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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달의 질문: 숫자를 넘어 의미의 숲으로

[방구석5분혁신.일상혁신]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숫자의 시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수면 데이터를 확인한다. 손목의 스마트워치는 걸음 수와 심박수를 기록한다. 직장에서는 분기별 성과 지표가 우리의 가치를 증명한다. SNS의 ‘좋아요’ 숫자는 그 사람의 주목도와 인기를 드러내는 척도가 된다. 모든 것이 측정되고, 분석되고, 평가된다. 이 정교한 ‘삶의 계기판’ 위에서 우리는 효율적인 존재가 되려 애쓴다. 그러다 문득, 묻는다. 그래서 내 삶은 의미 있는가?


1960년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곰베 숲. 낡은 쌍안경과 노트, 그리고 세상의 편견에 저항하는 한 여성이 있었다. 침팬지 연구자 제인 구달이다. 그녀는 학계의 조롱과 불문율에 맞서 자신의 방법론을 고수했다. 침팬지를 수치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이론의 잣대에 끼워 맞추지도 않았다. 구달의 이런 고집스러운 태도는, 숫자에 포획된 현대인에게 삶의 방향을 다시 묻게 한다.


1. 모든 것을 아는 전문가보다, 질문하는 탐험가


구달의 가장 큰 자산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정규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았다. 과학계의 정식 훈련을 받은 적도 없었다. 당시 학계가 쌓아 올린 이론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다. "공식적인 훈련 과정에서 대부분 잃어버리는, 완전히 열린 마음." 바로 그것이었다.


당시 학계의 정설은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구달이 이를 정답으로 외운 학생이었다면? 풀숲에서 흰개미를 잡으려 나뭇잎 줄기를 다듬는 침팬지를 보고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초심자의 눈’으로, 그저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나뭇잎으로 무얼 하려는 거지?' 이 질문 하나가 인간과 동물을 가르던 벽을 허물었다. 교훈은 명확하다. 스스로 전문가라 자부하며 모든 답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된다. 진짜 혁신은 정해진 매뉴얼을 오롯이 따르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당연한 것에 “왜?”라고 묻는 ‘무지의 용기’를 가진 탐험가의 것이다.


2. ‘빨리 감기’ 시대에 ‘느리게 지켜보기’가 주는 것들


구달은 수십 년간 곰베 숲에 머물렀다. 침팬지의 탄생과 죽음, 세대를 잇는 사랑과 갈등, 권력 투쟁의 대서사를 온전히 지켜보았다. 한 개체의 삶이 다른 개체의 삶에 어떻게 스며드는지, 어미의 지혜가 자식에게 어떻게 전승되는지를 이해하는 데는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다. 어미 ‘플로’가 죽자 깊은 슬픔에 잠겨 따라 죽은 아들 ‘플린트’의 이야기는, 짧은 관찰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유대의 깊이를 증명한다.


모든 것을 ‘빨리 감기’ 하려는 현대 사회에서 구달의 방식은 답답해 보일지 모른다. 더 빨리 성공하고, 더 많은 관계를 맺고, 더 효율적으로 살기를 강요하는 세상이라서다. 하지만 시간의 축적만이 줄 수 있는 깊이가 있다. 단기 성과에 급급해 관계와 전문성의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면,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때로는 가장 빠른 길이, 가장 오래 머무르는 길일지도 모른다.


3. 나의 이야기는 어떻게 세상의 언어가 되는가


구달의 연구가 세상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 데이터를 ‘이야기’로 만들어서다. 그녀는 연구 대상에게 식별 번호 대신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 ‘골리앗’ 같은 이름을 붙였다. 이름은 개체에 고유한 서사를 부여했다. ‘연구 대상 8번’의 죽음은 차가운 데이터다. 하지만, 어미를 잃고 슬픔에 잠겼던 ‘플린트’의 죽음은 우리 마음을 울리는 비극이 된다.


구달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관찰을 세상의 행동으로 ‘연결’했다. 연구실을 나와 전 세계를 누비는 환경 운동가가 되었다. 자신의 일과 삶을 더 큰 세상과 이어냈다. 우리도 생각해볼 일이다. 내 보고서 속 숫자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가? 내 일이 만드는 작은 변화는 세상 어디에 닿고 있는가? 나의 관찰을 모두의 공감으로, 그 공감을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행동으로 이어갈 때, 우리 삶은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제인 구달은 묻는다. 나는 내 삶과 사람들을 숫자로 재단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법. 진정한 삶의 의미는 우리를 보여지는 수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의 세상에 깊숙이 들어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


오늘, 내가 이름 붙여주고, 오래 들여다보고, 마음으로 연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거기에, 그 안에 내 삶을 구원할 진짜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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