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의 현실세계관 17
체력증진과 스트레스 감소, 그리고 노화를 향한 저항 등의 이유로 러닝을 한지 수 년이 흘렀다. 러닝을 하면서 그동안 크고 작은 부상도 여러 번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사고가 난 적도 있었다.
그 정도면 그만둘 만도 하지만 그래도 난 계속 달렸다. 하지만 그냥 달린 것만은 아니다. 나름대로 달리면서 갖은 방법으로 내 몸을 실험을 해봤다. 호흡이 문제인지, 근육이나 관절의 문제인지, 아니면 정신력이 문제인지 다양한 방법과 이론을 동원하여 임상을 거쳤다. 그래서 지금은 여러 방법들 중 나에게 적절한 연습방법을 찾기도 했고, 어떤 부분을 강화하면 운동효과가 좋아지는 지도 알게 됐다. 그리고 아프지 않게 뛰는 법도 터득했다. 역시 뭐든 실제로 부딪혀보면서 깨닫는 게 원시적인 나와 딱 맞는 학습방법이다.
그러던 중 도대체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2019년에는 겁도 없이 덜컥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메이저급이라 여겨지는 대회에 하프코스 두 번, 풀 코스 한 번을 참가했다.
평소에 꾸준히 달리니까
신청을 하고, 대회에 참가하기 전까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됐었다.
마라톤은 다른 운동경기들과 다르다. 전문 훈련을 받은 선수들도 경기시간만 기본 2시간을 넘는다. 나 같은 초급 수준의 러너들은 네댓 시간은 달려야 한다. 그 사실을 경기가 시작되면서도 몰랐다. 아이러니하게 날씨는 완벽했다. 서울의 차 없는 도심의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분을 한 껏 끌어올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무시하고 있었다. 난 20km를 달려본 적이 없었다.
경기가 시작됐다. 평소에 달렸던 10km까지는 거의 날아다녔다. 앞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제치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어느덧 18km를 지나고 있었다. 호흡도 멀쩡했고, 근육상태도 괜찮았다. 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18.5km 지점에서 시작됐다. 종아리에 근육경련이 온 것이다. 이미 평소의 내 페이스를 넘어서 달렸기 때문이었다. 한 번 경련이 시작되자 달리기는커녕 걷기조차 힘들었다. 종아리에서 시작된 경련은 몸에 번지듯 허벅지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바이러스도 아닌 주제에 반대쪽 다리도 전염되듯 아파왔다. 무릎과 발목관절에도 통증이 시작됐다.
그렇게 첫 번째 하프 마라톤은 두 시간을 넘어 기어서 겨우 들어왔다.
이후에 다시 출전했던 하프 마라톤과 풀코스 마라톤은 자존심이 상해서 신청한 것이 결코 아니다.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탓이다. 아직도 스스로 이해되지 않는다. 많은 준비를 해도 겨우 완주하는 풀코스를 아무 생각도 준비도 없이? 대체 왜?
그런 일이 있은 후, 그 해 말, 코로나 사건이 터졌다. 모든 경기는 취소됐고, 사람들은 운동을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한강을 달렸다. 지금 와서 깨달은 점은 어떤 운동도 2시간에서 5시간 정도 하면 몸에 이로울 것은 없다는 점이다. 러닝은 괜찮지만 마라톤은 몸에 좋지 않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하지만 그때 뭐든 해본 것만큼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이전의 마라톤은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테니.