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지 않아도 괜찮아
38.74%
강남 8 학군 내 잘 나가는 중학교를 졸업하며 받은 내신을 상대평가로 환산한 점수는 위와 같다. 10명 중에 4등 정도 했다는 얘기다.
그랬다. 나는 항상 중간이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 성적도 아주 나쁘지도 않고 매우 잘하지도 않았다. 날라리나 일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모범생도, 엄친딸도 아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엄마 몰래 귀를 뚫기도 했고, 염색약을 사다가 혼자 염색을 한 적도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성적표에 “성적이 그날이 그날입니다”라는 악평을 남겨주셨고, 그 시절 엄마와 언니에게 적잖이 놀림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언니는 나처럼 적당히 노력하는 스타일이었지만, 타고난 머리와 누적된 독서량으로 성적이 항상 좋은 편이었다. 엄마는 딸들에 비해서 노력형에다가 타고난 머리로 의대도 갈 수 있는 실력이었지만,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약대를 나온 여자이다. ) 적당히 노력하고, 설렁설렁 공부한 중학교 학창 시절에 대한 적정한 평일 수도 있겠다.
고등학교 때는 온라인 게임 테트리스에 몰두해 밤을 꼬박 새우다가 학교에 가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수업시간 도중 선생님의 강의는 눈앞에서 멀어지고 그 앞에서 테트리스 블록이 내려오는 환영이 보이기도 했다. 일탈을 꿈꿨지만 그것을 실행할 용기와 동기는 부족했다. 더할 나위 없이 지원해 주시는 부모님을 실망시킬 만큼의 내가 크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진학한 대학조차도 중간을 뜻하는 이름을 가졌다. 중간 정도의 실력을 가진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대학교이다.
마흔 살은 나이조차 중간이다. 그놈의 또 엠지라고 불리는 MZ세대가 20~30대를 대표한다면, 꼰대라고 불리는 X세대는 50~60대에 가깝다. 꼰대와 MZ세대 사이에 있는 40대들은 고스란히 두 세대 사이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 오죽하면 40대를 칭하는 별칭조차 없을까. 그나마 40대 여성을 대표하는 문학은 <82년생 김지영>을 찾아볼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내용을 100% 공감할 수 없었던 나에게도 이 책을 페미니스트로 싸잡아 비판하는 시선에는 섭섭했다. 그냥 동시대의 여성을 책이름으로 내세운 것 자체도 반가웠기 때문이다. 마치 모임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 중에서 동년배를 만나면 반가운 정도의 호감이다.
80년대 초반 40대를 다룬 드라마는 '응답하라' 시리즈 중에서는 '응답하라 1997'이 있겠지만, 정확히는 '응답하라 2002'가 나와야 하는데 드라마가 만들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불문하고 내 시대를 풍미하는 드라마가 없다는 사실은 서운하기 그지없다.
대중문화에서는 그래도 정확히 올해 마흔이 된 우리 세대가 좋아했던 가수를 찾을 수 있는데 바로 HOT와 젝스키스이다. 중학교 시절 캔디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데, 그렇게 많이 들은 캔디의 가사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그때도 몰랐지만, 십수 년이 지나서 다시 들어도 모르겠다. 가사를 떠나서 신나는 멜로디와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흥겹게 춤을 추던 그때의 오빠들이 좋았다. 세월의 흔적을 제대로 맞은 오빠들을 다시 보면 실망감이 더 크지만, 오빠들이 불렀던 노래를 지금의 아이들이 부르고, 나의 아이들이 그 노래를 함께 부르는 것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 'NCT'의 '캔디'가 오빠들이 부르던 그 '캔디'만은 못하다고 생각해도, 어느 캔디든 상관없다. 또 요즘 알파세대는 'NCT'의 '캔디'가 더 좋다고 하니 시대에 맞게 향수를 자극하는 옛 노래라서 원곡 '캔디'가 좋을 것일 수도 있겠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10대인 아이들보다 더 큰 목소리로 따라 부르고 있는 나를 보면 'HOT'의 '캔디'가 지금의 마흔 살 세대를 제대로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의 초등학생들에게 아이돌은 보편적이고 대중적이다. 이미 중고등학교 시절 아이돌문화를 접했던 40대들은 그래도 기성세대보다 이러한 문화에 익숙하다. MZ세대 부모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겠지만, 40대가 서태지로 대표되는 X세대와 다르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나의 은사님은 미래를 “다양성, 개성, 삶의 질” 세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하신다. 나다움, 개성이 없는 사람은 도대체 살아갈 수 없는 시대이다. 나다움, 개성, 취향을 바탕으로 콘텐츠, 상품, 서비스를 만들어가야만 다른 사람, 인공지능과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하며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40대의 누구나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주입식 교육',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자라온 나에게 나다움은 평생 숙제이다. 제주에서 서울로 돌아와서 오랜만에 만난 또래 친구들의 화두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냐는 것이다. 돈은 벌어야 하겠는데,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다움과 돈벌이가 결합된 고민이다.
40대를 맞이한 우리를 더욱 조급하게 만드는 것은 주변환경이다. 어느 여배우는 40대가 되어 더욱 편해지고, 좋다고 한다. 그와 대조적으로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들여다볼수록 하나둘씩 늘어가는 주름에 침울해지고, 구글 포토가 보여주는 몇 년 전 사진 속 내 모습이 지금과 달리 너무 젊어 보여서 더욱 초라해진다. 시시때때로 날아드는 피부과, 성형외과의 리프팅 시술에 자꾸 눈길, 손길이 간다.
창업으로 눈을 돌려보자. 성공한 창업가의 평균 나이는 45세라고 한다. 45세라니 조금 위안이 된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지금 40이라면 5년 안에 성공적인 사업을 론칭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일하나 못해보고 세상과 하직할 것이라는 조급함을 들게 한다.
그래도 나이가 들며, 세상을 살아간 시간이 누적되자 중간, 어중간함, 애매함, 성격도 중간이라서 MBTI가 뚜렷이 나오지 않는 나 또한 나다움인가 싶다. 나답지 않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제의 나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그로써 만족하고 싶다.
네모 인간, 동그라미 인간, 육각형 인간
그 어떤 모양의 인간이라도 내가 가진 도형 안에서 최상의 균형미를 찾으며 그것이 나다움이라고 믿고 살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