했던 창촌연구실은 근 한 달간 이사 노동이 이어지고 있다. 서정적인 시골에서의 시간이 아니라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몸씀으로 몸살이 날 정도다. 게다가 프로젝트해내랴 공사 보수하랴,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고 있다. 와중에 누군가 ‘밥 먹자' 해서 동네를 벗어나게 되면, 비로소 촌락의 낮풍경들을 본다.
계절의 변곡점을 느낀 순간도 있었는데, 그러니까.. 가을이 완벽하게 영글었다고 할까. 이제 정말 꽉 차서, 다음으로 갈 거야.. 하는 듯 그렇게 계절이 채워지고 비워지는 풍경들을 생생하게 보았다. 그 풍경에 나도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 낯설고도 편안하다. 그 흐름 가까이에 놓여 있으니, 나도 채움과 비움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 입구에 늘 눈여겨보게 되는 나무가 있다. 전나무 같이 키도 크고 소나무처럼 뻗어낸 가지 모양에 기품이 느껴지는데, 친절하게도 나무 이름이 명찰로 달려 있어서 이름을 알게 되었다. '히말라야시다'. 주로 히말라야 지역에서 자생하고 찾아보니 건축재나 목공재로 많이 쓰이는 나무라고 한다. 특히 인장력이 강하고 변형이 적어서 장기간 사용하기에 적합한 목재로 분류되고 있다. 어떤 환경에도 잘 적응하는 편이라 낮은 고도에서부터 높은 산지까지 무난히 자라고, 이러한 특성 때문에 히말라야시다는 풍부한 생태계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마치 품 넓은 어른같이 느껴지는 나무다.
매일 아침 학교 운동장을 들어서면서 히말라야시다를 만나게 되면, 이런 마음이 든다.
'히말라야에서 창촌까지 왔구나. 잘 살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